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평생 무엇을 경험할지, 자신이 원하는 만큼 행복할지 아무도 모르다.

자신이 평생 무엇을 경험할지, 자신이 원하는 만큼 행복할지 아무도 모르다.'살아 있다'는 믿음은 다른 사람의 온전한 삶에서 찾을 수 있게 해준다. 나는 고등학교 이였을 때 이 책 대충하게 읽었다. 지난학기에 어떤 고양수업에서 교수님이 도 추천을 받았다. 요즘도 다시 보기로   했다.  검은 표지의 책인 '인생'를 펼쳤다. 처음에는 아직 갈피를 잡지 못했는데, 책에서 처음에 이야기한 내용이 나를 어리둥절하게 보였는데, 필경 이 글쓰기 방식은 평소와는 조금 다른 것 같았고, 거꾸로 서술하는 것 같기도 하고, 회상적인 것 같기도 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가만히 있어도 할 일이 없다는 태도를 더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책 전체를 읽으면서 나는 크게 달라졌다.

처음에는 1인칭 '나'로 글을 썼는데, 사실적이고 공감되는 느낌이 더 컸고, 처음에는 우연히 만난 '복귀'라는 노인의 이야기를 '나'가 들은 것을 기점으로 '인생'는 의미를 절절하게 표현한 것으로 기억한다. 책 전체에서 사실 나는 감개가 자못 깊었다. 복귀한 집안의 방탕한 재벌 2세, 노름으로 가산을 잃고 빈털터리가 된 것, 이별과 영결 후의 혈육 재회, 아들의 죽음과 딸의 행복한 시집, 그리고 처남의 딸들이 잇따라 떠난 뒤 늙은 소와 함께 살아가는 삶의 과정을 보면 세 마디의 요약은 너무나 의미심장하다. 복귀한 젊은 날의 방탕함을 보면서 나는 늘 지금의 내 자신을 생각한다. 젊은 시절의 복귀 조상을 빛내지 못하고 노름에 물들어 금빛 도박에 빠져 살았고, 아내에 대한 사랑조차 나누지 못한 채 아내로서 당연히 해야 할 몫이라고만 생각하다가 결국 남은 '100무의 논밭'을 날리고 명실상부한 패가자가 되었다. 지금의 나 역시 젊었을 때 복 받은 그림자가 있다.

나는 진지하고 열심히 분투하고 공부해야 할 나이에 돈과 같은 많은 시간을 핸드폰에 소비하고 인터넷과 동화 같은 생활에 빠져들었다. 이 나이대의 여자들은 매우 부지런하고 공부하는데 자신의 추구와 목표를 가지고 있다. 생활에 있어서, 부모님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나는 부모님의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해지는 머리카락과 늙어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설령 마음이 아프다고 해도, 정말 얼마나 많은 돈을 지불한 적이 없었는지, 부모님의 어렵게 얻은 피땀 흘린 돈이 내 눈에는 그렇게 경쾌하게 보였다. 그런 소년의 시름 모를 모습은 이 책에서는 앞뒤가 달리 어딘가 쓸쓸하고 우스꽝스럽다.

평번한 행복도 충분한다.

중년 후의 복귀는 가세가 기울어 100무의 재산도 없고, 편안한 집도 없고, 탕진할 돈도 없으니,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아버지가 빚을 갚으라고 동전을 떠맡게 한 것이 처음부터 그렇게 운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하늘을 원망하지 않았다. 다만 인간 불꽃의 맛과 보통 사람들의 행복이 더 많아졌다고 말했다. 그가 빛을 벗은 후 어머니와 아내가 함께 있는 것은 사실 그의 가장 큰 행복이었다.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성에 가서 낭중을 청했는데, 도중에 장난꾸러기 아이를 도와 문을 두드려서 모욕을 당했고, 결국 그 하인과 싸우다가 군에 입대하게 되어 어머니를 위해 의사를 불러올 수 없었던 것이 몇 년의 세월이었다."마음이 슬프다.

모든 사람은 부모님이 우리를 키웠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보답은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효'는 할 수 있고 '네가 나를 키워주면 내가 너와 함께 늙는다'는 것을 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자신은 전혀 모르고 있다가 몇 년 후에 돌아왔는데, 결국 아내의 입에서 어머니가 죽기 전에 여전히 아내를 위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복귀함을 믿으세요, 그는 도박하러 간 것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모성애는 정말 귀중합니다. 설령 당신이 천 번 잘못되었다고 해도, 그녀는 당신을 원망한 적이 없다. 생명의 마지막이 라도,그녀의 자녀는 걱정됩니다.

어머니 생각이 나다. 어머니와의 관계는 아주 좋지만, 살다 보면 다툼이 있을 수밖에 없고, 가끔 어머니와 짜증을 내지만 집을 떠날 때 어머니를 특히 걱정한다. 내가 막 집을 떠나 학교에 있을 때, 처음에는 유난히 익숙지 않았고 낯선 곳에서는 늘 두려웠으며 어머니는 언제나 나를 걱정하셨고, 하루에도 여러 통의 전화가 와서 내 마음이 불편하면 전화를 걸어 하소연하셨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때 어머니는 늘 걱정이 되어 잠을 이루지 못하셨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녀는 병이 났을 때, 나에게 무슨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는 모두 잘 지내고 있어,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면 돼."어머니의 눈에는 온 세상이 우리, 우리 같은 철없는 아이들로 보였다.

