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대화에 항상 불편함을 느꼈다. 아빠는 대화가 자기 뜻대로 흘러가지 않거나 의견 차이가 생기면 항상 화를 내셨다. 그래서 아빠의 눈치를 보고 피하기 시작했다. 어릴 땐 아빠와 마주치는 게 무서워서 방문에 귀를 대고 있다가 아빠가 방으로 들어가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후다닥 화장실로 뛰어간 적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그런 아빠에 대한 반감은 심해졌다. 서로 으르렁거리고 하루도 조용히 지나가는 법이 없었다. 결국 반복되는 싸움에 우리는 지쳐버렸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진작부터 깨달은 오빠와 나는 각자의 방문 뒤에 꽁꽁 숨었고, 마음을 닫았다. 하지만 작년 10월쯤 삭막했던 우리 가족에게 또 다른 가족이 생기면서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작년 10월 창밖으로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이었다. 밤늦게까지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오빠가 집으로 들어오면서 얘기했다. “야 밖에 새끼 고양이 있어” 파자마 차림으로 밖에 나갔다. 비로 축축하게 젖은 잔디 위에 작고 예쁜 새끼 고양이가 울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더 작고 더 예뻤다. 한참 동안 그 녀석과 놀다가 집에 들어가려는데 급하게 뛰어와 내 바지 끝에 매달려 울었다. 안타까웠지만 부모님 허락 없이 집으로 데려갈 수 없어서 잔디 한편에 뒹굴던 상자에 넣어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도 녀석이 눈앞에 아른 거렸다. 밤새 잠을 설쳤고, 이른 아침 다시 밖으로 나갔다. 어젯밤 상자에 넣어 놓은 그대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결국 주인이 나타나기 전까지 내가 데리고 있기로 결정했다. 동물을 무서워하는 엄마는 기겁을 하며 소파 위로 도망쳤다. 아빠는 퇴근 후 나에게 욕을 퍼부었다. 아빠가 식식대고 있을 때 갑자기 녀석이 아빠 다리 위로 올라가 앉았다. 녀석은 기분이 좋은 듯 골골 거리며 잠을 자버렸다. 아빠도 그 순간이 나쁘지 않았는지 그 자세 그대로 한참을 계셨다. 그리고 녀석에게는 삐약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그 후 정들기 전에 빨리 내보내라고 다그치는 부모님에게는 키워줄 사람을 백방으로 찾는 중이라 했다. 사실 찾지 않고 있는데 말이다. 아빠는 “딱 일주일이다. 없으면 보호소로 보내버려”라고 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는 “딱 보름 만이다” 보름이 지난 후에는 “이번 겨울만 나고 보내”라고 했고, 겨울이 지나 봄이 왔을 땐 정이 들어버린 건지 아무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삐약이는 우리의 가족이 되었다.

  처음 책을 선정할 때 우리 가족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책을 읽길 원했다. 도서관도 가보고, 친구들에게 추천도 받아봤지만, 마땅한 책을 고르지 못했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인터넷을 뒤지고 있는데 삐약이가 내 노트북 위로 올라와 앉아버렸다. 나는 짜증 섞인 말투로 “야 내려가”라고 했는데 삐약이는 ‘내가 왜?’하는 표정으로 내 말을 가볍게 무시했다.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삐약이와 놀고 있는데 어느새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요즘 우리 가족의 공통적인 관심사가 삐약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서로 대화를 하진 않지만, 삐약이를 보기 위해 가족들이 거실로 모이는 것,  삐약이를 보면서 함께 웃던 것이 생각났다. 그래서 고양이와 관련된 책을 찾게 되었고, <내 어깨 위 고양이 Bob>이라는 책을 선정하게 되었다. 제목만 봤을 때는 단순히 고양이를 키우는 이야기로 보일 수 있지만 아니다. 주인공 보웬과 길고양이 밥(Bob)이 만나 삶의 의미를 찾고, 서로가 삶의 이유가 되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이다.

