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엔 그들이 있었다
책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읽고
잊혀진 자들이 있다. 그들은 역사 속에서 지워졌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채로 노인이 되었다. 그들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전쟁은 줄곧 남성의 것으로 인식되어왔고, 인지하지 못한 사이 나도 그것을 남성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현재에 와서도 전쟁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과거에 비해 전쟁은 직접적으로 겪어보기 힘든 일이 되었다. 그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겁이 많은 나는 우크라이나의 소식을 접하고 나서 공포를 느꼈다. ‘도대체 왜, 하필이면 전쟁을 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오랜 시간 내 머릿속을 떠다녔다. 이것도 어쩌면, 저자가 말하는 여성의 관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전쟁은 증오가 아닌 공포이자,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전쟁에는 죽음이 따른다. 죽음, 나는 아직 어리기에 죽음을 눈앞에서 직접 목격한 경험이 거의 없다. 그것이 잔혹한 죽음이라면 더더욱. 내가 본 거라곤 드라마와 영화에서의 죽음밖에 없다. 누가 봐도 거짓이라고 알 수 있는 꾸며진 죽음 말이다. 그 시절, 여인들은 적나라하고 참혹한 광경을 눈앞에서 보았다. 자신의 코앞에서 피를 흘리며 하나둘씩 쓰러지는, 극의 역할이 아닌 진짜 사람들을···. 그들의 기억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어쩌면 그들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전쟁 중에 총을 쏴서 적군을 죽였다. 적군일지언정, 사람을 죽인 것이다. 내 손으로 사람을 죽였다는 것을 인지하고 나면, 과연 제정신일 수 있을까? 아마도 나는 죄책감에 몸부림치고, 사람들을 피해 도망쳤겠지. 이것이 그들이 살아온 현실이다.
잔혹하게도, 이런 현실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진다. 굶주린 동료들이 망아지를 죽이라고 하자, 여성 저격수는 잠시나마 정이 들었던 망아지에게 총을 쏜다. 후에 자신의 행위를 인지한 저격수가 눈물을 쏟긴 하지만, 이 부분을 통해 오랜 전쟁 동안 그들이 얼마나 죽음에 익숙해졌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들에게도 전쟁은 힘든 시기였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때 ‘PTSD’가 유행어로 사용되던 시기가 있었다. PTSD란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뜻하는 말로, 전쟁 후 겪는 트라우마, 후유증 등을 의미한다. 예를 들자면, 조별과제에 대해 안 좋은 경험이 있었던 사람이 후에 조별과제를 또 하게 되었을 때 ‘아, 조별과제 PTSD 온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평소 밈이나 유행어를 좋아하던 나 또한 이를 습관처럼 사용하곤 했다. 아, 이 얼마나 무지한 모습인가! 별것도 아닌 일에 PTSD를 붙여가며 말했던 기억들이 창피하기 그지없다. 그동안 나는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조롱한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책을 읽기 전, 전쟁의 속사정에 무지했을 때만 할 수 있는 바보 같은 말이 아닌가 싶다.
이 책에 나오는 전쟁의 시기는 지금과 멀리 있기도 하다. ‘참전해서 사람을 죽인 여자가 어떻게 결혼할 수 있나’, ‘여자가 나보다 직급이 높다니’ 같은 반응이 널리 퍼져있던 시기. 남성이 승전의 영웅으로 평가되는 동안 참전 여성들은 이러한 시선을 받았다. 그들은 이를 피해 도망치기도 했고, 정면으로 맞서 보여주기도 했다. 그들이 둘 중 어떤 선택을 했든, 따뜻한 한마디를 건네고 싶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그들은 이 책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들은 아마 기억되더라도, 영웅으로 추앙받는 것은 원치 않을 것이다. 그들이 고통스러워하는 과거를 내가 지워줄 수는 없기에, 그저 그들이 남은 일상을 평범하게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책을 통해 그들은 기억될 것이다. 더이상 그들의 존재를 지우지 말기를. 이제는 기억될 자들이 그곳에 남아있다. <최예슬 / 2022 저널리즘문장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