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자들이 있다. 그들은 역사 속에서 지워졌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채로 노인이 되었다. 그들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전쟁은 줄곧 남성의 것으로 인식되어왔고, 인지하지 못한 사이 나도 그것을 남성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현재에 와서도 전쟁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과거에 비해 전쟁은 직접적으로 겪어보기 힘든 일이 되었다. 그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겁이 많은 나는 우크라이나의 소식을 접하고 나서 공포를 느꼈다. ‘도대체 왜, 하필이면 전쟁을 해야 하는가?’라는
내 주먹만 한 작은 얼굴, 그에 비해 살집 있는 몸. 흰색, 검은색, 주황색 세 가지 색깔이 어우러진, 다른 고양이보다는 조금 짧은 꼬리를 가진 나의 고양이, 연어이다. 연어를 처음 만난 날은 고등학교 3학년 시절, 한창 입시에 바쁜 나이였다. 우리 집은 마당에 푸릇한 잔디밭과 나무가 있고, 내부는 목재로, 집 주변엔 밭이 많아 집 안에서 쥐가 나오는 일이 꽤 잦았다. 우리 가족은 골머리를 앓았고, 이는 엄마가 고양이를 데려오며 해결이 되었다. 엄마가 자주 가는 이자카야에서 고양이를 데려온 것이다. 연어는 이자카야 주인이 지은 이름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게 된 계기는 예전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읽어보았기 때문이다. 읽은 지 오래됐지만, 그 작가의 문장 표현력에 감탄한 기억이 있어 기대를 안고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기 시작했다. 제목부터 주의를 잘 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의미를 담기 위해 이런 제목을 썼는지, 누구와 작별하지 않는 것인지 나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또한 목차 다음 프롤로그가 없고, 평론글을 읽지 않고 책을 바로 읽기 시작해 역사에 관한 이야기인지 알지 못했다. 2장이 시작되기 직전에서 알았다. 제주 4.3사건에 대해 다룬 소설
새로운 해가 뜨고작년 2021년의 새로운 해가 뜬 날, 나한테는 신년의 환희와 기대감이 아닌 두려움이 밀려들어 왔다. 성인이 된 지 벌써 1년이 지났지만, 앞이 보이지 않고,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만 갔다. 나는 내 어릴 적 용기와 추억은 희미하게 느껴지고, 이젠 더 이상 기억할 수 없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풀리지 않는 질문을 스스로 던진다. “나는 왜 태어났는가?”2021년 1월 25일, 풀리지 않는 질문에 답을 한 ‘인생 영화’를 만나게 된다. 그날은 한라산은 눈구름에 갇혔고 코로나 평균 확진자가 1,000명을 넘길 때
아직 동이 트지 않은 깜깜한 새벽, 나는 아직 깨어있다. 가족들의 고요한 숨소리만이 집 안을 가득 채우는 시간이다. 책상 위 스탠드 조명의 가느다란 빛에 의지해 그 정적을 깨지 않으려 조심스레 한 겹 두 겹 가벼운 옷을 여러 벌 껴입는다. 서랍장에서 가장 두꺼운 양말을 꺼내 발목 위까지 올려 신는다. 그리고 나면 전기포트에 물을 끓인다. 물이 끓는 동안 나는 가방을 챙긴다. 양말 두 켤레와 우비, 약간의 간식을 챙기고 가장 중요한 물 3병까지 하나씩 챙겨 넣고 있으면 탁!하고 전기포트의 버튼이 올라가는 소리가 물이 다 끓었음을 알려
할아버지는 우도에서 사신다. 할아버지의 원래 고향을 우도다. 대부분의 우도 주민들이 그렇듯 아이들(나에겐 아버지와 고모들)이 자라며 제주시로 넘어오셨다. 그렇게 쭉 제주시에서 사셨다. 그러다 증조할머니가 치매에 걸리면서, 할아버지는 증조할머니를 모시기 위해 우도로 들어가셨다. 그렇게 증조할머님이 돌아가신 이후에도 계속 우도에서 살고 계신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우도 살이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할아버지는 증조할머니를 모시며 우도에서 사실 때, 불편한 점이 많아 힘들었다고 하셨다. 안부차 전화를 드리면 우도에는 병원도 없고 큰 마
지금은 학교에 다니고 있어 아라동에서 살고 있지만, 나의 고향은 산방산이 보이는 안덕면 사계리다. 집에서 바다까지의 거리는 20분 정도가 소요되지만, 나만 아는 지름길로 간다면 3분 만에 갈 수 있다. 나는 그곳에서 자랐다. 어릴 적 친구들과 바닷가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 엄마와 함께 그곳에 가서 문어와 해초를 잡았다. 내 친한 친구는 운전면허에 떨어지면 바다에 입수하겠다며 호기롭게 시험을 보러 갔으나, 떨어지고 한겨울 그 바다에 뛰어들었다. 물론 유명한 해수욕장만큼 물이 깨끗하지도 않고, 모래사장이 예쁘지도 않다. 하지만 나에겐
