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우도에서 사신다. 할아버지의 원래 고향을 우도다. 대부분의 우도 주민들이 그렇듯 아이들(나에겐 아버지와 고모들)이 자라며 제주시로 넘어오셨다. 그렇게 쭉 제주시에서 사셨다. 그러다 증조할머니가 치매에 걸리면서, 할아버지는 증조할머니를 모시기 위해 우도로 들어가셨다. 그렇게 증조할머님이 돌아가신 이후에도 계속 우도에서 살고 계신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우도 살이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할아버지는 증조할머니를 모시며 우도에서 사실 때, 불편한 점이 많아 힘들었다고 하셨다. 안부차 전화를 드리면 우도에는 병원도 없고 큰 마트도 없어 지내기가 힘들다고 항상 말씀하셨다. 그래서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에 제주시의 우리 집이나 인천의 고모 댁에서 같이 살자고 했지만, 할아버지는 단칼에 거절하셨다. 불편해도, 이젠 자기가 우도에서 살고싶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자연스래 할아버지 댁은 우도가 되었다.

 할아버지 댁은 우도의 안쪽에 위치해있다. 보통 우도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해안가밖에 생각나지 않을 것이다. 우도에 놀러 온다면 대부분 해안 도로 부근에서 놀기도 하고, 이용하게 되는 대부분의 식당도 해안가 쪽에 위치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도 주민들이 실제로 거주하는 주택가는 우도의 안쪽에 위치해있다. 관광지를 벗어나, 밭들이 있는 평지를 지나면 우도의 주택가가 있다. 언제 지어진지도 모르는, 차 한대 지나다니기 힘든 돌담길 사이로 가다 보면 작은 길목이 보인다. 그 작은 길목에는 유채꽃들이 화사하게 핀다. 할아버지 댁 하면 이 작은 길목에 피어있는 유채꽃들이 햇빛을 받고 반짝이는 모습이 먼저 연상된다. 그 반짝이는 유채꽃들을 지나면, 할아버지 댁이 있다.

 할아버지 댁은 2개의 건물로 되어있다. 한 건물은 할아버지가 어릴 적에 사시던 집이다. 아궁이가 있고, 벽이 돌과 시멘트로 만들어져 있는 누가 봐도 옛날 집이다. 현재 이 건물은 허물지 않고 창고로 쓰이고 있다. 이 건물에는 할아버지가 타시는 자전거, 증조할머님이 물질할 때 쓰셨던 장비들, 농사 장비들이 있다. 또 우도 특성상 버리기 힘든 고장 난 가전제품들도 한편에 쌓여있다. 이 창고는 오랜 시간 사람이 들지 않아 사람이 살던 집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묵은 곰팡이 냄새가 나고 이젠 전기도 들지 않아 한낮에도 어두컴컴하다. 하지만 벽에 붙은 옛날 달력과 낡은 가구들이 사람 살던 집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존재한다.

 이 건물 맞은편에는 지금 할아버지가 살고 계시는 집이 있다. 예전에는 증조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고모 두 분이 살던 집이라 그런지 할아버지 혼자 사시는 집 치고는 꽤 넓다. 예전에는 작은방으로 쓰였던 방이 이젠 창고방이 되었다. 증조할머님이 쓰셨던 해녀복, 할아버지의 소중한 담금주들, 라면과 즉석식품 등 비상식량들이 있다. 안방은 지금 할아버지가 쓰고 계신다. 안방에는 침대, 할아버지의 옷장, 티브이가 있다. 우도에는 딱히 할 일이 없어 할아버지는 거의 방에만 계신다. 얼마 전 새로 장만한 티브이가 꽤 마음에 드시는건지, 티브이를 보는 것 이외에는 할 일이 딱히 없으신 건지, 하루의 대부분을 티브이만 보며 지내신다. 이런 할아버지가 마음에 걸려 틈이 날 때마다 자주 전화를 드리려고 한다.

 큰 방은 증조할머님이 쓰시던 방이다. 아직까지도 증조할머님이 쓰시던 침구가 방 한구석에 놓여있다. 전기장판이 깔려있고, 두꺼운 요 와 베개, 덮는 이불이 한켠에 개켜져 있다. 증조할머님이 돌아가신지 반년이 지나가고 있지만, 누구 하나 감히 치울 생각을 하지 못한다. 증조할머님이 한평생을 지내시던 곳이라, 차마 정리하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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