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 2013.7.)
<비정근> (히가시노 게이고, 2013.7.)

 

가족독서릴레이에 내가 선정한 책은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비정근>이라는 소설이다그는 <용의자 x의 헌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백야행> 등의 소설들을 저술한 일본 유명 작가이다.  책을 선정할 때 다른 것은 고려하지 않았고 그냥 모두 가볍게 읽고 재미를 느끼는 책을 고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집에 있는 책 중 300페이지 정도의 너무 길지는 않은 분량의 추리 소설을 선정해봤다. 주인공의 직업이 초등학교 기간제 교사인데 엄마도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어 좀 흥미를 느끼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빠도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이어서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작가의 존재도 아빠가 나에게 알려줬다) 첫 순서로 책을 읽었는데 책을 다 읽는 데에는 일이 바빠 이틀 정도가 걸렸던 것 같다.

이 책은 초등학교 기간제 교사인 가 주인공인 이야기 6, 초등학생이 주인공인 이야기 2편으로 구성되어 각각 다른 배경에 다른 사건들이 전개되지만 주인공이 어느 초등학교의 기간제 교사라는 사실은 동일하다. 그 교사와 학생들이 학교를 다니면서 살인, 도박, 왕따, 독극물, 보험사기 등 다양한 사건들을 맞이하면서 그 사건의 전말이나 범인을 밝혀내는 추리 소설이라 할 수 있다. 기간제 교사가 사건을 풀어헤치는 과정에서 초등학생 아이들은 그 사건들의 당사자가 된다. 범인이 될 수도, 가담자가 될 수도, 방관자가 될 수도,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책을 다 읽고 딱 느낀 감정은 불쾌하지 않은 기괴함이었다. 이야기들은 대체로 권선징악의 구조로 일맥상통하게 흘러간다. 어떠한 사건이 일어나고, 기간제 교사가 그 사건을 탐정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결국 범인을 찾아내거나 사건의 전말을 밝혀내고 그 사건의 소용돌이에 있었던 아이들은 후회의 눈물을 흘리거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결국 어른의 용서를 받는다. 재밌는 점은 이 이야기들(일부)에서 사건의 중심인 아이들은 어른들의 시선으로 볼 때 결코 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이라고 칭하면 편할 정도이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범인이 되지는 않는다. 작가는 소설 안에서 아이들과 함께 수영치며 결코 아이들을 바다에 빠져 죽게 만들지 않겠다는 부모의 역할을 다한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아이들은 자유로이 소설 안을 누비며 상당히 위험한 짓들도 자행하지만 작가는 그 행동들을 악의가 없으며 충분히 용서받을 수 있다 평가하며 마지막에는 아이들이 앞으로의 삶을 나아갈 수 있도록 교훈을 주며 힘을 북돋아 주기도 한다. 마치 순수함을 인테리어로 꾸며진 영화관에서 아이들과 나란히 앉아 성인 영화를 관람하는 기분이었다. 기묘하면서 기괴했지만, 그래서 더 재밌었던 것 같다.

이 기괴함을 설명하기에 강하게 딱 떠오르는 에피소드는 두 편 정도다. 3‘10X5+5+1’, 4우라콘이 그것이다. 3장에서 사건의 중심인 아이들은 교실 쪽에서 떨어진 새의 죽음을 선생의 잘못이라 하고 선생을 무시한다. 선생이 용서를 구하자 그 방법으로 고소공포증이 있는 선생에게 교실 창밖으로 번지점프를 하기를 요구한다. 그리고 선생은 번지점프를 하다가 로프 문제로 결국 바닥에 떨어져 사망한다. 작가는 여기서 잘못을 고하는 아이의 울음을 악의없음의 증거로 제시한다. 기괴하다.

4장에서 사건의 중심인 아이들은 우라콘(뒤에서 하는 콘테스트)라는 역인기투표를 장난으로 진행한다. 반에서 제일 싫어하는 아이 한명을 정해 익명투표를 하고 그 투표를 한 종이가 담긴 엽서를 그 아이 집 우편함에 넣는 것이다. 소름돋는 것은 익명투표이기 때문에 그 엽서를 많이 받은 사람만 슬프고 다른 아이들은 죄책감이 덜해져 기명투표보다 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주동자 아이의 생각이다. 결국 엽서를 많이 받은 아이는 충격을 받아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 시도를 하게 되고, 가까스로 살아남는다. 주동자 아이들은 피해자에게 찾아가 우리가 장난으로 엽서를 많이 모아서 피해자에게 보냈다며, 결코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고 피해자를 위로하며 피해자는 그걸 듣고 안심하면서 사건은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역시 기괴하다.

사건 전개 하나하나를 따져보면 사회적으로 적지 않은 지탄을 받을만한 일들이지만 작가는 추리 소설이라는 특성과 아이가 갖고 있는 철부지라는 특성을 이용해 이것을 불쾌하지 않게 풀어낸다. 소설은 피곤함이 없이 쭉쭉 읽히는 기분이다. 여러 편의 동화를 읽는 것 같기도 하고,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의 한 에피소드를 글로 읽는 듯한 재미도 있다. 역시 아이들의 얘기라는 사실이 주는 힘인 것 같다.

제일 인상깊었던 구절은 다음과 같다. “얘들아, 인간이란 약한 존재야. 나도 약해. 너희들도 약해. 약한 사람들끼리 서로 도와가면서 살지 않으면 아무도 행복해질 수 없어.” 인상깊었던 이유는 아무래도 이게 제일 작가가 이 소설에서 하고싶었던 말이라고 느껴져서이다. 이 작가는 소설에서 권선징악의 기조를 유지하지만 굳이 아이들의 악함을 강조하려 하진 않는다. 오히려 약함을 강조하며 그 약함을 극복하는 과정 속에서 용서와 희망, 평화가 실현되길 원하는 것 같다. 이게 내가 불쾌하지 않은 기괴함이라는 감정을 느낀 이유이다.

가족독서릴레이다보니 엄마, 아빠는 각자 책을 읽고 짤막하게 감상평들을 남겨주었다. 두 명이 다 읽느라 시간이 꽤 걸렸지만 그래도 읽어준 것만 해도 어딘가 하는 생각에 감지덕지하면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아빠는 평소에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소설들을 읽어왔는지 그답지 않다라는 평을 남겼다. 히가시노 게이고 답지 않은 푸근한 느낌을 준다고 했다. 명석하고 치밀한 구성을 통해 범인을 추적해나가는 기존 소설들의 전개와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고, 이러한 구도 설정이 오히려 더욱 인간적인 면모를 돋보이게 한다고 했다. 또한 소설 속의 기간제 교사와 같이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애정을 같고 관찰하는 모습을 보이면 좋겠다는 말로 감상평을 마쳤다.

엄마는 본인이 현직 교사로서 실제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기간제 교사들의 힘듦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현실 속에서 <비정근소설과 같은 사건들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비슷한 사건들을 떠올리게 된다고 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교사로서의 책임감과 소명의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고 가다듬는 계기가 되었음을 고백하며 감상평을 마쳤다.

이렇게 부모님과 다같이 한 책을 공유하여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굉장히 새롭고 신선한 경험이었고 또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를 알게 되어 큰 수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추리 소설은 흥미가 가는 편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소설들도 앞으로 접해볼 생각이다. <2024출판문화론/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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