고등학교 3학년, 늦여름 때의 일이었다. 필라테스를 하러 가기 위해 집에서 막 나오는 길이었다. 우리 집 앞에는 놀이터가 있었다. 놀이터 앞을 지나는데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화단 사이에서 걸음걸이도 아직 온전치 못한, 손바닥으로 한 뼘 정도 되는 새끼고양이가 숨어있다 나왔다. 어미 고양이는 어디론가 먹이를 구하러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그런 어미를 새끼가 애타게 찾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 고양이가 귀여워서 한참을 쳐다보았다. 고양이가 엉금엉금 기어가다가 보도블록에서 떨어지는 순간 자동차가 휙 지나갔다. 로드킬이
기억 A 2년 전 6월. 동네 친구와 함께 집 근처 마트를 갔다. 맞은 편에서 느릿느릿 유모차를 몰고계시는 할머니를 만났다. 아이가 타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분홍색 유모차에는 작은 말티즈 한 마리가 있었다. 강아지는 우리를 향해 털이 폭신폭신하게 자라있는 귀랑 꼬리를 흔들어댔다. 몸은 불편하지 않아 보였다. 아무래도 주인이 되시는 할머니께서 콩이와 같이 나오고 싶어 하신 듯해서 유모차에 태운 것 같았다. 나는 대뜸 할머니께 “애기가 너무 예뻐요”라며 넉살 좋게도 물어보았다. 나는 원래 아무에게나 말 붙이고 이런 사람이 아니다. 하
그 날 난 처음으로 홀로서기를 시작하였다. 집에 있어도 모든 일을 혼자 했던 나였지만,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집에서 홀로 해왔던 지난 날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덥고 습한 날씨에도 서늘한 공기만이 가득 찬 6평짜리 원룸에서 나는 홀로서기를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이사를 도와주러 온 엄마가 떠나고 프레임 없이 매트리스만 있는 침대에 미동도 없이 누워 있던 나는 계속 눈에서 흐르는 물로 얼굴을 적셨다. 가족들이 없다는 외로움 때문이었을까 먼 서울 땅에서 혼자 살아가야 한다는 슬픔 때문이었을까 반 년이 지난 지금도 무슨 이유로 아파했는지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는 말이 있다. 이는 전쟁을 빼놓고는 역사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말로 전쟁이 인류의 역사에서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어떤 전쟁에서 누가 승리했고 누가 패배 했으며, 그 전쟁으로 인해 어떤 나라가 어떠한 경제적 이익을 얻었는지, 권력의 흐름이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대해 배우게 된다. 한 나라를 지휘하는 역할에 있는 기득권층은 특히나 그 나라가 강대국인 경우, 전쟁을 정치를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그들이 얻을 이익과 손해를 계산하여 쉽게 전쟁을 하고는
곶자왈. 예스러운 이름이다. 질고한 이름이다. 마치 이제 입을 뗀 아이가 허물없이 뱉은 듯한 정있는 이름이다. 제주의 언어에는 조선시절 쓰였던 단어들이 아직도 내려온다고 한다. 곶자왈이라는 말을 되내이며, 말로써 그들과 얽히는 것을 느낀다. 하늘을 바라보면 나뭇잎들 또한 그들 나름으로 얽혀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듯하며 푸른 하늘을 그 사이로 흘린다. 거대한 직소 퍼즐을 흩뿌려놓은 듯 하다. 급하게 누리집을 들려 알아본다. 빛나는 왕관 현상이라고 한다. 짙은 녹색의 잎사귀 사이로 햇볓이 드는 것은 분명 왕관이 빛나는 것처럼 보인다
나에게 있어 4.3은 무엇일까. 초등학생 때부터 4월만 되면 학교에서는 4.3과 관련된 애니메이션이나 영상을 보여줬다. 이 영향으로 4.3은 내게 기억해야 하는 역사로 각인됐고, 4.3에 대해서 늘 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대학교 입학하고 나서는 제주4.3평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서포터즈 활동을 시작으로 강연, 행사에 참석하며 4.3을 알아갔고, 알리고자 했다. 현재는 교내 4.3 역사 동아리 ‘동백길’에서 4.3의 이름을 찾기 위해 4.3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논의하며, 4.3이 가진 다양한 성격과 역사를 알아가고 있다.이번에
