내가 ‘말’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 건 꽤 오래전 일이다. 부모님은 항상 나에게 ‘말조심해라, 입을 조심해라, 남의 흉을 듣게 되도 옮겨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어렸을 때는 말조심하라는 뜻이 정확히 와 닿지 않아 항상 ‘네네’하고 성의 없이 대답만 했던 것 같다. 그때는 왜 그랬을까? 어려서, 덜 자라서, 미성숙해서였을까.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나는 조금씩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게 되었다.

  사춘기 때의 나는 아침에 일어나 가족들에게 안부 인사도 하지 않고 투정을 부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학교 갈 준비를 도와주는 부모님께, 조금만 일찍 일어나 아침 먹고 가라는 걱정에도 더 자고 싶어서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다 급하게 뛰어나가며 왜 안 깨워줬냐고 화를 냈다. 학교 가는 내내 후회를 했지만 이미 입 밖으로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가 없었다. 다음번에는 그렇게 말하지 말아야지. 곱고 바른말을 써야지. 항상 가슴에 되새기지만 가끔씩, 주체하지 못하는 안 좋은 말들이 부모님에게 튀어나갔다. 동생에게도 좋은 누나, 언니에겐 좋은 동생이고 싶지만 뾰족하게 튀어나가는 말로 상처를 입혔다.

▲ 이기지(작가) 저 ⃓ 말글터(출판사)

  부모님께서 항상 말조심하라고 말씀해주신 이유를 해가 지나면서 서서히 알아갔다. 말 한마디가 천 냥 빚도 갚는다고 하지 않는가? 말이란 그렇다. ‘아’ 다르고 ‘어’ 다르기에, 내 말을 듣게 될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고 상황을 고려해 적절한 언어를 선택해야 한다. 나는 항상 말이란 무겁고 어렵고, 많은 아쉬움이 남는 추억들의 집합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가족독서릴레이를 한다고 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주제가 ‘말’이었다. 말과 관련된 책으로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찾아본 책이 바로 ‘언어의 온도’다.

  첫 번째 주자인 나는 가족들에게 가족독서릴레이가 있다고 말하지 않고 혼자서 책을 읽었다. 다 읽고 나서야 가족들에게 왜 가족독서릴레이를 해야 하며 이 책을 가족독서릴레이로 정했는지 설명했다.

  “엄마, 아빠, 진아, 언니. 나는 매일 엄마나 아빠가 돌아가며 말해준 ‘말조심해라, 입을 조심해라’ 라는 조언을 명심하며 지내고 있어. 그렇기에 밖에선 나름대로 곱게 말하고 조심스레 언어를 선택하며 실언을 하지 않고자 노력하지만 정작 가족들에겐 그러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해요.”

  언제부턴가 계속해서 생각했던 말이다. ‘말하지 않아도 가족이니까 알아주겠지’라는 안이한 생각에서 ‘언젠간 말해야지’라는 다짐으로 바뀔 때부터 생각했던 말이다. 나에겐 용기가 필요했다. 그렇기에 이번 가족독서릴레이는 나에게 기회였고 전환점이다. 이렇게 우리 가족은 독서릴레이를 시작했다.

  독서릴레이를 하면서 우리는 서로가 마음에 드는 부분에 각자의 색깔로 밑줄을 긋기로 했다. 한 차례 한 차례, 다음 사람에게로 넘어가면서 여러 가지 색으로 물드는 흰 종이가 온도를 가진 것처럼 따뜻하게 느껴졌다.

▲ 가족들이 그어준 밑줄

  아빠는 책에 사랑과 관련된 부분이 있으면 엄마에게 살가운 애정표현을 했고, 엄마는 좋은 글귀가 있으면 자신의 메모장에 옮겨 적으며 그 글들을 우리에게 주의 깊게 읽어보라며 추천했다. 언니는 바빠서 전부 읽지는 못했지만, 부분적으로 읽으며 자신이 공감하는 부분에 밑줄을 그었다. 마지막 주자인 우리 막둥이는 얼마 전까지 고3 수험생이었기에 책을 읽어달라는 부탁을 하지 못했다가 근래에 넘겨주었다. 온갖 문제지와 교과서에서 벗어 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무슨 책이냐고 볼멘소리를 했지만 분홍색 형광펜을 들고 섬세하게 밑줄을 그어 나갔다.

  내가 선택한 이유 있는 책을 나와 가장 가까운 이들과 함께할 수 있었던 이번 가족독서릴레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좋은 기회였다. 책을 읽었다는 것뿐만 아니라 용기가 없어 내딛지 못했던 부끄러운 한 걸음을 함께해 준 값진 기회다. <2017 출판문화론 / 언론홍보학과 3학년 전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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