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아웃 2>로 지난해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은 픽사는 <소울>, <코코> 등의 영화를 통해 사람의 감정을 특색있는 캐릭터를 통해 이야기하였다. <업> 또한 사람의 감정을 상징적인 캐릭터 표현이나 설정을 통해 서사적으로 풀어낸 작품 중 하나로, 2010년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 상을 수상한 바 있다. <업>은 풍선을 단 집이 하늘로 올라가면서 생기는 주인공의 감정 변화를 다룬다.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모험물처럼 보일 수 있지만, <업>에서의 여행은 단순한 여행이 아닌 삶과 죽음, 상실과 회복이라는 내면의 항해에 더욱 가깝다. 주인공인 칼은 지금은 세상에 없는 아내 엘리와 자신이 평생 꿈꾸던 파라다이스 폭포로 떠나는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는 칼의 어린 시절과 엘리와의 첫 만남으로 시작된다. 항상 풍선을 들고 다니는 칼은 어느날 홀로 탐험가 놀이를 하는 엘리를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서로를 경계했지만, 엘리가 칼에게 포도 주스로 만든 뱃지를 전해주면서 점점 경계심을 풀게 되었다. 이후 전설적인 탐험가 찰스 먼츠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으로 가까워진 두 사람은 곧 친구가 되고, 탐험가 놀이를 하면서 더욱 친목을 다진다. 놀이 도중 잃어버린 풍선을 찾기 위해 탐험을 하다가 발을 다치게 된 칼을 위로하기 위해 엘리는 칼의 풍선을 직접 주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칼이 실수로 풍선을 터뜨린다.
칼의 풍선이 터지는 순간 풍선이 터지는 소리가 카메라 셔터 소리로 이어지는 사운드 매치 기법을 이용하여 결혼식 장면으로 컷이 전환된다. 이어지는 무성 시퀀스에서는 대사 없이도 두 사람의 결혼생활이 따뜻한 색감과 반복되는 장면을 통해 그려진다. 함께한 일상과 꿈, 그리고 그것을 이루지 못한 채 엘리가 눈을 감는 장면까지, 삶의 희로애락이 말없이 축적된다. 대사 하나 없는 5분의 시간 동안 우리가 이 장면을 통해 칼의 인생에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말보다 강한 시선과 몸짓, 공간의 변화와 음악이 감정의 흐름을 이끌기 때문이다. 짧은 장면 속 반복과 축적의 리듬은 사랑과 상실, 희망과 좌절이라는 보편적 정서를 압축하며 관객의 감정을 깊이 흔든다.
엘리의 죽음 이후 혼자가 된 칼은 엘리와의 추억이 담긴 집을 지키려 하지만, 재개발이 한창 진행되는 동네에서는 칼의 추억은 그저 구박데기일 뿐이다. 삶의 의욕을 잃은 칼은 굴뚝에 수천 개의 풍선을 매달고 자신과 엘리가 그토록 꿈꾸던 모험을 떠난다. 홀로 하는 여행인 줄 알았건만, 경로 봉사활동 뱃지를 받으려던 동네 꼬마 러셀이 합류한다. 뜻밖의 여정을 함께하게 된 두 사람은, 풍선으로 떠 오른 집을 타고 머나먼 남아메리카의 하늘길을 향해 나아간다. 러셀은 어린 나이에도 새로운 것에 두려움이 없고, 뛰어난 순발력, 준비성까지 철저하게 갖춘 모험 전문가처럼 보인다. 게다가 친화력도 좋아 말하는 강아지 저그와 거대한 희귀 새 케빈과도 금방 친해진다.