Ⅰ. 다시금 새로운 충격 속으로 10대 시절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읽었다. 그 작품은 진한 아픔을 담고 있었고 당시 나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읽어보지 못한 내용과 글의 흐름이 신선했다. 다시 한강 작가의 이름을 마주했을 때 얼른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강 작가가 쓴 작별의 이야기는 과연 어떨까 궁금해졌다. ‘작별하지 않는다’엔 ‘이것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는 작가의 말이 담겨있다. 독특한 말의 의도를 알고 싶었다.Ⅱ. 책 속으로 등장인물인 경하는 인선의 집을 가고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을 보게 된다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이호동에 살았다. 항상 지내던 이호에서 여름만 되면 아버지가 이호해수욕장에서 계절음식점을 열었다. 어머니도 여름엔 아버지를 도와 해수욕장에서 일을 했기에 나도 여름엔 항상 해수욕장에서 살았었다. 그 곳엔 뜨거운 여름의 뜨거운 모래사장, 천막 아래의 시원함, 북적거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낮에는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고, 밤에는 술을 마시는 사람들로 붐볐다. 또 그 곳에는 정겨운 삼춘들, 형누나들이 있었다. 형누나들과 5살 이상 차이나고 그렇게 막내인 나는 삼춘들 또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형누나들과 해수
이 책의 초반부는 매우 혼란스럽다.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가 뒤섞인 플롯과 문장에서 뿜어져 나온 문학적인 미사여구가 머릿 속을 혼란스럽게한다. 하지만 이 혼란 속에서 확실하게 느껴지는 것은 제주의 겨울에 대한 뚜렷한 묘사와 두 여성이 느끼는 고통이다. 특히 제주도의 겨울에 볼 수 있는 눈보라와 칼바람에 대한 뚜렷한 묘사는 제주도에 살고 있는 내가 직접 느꼈던 겨울의 기억을 자연스레 떠오르게 했다.내가 경험한 제주의 겨울 고등학교 겨울방학때 나는 친구들과 한라산에 간 적이 있다. 우리는 고등학교 때의 넘치는 에너지와 철없는 패기를 시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한창 인터넷이 뜨겁게 달궈졌을 때 읽은 기사가 기억에 남는다. 글보다도 기사에 쓰인 사진이 머릿속에 오래 머물러 있는데 바로 우크라이나의 할머니가 낮은 포복 자세를 하고 총을 겨누고 있는 모습이다. 옆에서는 한 군인이 올바른 조준 위치를 겨냥하는 것을 도와드리고 있다. 비장한 표정과 안정적인 자세의 할머니를 보다 보면 누가 군인인지 구별해낼 수 없을 것이다. 이제 기사의 제목이 기억나기 시작한다. “우리는 망치나 칼을 들고서라도 힘차게 싸우겠다”이 외에도 “내 나라에서 뭐 하는 거냐”며 러시아 군인의 얼
오전 5시, 새벽의 적막을 깨는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지영아, 할아버지 돌아가셨대.”“응. 알아.” 10살이던 내가 외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에 답한 말이다. 긴 꿈을 꾼 후였다. 성격 불같기라면 빼고 말할 수 없고, 어느 동네에나 있는 호랑이 할아버지. 노량진에서는 단연 우리 할아버지 담당이었다. 부리부리한 눈과 부처님처럼 큰 귀, 나이에 비해 큰 키까지. 성격과 딱 맞는 외모셨다. 그런 인물이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나의 탄생이다. 첫 손녀라 불면 날아갈 듯 쥐면 꺼질 듯 안았다가, 업었다가 어
제주에 내려온 지 벌써 2년째. 제주의 푸르른 언덕과 따뜻한 바람 속 짠 내를 한껏 느낄 수 있는 바다는 날 항상 설레게 한다.넓게 퍼져 모든 걸 삼킬 것 같은 동해, 밀물과 썰물의 매력에 헤어 나올 수 없는 서해는 왠지 모르게 다가가기 힘든 적이 많았다. 이유 모를 웅장함에 압도당한 것일까?반면, 제주 바다는 잔잔하면서도 마음을 요동치게 만드는 묘한 감정을 불러온다.높디높은 건물들 사이에서 바다를 향해 달리는 버스에 올라탔다. 덜컹거리는 버스 차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점차 푸르게 물들어간다. 건물의 층고는 점점 낮아지고, 여름을
경하의 꿈은 어둡고 무서웠다.검은 통나무들이 누워있는 캄캄한 곳에 갑자기 물이 차오른다니.계속 이런 꿈을 꾸던 경하는 친구 인선의 연락을 받고 간 병원에서 자신의 집에 있는 새를 돌봐달라는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제주로 내려온다. 이곳에서 인선과 그녀의 어머니 정심의 가족사와 그들에게 얽혀있는 여러 가지 일을 알게 된다.“총에 맞고, 몽둥이에 맞고, 칼에 베여 죽은 사람들 말이야. 얼마나 아팠을까? 손가락 두 개가 잘린 게 이만큼 아픈데. 그렇게 죽은 사람들 말이야, 목숨이 끊어질 정도로 몸 어딘가가 뚫리고 잘려 나간 사람들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