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트랙을 숨을 헐떡이며 질주하는 사람들이 있다. 최대한 빨리 도착선에 도달하기 위해,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정신없이 달리느라 이들은 자신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조차 확인할 시간이 없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트랙을 질주하는 이 릴레이 선수들은 누구일까? 바로 취업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리는 이들, ‘취업준비생’이다.
취업검색엔진 ‘잡서치’와 취업전문포털 ‘파인드잡’이 대졸 취업준비생 1155명을 대상으로 ‘자신이 허용하는 취업준비 기간’을 주제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26.7%가 ‘졸업 후 1년’ 안에는 꼭 취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간은 상관없다’는 응답이 22.6%로 2위에 올랐지만 ‘졸업 후 6개월 이내’(19.7%), ‘졸업 후 2~3개월 이내’(15%), ‘졸업 후 한 달 이내’(7.2%), 그리고 ‘졸업 후 2년 이내’(8.8%)라고 답한 응답 비율을 합하면 ‘졸업 후 2년 이내’까지 ‘취업준비생 타이틀’을 스스로에게 허용할 수 있다는 응답자는 무려 77.4%, ‘졸업 후 1년 이내’는 68.6%, ‘졸업 후 6개월 이내’는 41.9%의 비율을 차지했다.
대부분의 취업준비생들이 자신에게 허용하는 취업기간을 정해놓고 있다는 것이다. 제한된 기한이 주는 긴장감과 압박이 목표를 달성하는 시간을 단축시키는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자신이 가고 있는 방향도 목적도 잊은 채 앞만 보고 가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실제로 20~30대를 대상으로 실시한 ‘귀하는 처음 목표했던 분야에 계속도전하고 있습니까?’(취업검색엔진 잡서치와 취업전문포털 파인드잡이 공동으로 실시)에 대한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2.4%가 처음 취업을 목표했던 분야를 유지하지 못하고 방향을 바꾼 것으로 나타났다. 즉, 그들이 느끼는 취업에 대한 압박감이 목표를 달성하는데 이로운 효과를 주기 보다는 오히려 신중한 판단을 저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취업 우울증’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취업에 대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그들. 미래에 대한 방향을 잃고 흔들릴 정도로 그들을 조급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은 과연 ‘청춘’을 제대로 누리고 있을까? 실제 취업준비생인 A양(24)과 B양(24)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고충과 현황을 파헤쳐봤다.
- 취업준비만 2년, 내 욕심만 부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죠.

제주시청 근처 한 카페에서 A양을 만났다. 약속시간보다 살짝 늦게 도착한 A양은 “아르바이트하고 있는 카페에서 퇴근이 늦어져서 좀 늦었어요. 미안해요.” 하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뛰어왔는지 가픈 숨을 몰아쉬면서도 A양은 연신 미안해했다. 현재 항공승무원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는 A양은 생활비와 학원비를 충당하기 위해 노형에 있는 한 카페에서 주중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했다. “취업준비만 2년이 넘어가다 보니 이젠 용돈을 받기도 눈치가 보이네요.”라고 말하며 지은 그의 미소에서 민망함과 약간의 씁쓸함도 같이 느낄 수 있었다.
# 취업준비만 2년이면 중간에 취업기회가 있었을 법도 한데, 그런 경험은 없었나?
"있었죠. 사실, 2년간 놀기만 한건 아니고 에버랜드나 카페 골프장에서 아르바이트도 했었고 호텔에도 잠깐 직원으로 근무했었어요."
# 아르바이트는 그렇다 쳐도 호텔에 직원으로까지 들어가서 나중에 그만둔 이유는 무엇인가?
"아까 말했다시피 하고 싶던 일(항공승무원)이 (따로) 있었어요. 그런데 취업준비기간이 1년 이상 가다보니까 더 이상 취업준비만 할 수는 없는, 그런 분위기가 조성됐죠. (호텔취업은)어쩔 수 없었어요. 처음 호텔에 들어갈 때는 꿈의 반은 포기한 상태였어요. 호텔 일이 적성에만 맞으면 계속하려고 생각했었거든요. 일이 딱히 (적성에)안 맞았던 것은 아닌데 (꿈에 대한)미련이 계속 남더라고요."