러셀, 더그, 케빈의 등장은 칼과 성격적으로도, 외형적으로도 비교가 되는 캐릭터들의 등장이다. 과거의 슬픔에 사로잡혀 부정적이고 고집스러운 칼의 외형적 모습은 각지고, 직사각형이 생각나도록 디자인되었다. 반면 칼과 모험을 하는 3명의 등장인물은 원형과 곡선이 많이 사용된 캐릭터 외형을 가지고 있다.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원형과 곡선을 통해 미래를 상징하고, 직선, 각들의 대비를 통해 등장인물들의 대비를 더욱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때 위대한 탐험가로 추앙받았지만, 과거와는 달리 권력만을 좇는 찰스와 만나는 첫 장면에서는 기존 칼과 러셀의 모험에서 보여주었던 화려하고 다양한 색감에 반해 어둡고 붉은 색감을 활용해 으스스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찰스의 외형 역시 직선과 딱딱한 각으로 구성되어 있는 부분은 더 이상 탐험가로서 칼과 엘리가 존경했던 모습이 아닌 권력욕에 잠식되어 칼과 러셀에게 극악무도한 일을 스스럼없이 자행할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해 기존 등장 인물에게 어려움을 줄 것이라는 추측을 하도록 한다.
탐욕에 사로잡혀 스스로 전리품을 부수는 등 찰스의 변한 모습은 칼에게 큰 충격이 되고, 엘리와의 추억이 담긴 집에 애착을 가져온 자신의 집착을 되돌아보게 된다. 찰스에 의해 러셀, 더그, 케빈이 위험에 빠지는 모습을 본 칼은 결국 엘리와 함께한 공간보다는 현재 곁에 있는 이들과의 소중한 관계를 선택한다. 엘리와의 추억으로 가득한 집안의 잡동사니들을 버리고 친구들을 구하러 간다. 그는 지팡이와 틀니를 무기로 삼아 찰스와 싸우고, 집을 떠나보내며 한층 가벼운 마음으로 자유로워진다.
<업>은 '모험'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에 두고 있지만, 그것이 꼭 파라다이스 폭포처럼 먼 곳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칼은 엘리가 남긴 모험 일기를 읽으며, 그녀와의 일상을 떠올린다. 그리고 일기의 마지막 장에 적힌 “모험을 하게 해줘서 고마워. 그럼 이제 새로운 모험을 즐겨봐!”라는 문구를 통해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것보다 현재의 모험, 즉 나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깨달음은 아내와의 기억이 담긴 물건을 떠나보내고 친구들을 구하러 나서는 결단으로 이어진다.
그의 깨달음은 모험이 끝난 이후, 상급 대원 수료식에서 칼이 러셀에게 수여한 엘리의 포도 주스 뚜껑 뱃지를 통해 더욱 상징적으로 나타난다. 러셀에게 수여한 뱃지가 비록 정식 탐험대 뱃지는 아니지만, 애지중지했던 엘리의 물건을 러셀에게 주는 장면을 통해 더 이상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주어진 현재에 집중하겠다는 칼의 바뀐 생각을 하나의 장면을 통해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영화는 단지 하늘을 나는 집을 통해 기상천외한 모험담을 그린 것이 아니다.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마주하게 되는 사랑과 이별, 상실과 회복, 그리고 새로운 관계의 소중함에 대한 깊은 이야기이다. 칼은 사랑하는 이를 보낸 상실의 아픔 속에 잠겨 마음을 열지 않다가, 새로운 관계를 통해 삶의 의미를 다시 찾아나간다. “다람쥐는 도토리가 없다고 죽는 것이 아니니까!” 영화에 나오는 더그의 은유적인 대사처럼 그의 여정은 화려한 목적지를 향한 외적인 탐험이 아닌, 마음속에 얽힌 과거를 정리하고 새로운 타인과의 연결을 통한 내면의 모험에 가깝다.
이는 모험이란 꼭 특별한 사건이 발생해야만 하고 같은 장소에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다 같이 웃고 때로는 다투기도 하며 일상을 공유하는 관계 안에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렇기에 <업>이 말하는 삶의 비행은 하늘을 나는 장면처럼 거창한 것만이 아닌, 우리가 매일 스쳐 보내는 소소한 순간들이야말로 진정한 모험임을 일깨워준다. 결국 인생은 거대한 사건보다, 함께 나누는 눈빛과 침묵, 사소한 웃음 속에 더 깊이 깃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저널리즘 문장론 / 김지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