  책을 읽는 내내 피식하고 웃음이 났다. 밥(Bob)의 행동 하나하나 삐약이가 떠올랐고, 어느새 책에 매료되었다. 책을 읽는 순간이 따뜻하고 행복했다. 뭣 때문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가족들 역시 나와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두 번째 주자는 엄마였다. 책을 좋아하는 엄마는 흔쾌히 책을 집어 들었다. 엄마에게 가족독서릴레이에 대해 설명하고 “아빠가 읽어줄까?”라고 물었을 때 아무 대답하지 않으셨다. “읽어줄 거 같냐고..” 다시 물었을 때 엄마는 멋쩍게 웃으며 “엄마가 아빠를 잘 아니까 아빠가 쓴 것처럼 하면 안 돼?”라고 했다. 열 번도 넘게 예상하고, 어쩌면 당연한 대답이었지만 기분이 팍 상했다. “아 나 그럼 그냥 안 할래”라면서 신경질적으로 방에 들어왔다. 조금은 달라졌다고 느낀 건 내 착각이었을까? ‘너의 결정을 존중해’라는 핑계 아래 우리는 서로 무관심했었다는 것을 깜빡하고 있었다. 화가 나서 눈물이 날 것 같은 걸 꾹 참았다. 우울함을 덜기 위해 방에 콕 박혀서 늦게까지 영화를 몇 편 봤다. 그리고 그날 엄마 방 불도 밤이 깊어 새벽이 가까워질 때까지 꺼지지 않았다.

  다음 날 엄마는 속상한 내 마음을 풀어주려는 건지 “이거 재밌더라”면서 웃으며 책을 건넸다. “엄마는 동물 털끝 하나 못 만졌었는데 대단하지 않냐?”라면서 삐약이를 연신 쓰다듬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와 삐약이는 누구보다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엄마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가족의 생계를 책임 지던 가장 노릇을 했었다. 밖에서 늦게까지 일을 하고 와서 집안일을 하고, 오빠와 나를 위해 최선을 다 하셨다. 그때 엄마는 하루가 항상 부족하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 그러다가 아빠가 일을 안정적으로 하게 되면서 엄마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었다. 엄마가 시간이 많아지고 여유로워졌을 때쯤 아빠는 일을 하느라 바빴고, 오빠와 나는 각자의 생활을 하기 바빴다. 혼자라서 적적했을 엄마의 시간을 아빠도 오빠도, 나도 아닌 삐약이가 채워주었다. 밤새 책을 읽은 엄마에게 괜한 짜증을 낸 것 같아 미안해졌다. 그런 마음을 삐약이에게 대신 실어 보냈다. “엄마, 얘 엄마 안 보이니까 울어” 엄마는 “얘 땜에 귀찮아 죽겠어. 아무것도 못하게 엄마만 쫓아다닌다니까”라고 투정을 부리면서 삐약이와 있었던 일화들을 기다렸다는 듯이 신나게 얘기하셨다.

  용기를 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세 번째 주자인 아빠에게 다가갔다. 처음 책을 드렸을 때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으시길래 ‘역시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책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내 예상대로라면 “시끄럽다”,“치워라”라며 단칼에 거절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아서 당황스러웠다. 엄마도 아빠의 모습에 의아했는지 책을 읽은 이유를 물어봤다 한다. 이유는 책 표지에 고양이 사진이 있어서라는 단순한 것이었다. 초장부터 덜컥 겁을 먹고 해주지 않을 거란 생각은 내 오산이었다. 삐약이가 우리 가족이 되고 “아빠 삐약이 발톱 좀 깎아주세요” “삐약이 목욕시키는 것 좀 도와줘요” 내가 하기엔 힘에 부치는 일들, 아빠는 그럴 때마다 군소리 없이 해주셨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색안경을 쓰고 아빠를 바라봐왔던 것일지 모른다.

  며칠 후 책을 돌려받았고 한 줄 평엔 ‘얘(bob) 생긴 게 우리 삐약이 닮았다. 하는 짓도’라 써져있었다. 그렇다. 황폐한 삶을 살던 보웬의 인생을 180도 바꾼 고양이 Bob처럼 삐약이도 우리 가족을 변하게 했으니까. 1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 가족은 자기 선물보단 삐약이 선물이 더 반갑고, 슈퍼를 가면 새로운 고양이 간식이 있는지 확인하며, 내 샴푸를 고르는 것보다 삐약이 샴푸를 더 신중하게 고른다.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 가족의 삶엔 삐약이로 가득하다. 냉랭한 공기로 가득했던 거실에 우리 가족을 모이게 만들었으며, 삐약이를 보면서 함께 웃는다. 살을 에는 추운 겨울, 사람들이 난로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듯이, 우리 가족에게 삐약이는 난로 같은 존재이다. 앞으로 삐약이로 인해 우리 가족에게 어떤 변화가 생겨나갈지 기대가 된다. <2017 출판문화론 / 언론홍보학과 4학년 송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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