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시 동쪽 끝마을 구좌읍 종달리에 위치한 소심한 책방

‘정장과 운동화’

다소 이질적인 두 가지 요소가 어울릴 때 생기는 묘한 매력이 있다. 정장과 운동화도 그렇다. 클래식한 멋을 내는 정장에 운동화는 활동적이고 캐주얼한 느낌을 더해준다. 그렇게 생긴 독특한 매력은 한번쯤 입어보게끔 사람들을 이끈다. 여기 그런 매력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작은 동네 책방이 있다. 바로 ‘소심한 책방’의 이야기다. 일반출판물과 독립출판물,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책이 만들어내는 독특함이 가득한 공간에 빠져보자.

종달리 골목 굽이굽이 들어서야 겨우 보이는 책방, 7명만 말을 딛어도 꽉 차는 작은 공간을 찾는 손님들은 일반 서점에서 느끼지 못하는 특별함을 ‘소심한 책방’에서 느낀다. 시내에 즐비해 있는 대형서점을 두고 먼 길을 돌아 제주 여자와 서울 여자가 운영하는 작은 책방에 사람들이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책방인지도 모르고 지나가 버릴지도 모를 사람들을 위한 배려였을까. 집을 개조해서 만든 서점인 만큼 주변 가옥과 생김새가 별반 다르지 않은 책방 벽 귀퉁이에 작은 분홍간판이 책방임을 알린다.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 작은 공간에 책장이며 선반이며 할 거 없이 주인장의 취향으로 무장한 것들이 열 맞춰 놓여 있다. 그중 돋보이는 책들이 있다. 출판사 이름 하나 없이 제목과 작가의 이름만이 적힌 표지는 단연 눈에 띈다. 바로 독립출판 서적들이다.

“종종 손님들께서 여기서만 판매하는 책이 있느냐고 물어주시는 경우가 있었어요. 이 책방만의 독특한 책이요. 또 이런 자그마한 동네 책방에 입점을 원하시는 작가분도 계셨어요. 그렇게 독립출판물들이 서점에 들어오게 됐어요.”

제주도에서는 특히 독립출판물을 찾아볼 수 있는 공간이 드물다. 그래서 소심한 책방이라는 공간이 더욱 소중하다. 이렇게 이제는 제주도를 대표하는 독립출판서점인 소심한 책방도 처음부터 독립출판 서점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다.

“저희가 거창하게 시작한 것은 아니었어요. 엄마 둘이서 아이들에게, 그리고 저희 본인들에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고 싶었거든요. ‘이 작은 동네 책방에 누가 올까?’하는 소심한 마음이 컸어요. 그래서 그때 그 마음이 담겨 책방 이름도 소심한 책방이 되었죠.

그래서 처음 책을 입점할 때도 일반출판물이 먼저였어요. 저희 두 사람이 예전에 읽어서 좋았던 책들 위주로 책방에 담았거든요. 아니면 서점에서 표지나 제목만 보고 마음에 드는 책을 가져와 입점하기도 했어요. 다소 이기적인 기준으로 책을 골랐죠. 독립출판물은 그 후에 일이었어요.”

▲ 독립출판물과 함께 진열되어 있는 일반출판물

독립출판서점으로 유명한 이곳에도 일반출판물은 있었다. 우리가 아는 유명 작가의 소설이나 베스트셀러도 존재했다. 하지만 그 책들도 대형 서점에서 보았을 때와는 색다른 느낌이었다. 시내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책들이, 그렇지 못한 책들과 함께 진열돼있는 공간. 두 종류의 책들이 함께 모습은 안 어울릴 듯하지만, 오히려 새롭고 독특하게 다가온다.

일반출판물부터 독립출판물에 이르기까지 주인장의 취향이 들어가지 않은 책이 없다. 책이 팔리지 않는 최악의 경우 본인들이 가져가기 위한 전략이다. 본인들이 머물고 싶은, 책을 읽고 싶은 공간이 되길 바랐다. 나아가 그 취향과 공간이 사람들에게도 공감되길 바랐던 것이다.

