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모어, 유토피아(문예출판

  값진 경험이었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우리 가족들에게, 유익한 장난감을 받은 기분이다. 자연스럽게 많은 대화가 이뤄졌으며 함께 웃는 가족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사실 걱정이 많았다. 제주도가 아닌 타지에 가족들이 거주하고 있기에, 독서릴레이의 진행을 보장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음성 및 영상통화와 SNS활용을 통해, 릴레이는 성공했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선정한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중3이었다. 방과 후 영어학원을 가기 전, 저녁을 먹기 위해 집에 잠시 들렸다. 아버지가 유토피아를 들고 있었다. 당시 경기 불황에 따라 아버지의 회사 사정이 매우 어려웠다. 나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셨지만, 책을 보는 눈은 여전히 슬펐다. 반드시 유토피아를 읽겠다는 다짐을 하고 학원으로 발걸음을 옮긴 기억이 난다.

 또 다른 이유는 행복에 대한 갈망이다. 나는 지금 불안하다. 정말 두렵다. 진로가 명확하지 않고 꿈꿔온 장래에 대한 회의감이 든다. 앞으로 살아갈 내 인생이 불행으로 뒤덮일까봐 무섭다. 어두운 내 마음 속에 비추는 한줄기 빛을 바라는 마음에서 유토피아를 들었다. 간접적으로나마 행복을 느끼고 싶었다. 정말 그곳은 행복할까. 행복하고 싶다. 내 가족의 행복은 덤이다.

 아버지는 곧 53세다. 책 선택에 있어 아버지의 영향을 전적으로 받았지만, 정작 그의 깊은 생각은 들어보지 못했다. 몇 번이나 이 책을 읽으신 아버지는, 유토피아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도 살아가는데 있어 노동을 등한시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부지런히 학문을 닦고 교육에 힘쓰는 그들이 이상적인 사회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언급하셨다. 아버지는 오랜만에 서재에 꽂혀 있는 ‘유토피아’를 가족독서 릴레이를 통해 집으셨다. 가족들과 함께 책의 내용과 교훈을 공유할 수 있었다며 환한 목소리로 통화해주셨다. 이 순간이 유토피아가 아닌가.

 어머니는 양육에 집중하기 위해 10여년 걸었던 간호사의 길을 멈추셨다. 학창시절부터 독서를 즐겼다는 어머니는 이번 독서릴레이에 굉장히 호의적으로 참가하셨다. 아버지와 달리 이번 기회로 처음 ‘유토피아’를 접하셨고, 반복해서 읽는 습관 탓에 서평이 늦어질 수 있다는 당부의 말씀도 하셨다. 어머니는 다른 가족 구성원과 달리 주부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시간이 여유로워 깊게 읽어보고 싶다고 하셨다. 항상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라고 주장하셨던 어머니는 이번 릴레이로 나와 여동생이 책에 흥미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11월의 마지막 밤. 늦은 시간에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새벽의 특유한 분위기를 빌려 감성적인 서평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한 마디도 놓치지 않기 위해 녹음 버튼을 누르고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는 유토피아 같은 이상적인 국가는, 이상적인 사람들로서 구성된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이상은 행복과 같다는 가설을 내세우셨다. 이를 통해, 행복한 사람들이 행복 국가를 구성하는 것이며 그것은 바로 ‘유토피아’라고 말씀하셨다. 즉, 우리의 행복이 최우선의 과제로 삼자는 그녀의 주장이었다. 아무리 책을 읽어도, 이런 생각은 가지기 어려운 나다.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책을 좋아하지 않아 부모님께서 줄거리를 귀띔해주셨다는 여동생의 귀여운 통화로 릴레이를 마무리했다.

 학생 신분으로 낯선 제주 땅을 밟은 지 벌써 4년째다. 최대한 가계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국립대학 위주로 지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가족이라는 온실 속에서, 작은 고난 없이 지내왔다. 성장의 발판을 삼기 위해, 나는 멀리 떨어진 제주대학교를 선택했다. 당시 제주에서 하고 싶은 나만의 버킷리스트를 작성했고, 재학 중에 제주도민으로서 동화되는 꿈을 가졌다. 설레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탑승했다. 풋풋한 예비 대학생의 유토피아는 바로 제주도였다. 실제로 대학에 입학한 후, 제주는 몰론 해외 곳곳으로 여행들 다녔다. 또한 학보사에 입사해 기자로서의 꿈도 잠시나마 이뤘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읽으면서 내 제주 생활을 되돌아봤다. 대체로 만족스러우나 아쉬운 점도 많다. 놓을 수 없는 아르바이트가 내게 많은 시간을 빼앗진 않았을까. 3년간의 기자생활보다 다양한 대외활동을 택했다면, 풍부한 경험이 내게 다가왔을까. 가벼운 만남이 아닌 좀 더 진중한 연애를 지속했다면, 보다 어른스러워진 내가 되진 않았을까. 일상 속에서 우연으로 다가오는 순간이 인생을 달리 할 수 있음을 느끼게 된 계기였다. 그래도 나는, 부정적인 생각을 뒤로 하고 다시 꿈을 꾼다. 이미 지나간 시간은 나름대로 나만의 유토피아였으랴.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높이 비상하고 싶다. 다음 유토피아는 어디일까. <2016 출판문화론 / 백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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