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행위보다 오래간다’라는 말이 있다. 글은 기록이 되고, 기록은 곧 역사가 된다는 말이다. 당연하다시피 언어는 글로 적을 수 있지만, 바로 여기 글로 적을 수 없는 비운의 한글이 있다. 아래아는 훈민정음의 창제원리를 담은 고유의 한글이지만, 인터넷에선 표기조차 할 수 없다. 인터넷 기계화 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된 제주어 아래아, 살아있는 훈민정음의 소멸위기를 담는다. 그리고 그 소멸 언어를 지키는 사람들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인터넷을 둘러보면 가끔가다 읽기 어려운 글을 볼 수 있다. 바로 제주어 아래아 표기의 오류이다. 아래아를 사용한 단어들은 뒤틀려 표기돼 제대로 읽을 수도 없다.
한글 자모는 총 40자이지만, ‘제주어 표기법’로 규정된 제주어는 이보다 더 많다. 바로 아래아()가 있기 때문이다. 아래아는 ‘ㅏ’와 ‘ㅗ’ 사이로 발음하며 다른 지역에선 볼 수 없는 제주 고유의 특색이자 한글 고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엄연한 글자이다. 하지만 아래아는 인터넷에서 사용할 수 없다. 한글 문서에선 ‘ㅏ’를 두 번 누르면 아래아로 표기할 수 있지만, 인터넷에선 기계화표준화 과정에 아래아를 제외했기 때문이다. 아래아를 표기할 수 없는 문제점에 대해 처음으로 불만의 목소리를 낸 것은 양영길 시인이었다. 정부에게 희망 사항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을 통해 2018년 9월 10일 “한글 고어를 인터넷 환경에서 표기하고 검색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는 글을 올렸다.
양영길 시인은 “나라의 언어를 웹문서에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현재 아래아를 사용한 제주어 연구 자료는 모두 PDF 형식으로 유통돼 연구의 맥이 끊길 시기를 맞이했다”고 주장했다.
아래아는 어쩌다 우리의 품을 떠난 것일까. 양 시인은 아래아가 사라지게 된 경위가 아주 불합리하다고 밝혔다. "1933년 조선어학회가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제정할 당시 아래아를 없애버렸어요. 조선어학회 소속 이희승이 자랑스럽다는 듯 자신이 아래아를 없애버렸다고 그의 책에 써놓았더군요." 그 이후 아래아는 더이상 한글로 인정받지 못했다. 양 시인을 이를 독재적 발상이라고도 말했다.
아래아는 한글로 인정받지 못한 채 9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오직 제주도민을 통해 구전됐다. 제주도민들은 한 세기가량 방치된 언어를 어떻게 지켜왔을까. 제주출신 오설자 작가는 제주어의 소멸위기를 느낀 뒤 일상에 제주어를 녹이기 위해 제주어책을 쓰고 있다. 하지만 아래아가 담긴 책을 출판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책 <우리 사는 동안에 부에나도 지꺼져도>를 편집하면서 출판사로부터 엄청나게 힘들었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다음에 또 제주어로 책을 내실 건가요? 하는 질문을 받으면서 제주어 표기가 어려운 것이 마치 내 잘못 같아 미안해지곤 했지요. 출판 응용 프로그램에서는 아래아 표기가 무척 까다로웠던 모양입니다. ”
제주어로 시를 쓴지도 어언 15년, 현택훈 시인도 아래아 표기는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블로그에 시를 올릴 때면 불편한 점이 많아요. 일일이 표준어나 ‘아’, ‘오’로 바꿔 표기하는 수고도 있답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아래아를 사용할 수 없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표기를 바꾸지 않고 뒤틀려 올리는 경우도 빈번해요.”
그렇게 세상에 나온 아래아, 사람들은 아래아를 온전히 언어로 바라보고 있지 못했다. “제주어를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아래아를 아주 낯설어해요. 또 힘들게 출판했는데도, 제주어를 모르는 표준어 사용자들은 책이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친절하게 주석을 바로 옆에 써 놓았지만. ”
인터넷에 아래아가 구현된다면 제주어의 소멸을 막을 수 있을까. 오 작가는 대답은 긍정적이었다. “아래아가 인터넷에서 사용할 수 있게 돼도 폭발적인 사용을 기대할 순 없겠죠. 다만 소멸하는 제주어가 살아남을 가능성은 크다고 봐요. 그렇게 되기 위해선 우리가 아래아를 많이 쓰는 방법이 지름길이겠지요. 그 이후 제주어 자판을 만들거나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은 인터넷 프로그램 개발자들이 애써줄 일이라고 생각해요."
실제 2010년 유네스코는 제주어의 소멸위기 정도를 4단계 '아주 심각하게 위기에 처한 언어'로 분류했다. 1단계부터 5단계까지로 구분된 소멸위기 정도 중 5단계 '소멸한 언어' 전 단계로 지정한 셈이다. 제주특별자치도는 2014년 '제주어 표기법' 제정, 제주어 살리기 운동 등 제주어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제주어 사각지대에 있는 아래아의 관심은 여전히 낮다. 인터넷에선 표기할 수 없이 방치된 제주어 아래아, 하루빨리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한다.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를 고스란히 갖고 있는 아래아가 인터넷에서 구현될 수 있도록 사람들의 관심과 동시에 웹 개발자들의 움직임이 필요한 시점이다. <송연주/ 2024 신문제작실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