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가 무언가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박근혜 대통령의 어린이날 대화 내용이 아니다. 중남미 4개국 순방에서 한 발언은 더욱 아니다. 다만 책 ‘연금술사’에 나온 글귀다. 박대통령이 여러번, 이 내용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꺼냈다니 박대통령도 틀림없이 책의 이 구절에 빠져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니, 최순실씨가 빠져있는 구절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는 몇 시간이면 읽어낼 정도로 쉽다. 동화같은 분위기를 풍겨 더욱 어렵지 않게, 책을 술술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은 언제나 그렇듯, 소설 속에서 현자나 노인, 주인공의 입을 빌려 내용을 전개해나간다. 때론 주옥같은 인생의 지침서를 내려주기도 하고, 가끔은 소소한 가벼운 에피소드를 들려주기도 한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가볍든 무겁든 그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 양치기 산티아고는 매일 같은 삶을 산다. 어느 날, 그는 삶에 권태를 느끼고 보물을 찾아 나선다. 그 보물은 산티아고의 꿈에 나온 보물. 계속해서 꿈에 나오는 것이 이상해 점쟁이에게 ‘내가 그 보물을 찾을 수 있냐’ 물어보니 찾을 수 있단다. 큰 꿈에 부풀은 산티아고는 방랑자의 길에 접어들게 된다.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그는 양을 팔아 겨우 마련한 돈을 모두 도둑맞는다.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크리스탈 가게에서 일을 한다. 꾸준히 일을 한 결과, 산티아고는 그만의 비법으로 손님들을 계속해서 끌어들이는 그 가게의 인재. 오늘로 치면 그 가게의 ‘영업왕’이 된다.

 현실에 만족해 살아갈 법도 하지만 그는 또 다시 자신 처음의 꿈을 생각해, 미련 없이 크리스탈 가게를 떠난다. 끊없는 사막을 건너고, 목숨의 위협을 받기도,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현실에 머무르고 싶은 충동이 들끓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잡고 보물의 길을 꾸준히 나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한 이집트 병사를 만나게 된다. 그와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 또한 이와 비슷한 꿈을 꾼 적이 있다고 한다. 잘 들어보니 이집트 병사의 꿈의 배경은 자신의 고향. 산티아고는 고향으로 찾아가 보물, ‘철학자의 돌’을 찾아들고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에게 향한다.

 나는 이 과정에서, 책 연금술사는 ‘꿈’이 아닌 ‘꿈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려냈다고 생각한다. 꿈을 찾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깨우침’이 바로 보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묵묵히 해왔던 사람이라면 그에 알맞은 대가를 받게 되는 것.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꿈을 향해서 나아가게 된다. 그게 큰 꿈이던 작은 꿈이던. 그 과정 속에 우리는 좌절을 맛보기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마주하게 되기도 한다. 혹은 이정도면 만족한다고 안주해서 남은 시간을 하염없이 흘려 보내기도 한다. 사실, 이런 과정들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다만, 그 가운데서도 ‘꿈’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의 중간을 보면, 주인공은 크리스탈 가게의 ‘판매왕’이 되면서 꿈을 꾸기 전과 비슷한 반복되는 익숙한 생활로 돌아가게 된다. 사실 성공, 원하는 길이 아니더라도 그 분야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다면, 그 달콤함에 익숙해져 다시 쓰나쓴 고생의 길을 피하게 되기 마련이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러한 선택에 순간에서 산티아고는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한다. 쉬운 길을 나두고 어려운 길로 가는 길, 꿈을 찾아가는 일을 계속한다. ‘익숙함’에 안주하려할 때, 그의 꿈을 향한 도전은 다시 시작된다. 나는 이러한 전개 속에서, 책에서 나온 ‘온 우주가 우리를 도울 것’이라는 글귀는 연금술사, 우리의 인생이 무쇠. 그저 그런 고철에서 금이 되는 과정의 ‘자아성찰’을 의미한다고 본다.

 사실, 좋은 문장이란 그 누구의 입에 오르내리든 계속해서 언급이 되고, 다른 누군가의 빈 종이에 한자 한자 정성스럽게 쓰여져 있을 때 더욱 그 가치가 높아진다 생각한다. 하지만 요즘 나는, 이 좋은 글귀를 여러 곳에서 언급한 대통령이 야속하기만 하다. 대한민국의 온 국민, 아니 ‘온 우주’가 대통령의 발언을 인용해 희화화하고 풍자하고 있다. 샤머니즘에 빠진 대통령이라고. 내가 아끼는 책, 내가 좋아하는 구절이 ‘샤머니즘’이라고 치부되는 것이 속상하다. 파울료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가치 있는 책과 능력이 뛰어난 작가 하나가 이를 통해 빛이 바래져버릴까 걱정이 된다.

 지난주 토요일, 70만명의 사람들이 광화문 광장에 모였다고 한다. 추운 날씨에도 그 촛불들이 환하게 불 피울 수 있었던 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꿈이 있어서이지 않을까? 사실, 우리는 현실에 안주해 이대로 살아갈 수도 있었다. 눈을 감고 귀를 닫고 따뜻한 집 안에서 잠을 잘 수도, 가족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눌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것들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목소리를 보여주려 추운 날씨에도 거리에 나섰다. 70만명의 산티아고가 거리에 나선 것이다. <2016 출판문화론 / 현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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