# 취업준비만 할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취업준비만 한지 1년째가 넘어가니까 집안 어른들이 절 보면 '네 나이가 몇 살인데', '졸업을 한지가 언젠데 왜 정착을 못해' 이런 얘기만 하더라고요. 친한 친구들이야 '괜찮다', '우린 아직 젊다' 이렇게 말해주지만 어른들은 반대로 '졸업을 하면 취업을 했어야 했다', '24살이면 정착을 했어야 했다' 이런 생각이 박혀있어요. 제 욕심만 부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어요."
# 취업준비기간이 1년 이상 지속된 것을 보면 항공승무원이라는 직업이 경쟁이 굉장히 치열한가보다.
"네. ‘승무원 학원’이라는 것도 있어요. 학원비가 거의 대학 등록금 수준인데 진짜 욕심 있는 친구들은 승무원 학원에 스피치 학원, 피부미용, 성형까지 엄청나게 투자해요. 거기다 영어는 기본이고 중국어에 적성검사에....... 비슷하게라도 하려면 돈도 많이 들어요. 안 그래도 승무원한다고 했을 때, 집에서 반대랄까? 그런 게 좀 있었거든요. ‘네가 (항공사에 취업)할 수 있을까?’ 이런?(웃음) 그런 상황에서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도 없고 그래서 아르바이트랑 (승무원)준비를 같이했죠."
# 아르바이트와 취업준비를 병행하려면 굉장히 힘들겠다. 꿈이 ‘항공승무원’이라면 거기에 맞는 스펙 쌓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텐데.
"진짜 힘들어요. 사실 이도 저도(취업준비도 아르바이트도) 제대로 안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그래서 부모님께 제대로 (항공사 취업)준비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던 적이 있었어요. 허락은 했어요(웃음). 그런데 일하면서 같이 하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예전엔 취업문턱이 낮아서 그게 가능했을지 모르겠는데, 요즘에는 토익, 자격증같이 준비해야 될게 너무 많아요. 거기다가 아르바이트라고 해도 업무가 근무지에서 끝나는 게 아니에요. 집에 와서도 처리해야 될 문제가 있고 시스템이 바뀔 때마다 외워야 될 것도 많아요. 여기다 취업공부까지 병행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요. (승무원 준비를 위해서) 지금 아르바이트 하고 있는 카페도 그만둬야 될지 고민하고 있긴 한데, 또 집안 어른들 눈치 때문에 쉽게 결정은 못 내리겠네요."
# 취업을 준비하는 기간이 꽤 오래 지속되고 있는데 (승무원 이라는 꿈을)그냥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는가?
"호텔에 잠깐 취업한 것도 그 생각에서였죠. 그만두고 다시 (취업준비를)시작했지만 아직도 갈등이 많이 돼요.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 시선도 신경쓰이고, 무엇보다 이제 25살인데 이래도 되나 싶기도 하고. 매일매일 불안하고 갈등되고 그래요. 그렇지만 꿈을 포기하고 적당한데 취업하면 미련이 너무 남을 것 같아요."