나중에 복귀는 집에 돌아와 그를 기다리고 있는 어머니를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아내와 자녀들은 모두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다시 모였다. 그러나 그 순진하고 웃는 딸은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그 가족은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가족은 열심히 살았지만, 그의 삶은 계속 돌보지 않았다. 13살의 아들은 헌혈로 목숨을 잃었고, 아내는 연골 병으로 바꾸어 자신과 딸 봉하에게 무거운 짐을 짊어졌다. 그러나 겨우 167살밖에 되지 않는 여자 아이가 그렇게 힘든 일을 해야 했다. 나는 그 여자를 조금 아끼고, 그 집에서 봉하가 많은 노력을 했지만, 다만 봉하가 후에 그녀의 좋은 사람을 만나서 행복했던 시간이 조금 있었다.그러 다가 딸 봉하가 난산으로 죽고 아내도 병으로 죽고, 그 착한 사위 이희마저 일하다가 목숨을 잃고, 하나뿐인 손자 고근도 결국 죽고, 복귀백발인은 흑발인을 보내는데, 그 구절을 보고 "복귀가 돈을 모아 목숨이 삼 년밖에 없는 늙은 소를 한 마리 사서 서로 의지하며 복귀라는 이름을 지어 하루 종일 밭에서 농사를 지으며, 소의 몸에서 죽은 처자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여기까지 보니 외로운 노인과 늙은 소가 함께 있는 쓸쓸한 광경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사실 호라스의 말처럼 인간의 행복은 최후까지 기다려야 한다.

인간은 살아 있는 그 자체를 위해 사는 것이다

우리가 인생의 어느 단계에 있든 간에, 인간은 살아 있는 그 자체를 위해 사는 것이지, 살아 있는 것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복귀가 있는 삶의 시대적 배경은 약간 회색빛을 띠고 있을 수 있다.국민당 통치 후기부터 해방 전쟁, 토지 개혁 운동, 철강 대련 운동, 자연 재해 시기까지……소설은 의도적으로 사회정치적 배경을 희석시키지만 오히려 복귀가 몸부림치려 해도 빠져나올 수 없는 무기력함을, 고난의 밑바닥의 가장 원시적인 생존상태를 보다 쉽게 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복귀의 인내의 길을 더욱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어쩌면 인생의 전반을 죄로 갚아야 할 수도 있고, 인생의 과실을 선택할 수 없을 수도 있고, 삶의 과실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래서 살아 있는 사람 자체가 위대하고, 그는 너무 많은 존재의 삶과 부재, 발생과 발생하지 않은 사고를 이겨냈습니다.

살아가면서 무슨 말을 더 할 필요가 있겠는가. 위화는 자서 문에서 "'살아 있다'한국어로 번역하면 인생은 원래 의미는 우리 중국 언어에 힘이 넘친다"며 "그 힘은 고함이나 공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우리에게 주는 책임을 견디고, 현실이 우리에게 주는 행복과 고난, 지루함과 평범함을 참아내는 것"이라고 말했다."우리가 참고 견디는 법을 배울 때, 낙천으로 삶의 무게를 견디는 법을 배울 때, 우리가 살아온 것을 책임으로 삼을 때, 고난과 슬픔은 이제 막 고난과 슬픔을 말하는 것처럼 씁쓸하지 않고, 자연 속에 절망도 존재하지 않는다.'절체절명의 일발'은 아마도 이런 고난에 대한 엄청난 감수성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살아가고, 책임지고, 낙천적이고, 견지하고, 모든 어휘를 합치면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덤덤해! 만년의 복이 내게 준 가장 큰 감명이야. 세월의 연마로 마음은 먼지 속에서 연꽃을 씻어내고, 맑고 깨끗해졌다. 수많은 세계를 여행하고, 생명의 폭우를 경험했지만, 응축된 것은 생명의 한 줄기 맑은 물이며, 유수와 같은 해에 부드러움을 더하고, 낙엽 속에서 생명이 평온하고 아름다울 수 있도록 합니다. 평온한 나날에는 꽃이 몇 개 피었느냐고 묻지 않고 그저 웃으며 편안했느냐고 묻는다. 사람마다 소가 하나씩 있으면 편안하고 자유롭다.

모든 이야기를 다 읽고, 인물의 결말을 이미 이해하여, 마음속의 떫은맛은 오래도록 가라앉지 않았지만, 만년의 복귀한 마음속의 담담함도 우리 독자들에게 일말의 위안을 주는 셈이지!

이렇게 말하니 내가 지금 가진 모든 것에 감사하기 시작했고, 복과 귀한 것이 쉽지 않은 것에 비해 나는 너무 행복했다. 낙천적인 마음을 담아 천천히 노래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보자.

노력하게 살자

작가 위화(华華)는 "사실 자신이 쓴 것은 희망에 관한 이야기"라며 "부귀한 경험에서 자신의 운명을 비추는 것은 마치 다른 거울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출생연대가 70년대 초반인 그의 소감은 그래서 우리가 더 생각해야 할 것은 죽음도, 재앙도 아닌 더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엄마가 다 본 생각은 불행을 체험한 사람만이 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반드시 죽음의 고통을 체험해야만 비로소 삶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인생은 죽음을 걱정하기보다 열심히 사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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