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만 뛰어가는 세상 속, 모두가 가쁜 숨을 내쉰다. 숨 고르기가 필요할 때 독립출판물은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쉼표를 찍게 한다. 긴 문장 안에서도 쉼표가 중요하듯 우리의 긴 인생에서도 쉼표는 필수다. 독립출판물 작가들은 모든 것이 빠르게 나타나고 사라지는 세상에서 ‘느림’을 선물하고 싶어 한다. 이 느림 속, 사람들이 가쁜 숨을 정리할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이 작가들의 소망이다.

드넓은 삼양바다가 보이는 카페 안, 앞에 사람이 앉은 것도 모른 채 그림그리기에 열중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수첩에 제주를 담느라 바쁘다. 제주에서 1인 독립출판물 홀씨북 대표를 하고 있는 강인경 작가는 평생 그림을 가슴에 품고 왔다. 그녀의 삶을 들어보자.

▲1인 독립출판사 '홀씨북' 대표 강인경 작가

통영 바다를 바라보던 어린 소녀는 홀씨가 되고 싶었다. 자신으로부터 시작된 생각들이 홀씨처럼 널리 퍼져나가기를 바랐다. 앳된 꿈이었을까. 많은 시간이 흘렀어도 그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통영을 떠나 서울 살이와 대학생활에 치였던 그녀는 꿈의 문을 잠시 닫고 살았다. 대학 졸업 후 그녀는 방송국 컴퓨터 그래픽디자이너로, 특별할 것 없는 길을 걸어갔다.

정해진 그림만 그려야했던 그녀는 이 일상이 너무나도 무료했다. 종이 위에 붓을 놀릴 때 손으로 전해지는 특유의 투박함이 그리웠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그림책을 만들고 싶었다. 그림책이 바람이 되어 그녀의 홀씨가 멀리 흩날리기를 소망했다. 잠시 닫아뒀던 꿈의 문을 열기 위해 그녀는 직장을 그만두고, 그림책 작가로 제2의 인생의 서막을 올렸다. 홀씨를 퍼뜨릴 생각에만 몰두했기 때문일까. 그림책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책을 여러 출판사에 투고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그녀의 책은 어른을 위한 그림책인데, 이 분야는 돈이 안 되고 대중적이지 않아서 힘들다는 식의 내용이었다.

“왜 어린이만 그림책을 본다고 생각할까요. 어른들도 그림과 짧은 문장에서 자신들의 삶을 비춰보기도 하고 위로를 얻기도 해요.”

그녀는 그림책이라 하면 어린이를 위한 책으로 규정해, ‘붕어빵 찍어내듯’ 제작하는 관행이 싫었다. 어른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책을 읽고 지친 삶을 치유했으면 했다. 반복되는 일상 속 공허함을 채워주고 싶었다.

그녀는 1인 독립출판사 ‘홀씨북’을 열었다. 홀씨의 꿈을 이루려고 내디딘 걸음이다. 첫 번째 책 『생각하는 사람』은 2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그림책 발상으로 시작된 이 작업은 몸을 통한 경험과 내면 작업을 거쳐 완성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몸과 마음을 하나로 연결해 보이지 않는 세상을 느꼈으면 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다소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았지만, 마음속에 간직한 열정을 꽃피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책 출판을 위해 기획-제작에서 유통-판매까지 모두 혼자서 해냈다. 1인 독립출판사인 만큼 작가, 편집자, 디자이너, 출판사 대표로서 해야 할 역할을 모두 하므로 책임감이 막중했다. 스스로 한계에 부딪힐 때도 많았다. 힘든 순간마다 그녀의 맘속에 자리한 내면 아이가 나와 그녀에게 도움을 준다. 그 아이는 어쩌다 어른이 된 그녀에게 주어진 삶을 위로하고 지혜를 주는 치유의 존재다. 현실과 꿈을 이어주고 더 나아가서는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는 아이다. 내면 아이와 함께했기에 첫 번째 책을 세상에 낼 수 있었다. 통영 바다를 바라보며 결심했던 그녀의 꿈이 조금이나마 이뤄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드디어 홀씨 몇 개가 퍼지기 시작했다.

▲독립출판서점 '라이킷'에 전시된 강인경 작가의 책

남편의 회사가 제주로 옮기는 바람에 그녀는 서울생활을 잠시 접고 제주로 내려왔다. 제주에 발을 내딛는 순간 제주가 풍기는 분위기에 압도당했다. 제주를 둘러보던 그녀는 삼양 바다를 보고 순간 울컥했다. 어릴 적 꿈을 키웠던 통영 바다와 너무나도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 바다와 함께 제주를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녀는 제주의 모습 하나하나에 감탄했다. 맑은 하늘과 하나인 듯한 푸른 바다, 초록색이 가득한 숲, 꽃잎에 부딪는 물방울 ⋯ 이 모든 장면이 그녀를 휘감았다. 제주 곳곳을 돌아다니며 그녀는 스케치북에 제주를 가득 담았다.

제주에 흠뻑 취해갈 때쯤 그녀의 내면아이가 그녀에게 작은 조랑말 ‘몽땅’을 선물했다. 제주에 내려와 자연을 감상하며 그녀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는데, 내면아이가 그 생각들을 ‘몽땅’으로 나타내자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렇게 그녀는 『작은 풍경이야기, 몽땅』을 완성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하는 조랑말 몽땅이 빛을 찾아서 작은 언덕을 떠난다. 몽땅이 더 큰 세상으로 향하는 과정이 이 책에 담겨있다. 그녀는 비움과 채움, 용기와 믿음, 행복과 자유를 향한 한 걸음을 몽땅을 통해 전하고자 했다.

조랑말 몽땅은 곧 그녀다. 그녀의 내면, 생각을 확인해보고자 했던 탐구적인 목소리다. 그녀가 작은 풍경이야기라 했던 이유는 책에 그려진 풍경들이 곧 그녀가 넘어야 할 산, 찾아가야 할 길이기 때문이다. 이 풍경들을 스스로 찾아가고 나아갈 것이다. 아무도 몽땅에게 방향을 정해주지 않는다. 주변에 조력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앞으로 걸어나간다. 이렇게 고난과 시련을 겪다 보면 자신만의 지도가 생긴다. 몽땅이든 그녀든 내면지도가 생기고 나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

“타인이 던지는 돌에 움츠러들지 않고 현실을 스스로 직시하며 단단해질 수 있어요. 저는 언제나 자신의 마음속에 내면지도를 통해 방향을 잡고 걸어가요.”

강인경 작가는 1인 독립출판사 홀씨북을 운영하며 후회 없는 꿈을 꾸고 있는 중이다. 자신의 홀씨가 널리 퍼져나가고 있는 것을 보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정해진 대로 살면 좋은 어른이 되는 줄 알았지만, 정해진 대로 사는 건 없더군요.”

평탄한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그녀였지만, 남들이 가지 않는 울퉁불퉁한 길을 택했다. 자신의 그림책을 읽고 위안을 받는 사람들이 있기에 험한 길 따위는 두렵지 않다.

그녀는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길을 다듬어 가는 중이다.

▲책의 등장인물을 주제로 한 작품

<2015 신문제작실습 / 강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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