# 마지막 질문이다. 현재 청춘을 충분이 누리고 있는가?
"아니요.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졸업 전에도 졸업 후에도 취업걱정 하느라 제대로 (청춘을) 못 누렸어요. 학교 다닐 땐 여기저기 학원 다니느라 바빴고 그 학원비 충당하려고 아르바이트 하느라 더 바빴어요. 웃긴 게(웃음),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도 (내가 원하는 취업 자리)기준점에 못 미친다는 거예요. 학교활동도 열심히 하고 상도 많이 탔었는데 그랬어요. 차라리 그 돈으로 여행이나 많이 다닐 껄 후회가 많이 남아요. 대학 다닐 때 친구들과 놀러가서 찍은 사진들도 많이 없어요. 예전에 사용하던 컴퓨터 폴더를 보니까 취업관련 정보나 “너는 할 수 있다”, “성공할 수 있다” 같은 문구 캡쳐 한 것만 잔뜩 있더라고요.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인터뷰 내내 밝은 얼굴로 응했지만 답변 속에서 현재 느끼고 있는 고충과 불안을 느낄 수 있었다. 스펙 쌓는 데 몰두하느라 청춘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지만 그런 노력에도 취업 기준점에 맞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답했을 때는 인터뷰 도중 처음으로 자조적인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꿈이 있지만 점점 높아져만 가는 기준점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멀어져만 가는 꿈. 그 와중에 미취업자에게 보내는 주변사람들의 무언의 압박은 A양의 어깨를 점점 더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꿈과 현실에 경계에서 힘들어 하고 있긴 하지만, 꿈이 확실히 있었던 A양과 달리, B양은 졸업 후에도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졸업 후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가기로 결심한 B양은 워킹홀리데이 비자 1년을 모두 채우자, 학생비자로 전환해 현재 시드니에 있는 한 대학에 재학하면서 2년째 체류 중이다. 현재 해외 체류 중인 B양을 직접 만날 수가 없어 전화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 한국에서의 각박한 삶을 피해 떠난 호주, 이 곳에 진정한 '나'를 찾았어요.

지난 저녁, B양으로부터 먼저 연락이 왔다. 취업준비생을 주제로 기사를 쓸 예정이니 추후에 있을 인터뷰에 응해달라 부탁한 후 따로 인터뷰 날짜는 잡지 않은 상태였다. 예고에 없던 전화라서 당황했지만 마침 별다른 일이 없었던 터라 바로 전화를 받았다. 축 처진 목소리로 전화를 받은 B양은 “지금 막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으로 가는 중이예요.”라고 말했다.
B양은 낮에는 학교, 저녁에는 카페에 일하며 빠듯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다. B양은 아르바이트를 끝나고 귀가하는 지금이 아니면 짬이 안날 것 같아 급작스럽지만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거의 녹초가 된 목소리로 전화를 건 B양이 안쓰럽기도 했지만 빠듯한 스케줄로 힘들어하면서도 호주에 계속 머무는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다. B양은 심지어 호주 영주권을 따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도 했다. 그가 호주에 느끼는 매력은 무엇일까? 먼저 호주로 어떻게 오게 됐는지 물었다.
“졸업 후에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뭘 해야 될지 모르겠는거예요. 그 와중에 집에서는 또 아무데나 빨리 취업해서 좋은 남자 만나서 시집이나 가라고 했었거든요. 그러긴 정말 싫었어요. 취업을 못 한건 아니고 안했던 거였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무데나 취업해서 기계처럼 일하면서 살고 싶진 않았어요. 그런 삶을 사는게 너무 무서웠고 내 젊음을 바치기 싫었어요. 그때 마침 학교에서 워킹홀리데이 가는 학생들에게 지원금을 주고 있었거든요. 나의 꿈을 찾을 시간이 필요했어요. 한국에서는 그럴 시간을 도저히 얻을 수 없을 것 같았죠. 그래서 마침 학교에서 지원도 해준다길래 외국으로 간거였어요. 뭐, (착잡한) 현실에서 도망친거라고 볼 수도 있죠.(웃음)”
# 외국에서 맨몸으로 부딪힐 생각을 하다니, 굉장히 당차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생활엔 만족하는가?
"여기 와서 자립심이 아주 강해졌어요. 여기에 가족이나 친지가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생기든 혼자서 해결해하는 습관이 생겼죠. 힘들지만 그걸 견뎌내면서 억지로 얻어지는 성숙함 같은게 있어요. 이젠 어디 떨어뜨려놔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이렇게 얻은 것도 많지만 사실 가족이나 친구가 없어서 많이 외로워요. 그래서 이 생활에 완전히 만족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절대 (호주에 온 것을)후회하는 건 아니에요."