“여기에 책방을 만든 이유도 저희 집이 종달리에 있어서예요. 제가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이런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들게 됐어요. 사실 처음에는 이런 서점이 제주도에 만들어진 것이 처음이어서 ‘이런 곳에 서점이 있어?’하는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혹은 재미로 방문해 주신 것 같아요.”

다분히 주관적인 기준으로 정해진 장소지만 많은 사람들이 소심한 책방을 방문했다. 주인장은 호기심과 재미라고 말했지만, 가까운 대형 서점을 두고 굳이 먼 길을 돌아 찾아와 책을 사는 손님들은 분명 동네 책방에 무엇인가를 느꼈다. 소심한 책방에는 일반서점에서 그리고 일반출판물에서 느끼지 못한 특별함이 있고, 사람들은 그 특별함을 애정 한다.

▲ 소심한 책방을 가득 메운 손님들

“독립출판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일인 거 같아요. 요즘은 어떻게든 자기 자신을 표현하려고 하는 시대잖아요. 또 그런 욕구도 강한 거 같아요. 그래서 그런 점이 출판이나 디자인으로 표현되고, 표현하려고 노력하신다고 생각해요.

소재의 다양함도 매력이에요. 사진집부터 에세이, 시집까지 굉장히 다양해요. 또 글과 디자인, 그리고 출판까지 1인 혹은 소규모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다소 무겁게 느껴지는 문학이나 예술 장르가 가깝게 느껴지는 점도 매력적이에요.”

자기 생각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때 생기는 즐거움과 기쁨이 있다. 이는 독립출판도 마찬가지다. 나를 드러내는 일인 만큼 많은 작가들이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즐거움으로 책을 낸다. 두 주인장도 이런 독립출판의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많은 독립출판을 하는 분들에게 힘이 되고 싶었고, 입점까지 하게 되었다.

다소 투박할 수는 있다. 개인이 내용과 디자인, 출판까지 올곧이 책임지기 때문이다. 책을 내는 이는 전문가 일 수도 있고, 비전문가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에 있어서 자신만큼 전문가는 없다. 개인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일. 이것이 바로 독립출판의 힘이다.

“사실 한가할 때는 한가하지만 한 번씩 손님들이 많이 방문해 주실 때 오신 손님들에게는 이 공간이 조용하고 고즈넉한 공간이 아닐 수도 있잖아요. 여기는 7명만 와도 꽉 차는 공간이라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저희도 가끔 아쉬움을 느껴요. 저희가 처음 의도했던 부분은 아니었거든요. 그래도 찾아주신다는 것이 감사해요.”

두 주인장에게는 아쉬움도 있었다. 집 근처 생긴 작은 공간은 방문했던 손님들의 입소문을 탔고, 점점 찾아오는 발걸음도 많아졌다. 찾아오는 손님들이 불편할까, 궁금해 할까해 달랑 블로그 하나 운영하는 작은 책방이 독립출판서점으로 ‘대표적이다’라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책으로 보여주고, 입점하고 싶은 공간이 생긴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능력 밖으로 책방이 알려지는 것 같아 주인장은 항상 조심하고 있었다.

“저희가 할머니가 되어도 운영할 수 있는 느리고 오래가는 책방이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의 이야기나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처음 시작한 마음으로 계속 운영하고 싶어요.”

초심을 잃지 않고 책방을 운영하고 싶다는 두 주인장.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가는 독립출판서점이 되고 싶다는 그들의 바람에는 소심하지만 진심어린 뚝심이 엿보인다. 문뜩 휴식을 느끼고 싶은 어느 날, 작은 동네 책방의 소심함을 느끼러 가보는 것은 어떨까. <2015 신문제작실습 / 김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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