# 내가 원하는 꿈을 찾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서 떠났다고 했다. 원하던 바를 이루었는가?
"비슷한 지점까진 온 것 같아요. 뚜렷하게 ‘이런 걸 하고 싶다’라기 보다는 자아를 찾은 느낌?(웃음)남을 의식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됐어요. 엄마가 원하는 꿈, 친구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꿈이 아니라, 내가 진짜 원하는 꿈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됐죠. 한국에서 가족이나 친척들 사이에 계속 있었으면 아마 꿈도 못 꿨을 일들이죠. 혼자만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것 같아요. 분위기에 못 이겨서 취업하려는 사람에게 워홀(워킹홀리데이) 추천합니다(웃음)."
# 현재 호주 영주권을 따기 위해 준비중이라고 했다. 이대로 호주에서 정착할 생각인가?
"나중에 어떻게 마음이 변할진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래요. 한국에서의 각박한 삶, 눈치보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한국에선 취업이란 구멍을 뚫기가 참 힘들어요. 취업한다고 해도 박봉 받으면서 생활비에 집세에 적금에 쪼달리면서 살 거 생각하면 내가 별로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아요. (한국에서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면) 한국에 붙어있을 이유가 없죠. 그런데 여기서는 자리잡힌 후 5년 후, 10년 후가 기대돼요. 아직은 구상정도만 하고 있는건데 20대 안에 영주권 따는 거랑 길게 배낭여행 떠나는 걸 꼭 해보는게 목표예요. 30개국 정도? 옛날에 집에서 이런 얘기 했다가 ‘배낭여행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공부나 해’ 라는 말만 들었어요(웃음). 한국이란 나라는 여행이 멀게만 느껴져요. (여행을 가려면)무언가를 그만둬야하고 용기가 필요하죠. 그런데 여기서는 한 달씩 휴가내고 자유롭게 여행 다니는 게 일상이에요. 옛날엔 생각도 못해본 목표들이 여기선 현실로 다가와요."
# 마지막 질문이다. 현재 청춘을 충분히 누리고 있는가?
"여기(호주)와서 많이 달라졌어요. 지금은 너무 바쁘고 뭘 했다고(이뤘다고) 하기도 애매하지만 목표가 생겼고 그 목표들이 뜬구름 잡는 것들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와서 설레고 그러네요. 한국에 있을 때 보다 그런 면에서 훨씬 좋은 것 같아요."
목소리밖에 들을 수 없었지만 그 목소리에서 자신감과 설렘에 찬 표정까지 묻어나는 것은 착각이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따라가는 궤도를 벗어나 꿈을 찾기 위한 외국행을 택한 B양의 과감한 선택은 어쩌면 신의 한수였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학생과 취업 사이 그 애매한 경계에 있는 ‘취업준비생’을 ‘돌연변이’처럼 바라본다.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못한 그들을 비정상의 범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스펙쌓기나 금전적 어려움에 시달리는 이들은 이 ‘돌연변이’라는 딱지 때문에 더 조급해하고 불안해한다.
청춘은 봄, 무언가를 이제 막 시작하는 시기이다. 시작이 반이라고, 준비하고 설계하는 이 단계는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이런 과정을 무시하고 청춘들에게 그저 빨리 꽃을 피우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취업준비생은 ‘돌연변이’가 아니라 단지 새싹에서 꽃이 되기 위한 성숙기 놓여 있을 뿐이다.
그들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로에 놓여있다. 후회 없고 만족스러운 봄을 보낼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여름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할 여유가 그들에겐 필요하다. 늘 뛰어만 갈 것이 아니라 도중에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여유, 앞만 보고 가는 게 아니라 옆도 보고 뒤도 보면서 지나온 길을 점검해볼 수 있는 ‘여유’ 말이다. <2015 신문제작실습 / 임지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