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보는 세상은 너무 지루했다.

다들 사회 속에 소외되지 않으려 아득바득 정체성 없이 살아가는 하루가, 그 삶이 재미없어 보였다. 매거진 1301의 발행인이자 편집인인 이광진 씨는 삶에 지친 그들에게 ‘가치 지향’에 관해 생각해 보자고 손을 건네고 싶었다. 그와 독자를 이어주는 매개체인 ‘매거진 1301’이 탄생하게 된 이유이다.

‘매거진 1301’은 제주도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엮어 내는 것으로 ‘여행’이라는 테마를 갖는다. 1301, 즉 13월 1일 달력에 기재되지 않은 가상의 하루이며, 일상 저 너머 흔히 말하는 이상향을 의미한다. 여행이라는, 일상에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시작하는 구체적인 의미도 담고 아예 멀리 있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유도한다.

전 세계 어디를 여행하든지 그 곳을 가장 빠르고 속속들이 이해하는 방법은 바로, 그 지역에서 발행하는 잡지를 보는 것이다. 관광지에 할애하기보다는 제주도의 자연, 생태, 역사, 문화, 예술,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생생하게 보이도록 주력하고 있는 매거진 1301은 지금으로부터 다섯 해 전인 2010년 11월 어느 날, 세상에 나와 13월을 선물했다.

독립 출판잡지 '매거진 1301' 이광진 편집장.
한라병원 정류장 맞은편, 간판이 없다시피 한 사무실, 그곳을 찾아 나서기는 너무 수월했다. 작은 약국 옆으로 '1301 프렌즈'라는 작은 간판이 걸려 있었고, 계단을 통해 올라가 보니 넓진 않지만, 알차게 구성된 그의 사무실이 보였다.

오늘도 취재를 갈 것이냐는 필자의 질문에, “비가 오난 못가 마씸. 비 올 땐 주로 사무실에서 업무하고, 비 안 올 때나 촬영 답사 가고 외부 촬영 감수다”라는 그의 말투에 제주 냄새가 물씬 풍겼다. 제주가 고향인 그는 인쇄소를 운영하는 부친을 통해 어린 시절부터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 섬에서 태어나 지낸 지 스무 해가 되던 때, 원하던 대학으로의 첫 발을 내딛고 육지로 떠났다. 디자인을 전공하며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통해 출판과 관련한 일들을 도맡았다. 이러한 작은 요소들이 하나둘씩 쌓여 잡지를 내는 데 있어 은연중에 도움이 되었다.

대학교 2학년, IMF 시기였던 그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되면서 자연스레 다니던 대학을 졸업하고 제주로 내려왔다. 사람들이 보통 섬 살 이를 하다 육지로 올라가면, 바다가 그립다고 하는데 그 역시 제주 바다가 사무쳤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되면서, 제주를 그리워하는 자체가 어쩌면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것이기도 했다.

제주에 내려와 작은 디자인 회사를 몇 년간 운영하며 제주를 탐방했다. 가볍게 사진으로 새나 식물, 곤충들을 알아가며 분류했고 인문, 역사적인 부분까지 넓혀 살펴보니 그에게 있어 제주는 훌륭한 소재였다. 지금까지 그가 살았던 삶을 들여다보면 무언가를 만드는, 창조하는 작업은 늘 익숙했다. ‘매거진 1301’을 만든다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생각이었다. ‘제주를 제대로 소개하는 잡지를 내자’ 비로소 섬에 의한, 섬을 위한 잡지가 시작된 것이다.

△매거진 1301 컬렉션

맨 처음, 시작은 너무나 빈곤했다. 사실. 잡지 사업을 단순히 서비스업이라고만 여긴다면, 독자의 구미와 광고주에 최대한 맞춰 만드는 것이 좋다. 예쁘게, 뭔가 있어 보이게, 포장도 하고 말이다. 여기에 갈등이 존재했다. 좀 더 많이 팔아 더 편히 갈 것인지, 아니면 올곧게 추구하는 바로 이끌어 나아갈 것인지. 그에게 있어 매거진 1301은 제주의 역사성을 기준으로 제주 섬에 살았던 사람과 오늘날 살고 있는 사람, 그리고 앞날에 살 사람들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다.

역사라면 따분하겠지만 오늘날 제주의 곳곳마다 그 자체만으로도 긴 역사가 있다. 그곳에 기대고, 바라보며 살아온 제주사람들의 긴 역사도 함께 한다. 이것도 시대마다 다르고, 계층마다 다른 것이다. 역사성을 짧게 보면 이것이 보도의 근간인 ‘팩트’ 더 넓게 보면 인문을 담은 ‘인문학’이 된다. 신화는 역사가 아니지만 이를 향유하는 것도 사람이다.

“잡지는 ‘매개자’라고 생각해 마씸, 동시대적으로 독자와 기사의 소재 그리고 대상을 이어주는 역할인 거주게” 시사 잡지가 아님에도 강정을 두 번이나 특집으로 다룬 것은 그의 확고함이 보이는 결심이었다. 그는 잡지를 통해 역사성을 찾아내고 싶었다.

그는 매거진 1301을 통해 제주에 대한 표피적인 생각들을 조근 조근 바꿔 나아가며 제주의 참 멋에 가깝게 다가간다.

혼자서 그 길을 묵묵히 나아갈 땐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았다. 모두가 우려하며 부정했다. 그는 귀를 막고 다짐했다. ‘안 되면 멈춘다, 멈추는데, 숨을 멎는 게 아니라 숨 쉬는걸 길게 가자.. 몇 개월이 걸리더라도, 낼 때가 되면 낸다.’라는 고단함 속에서 기준을 정했다. 페이지 수는 68페이지 내외, 사이즈는 A5 판형, 세세한 부분까지 머리를 써서 고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격월이라고 표방은 했지만 지키지 못한 경우도 몇 번 있었다.

독립출판물을 경제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시장점유율이 기본 출판물들에 비해 0.1퍼센트가 될까? 많이 돼야 1퍼센트이다. 그런데 그는 독립출판물을 단순히 물질적 수단으로 접근하기보다는 ‘덜 벌면 어때?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거지’ ‘독특하고 재미있는 내 취향의 물건을 공유하자’고 생각했다. 독립출판물을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보고, 지속적으로 지켜봐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의 신념을 기반으로 오랜 시간 동안 잡지에 할당된 직원은 하나, 그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했다. 편집장이자 발행인으로, 초기에는 1인 출판 형태로 나아갔다. 시간이 지나 자리를 잡아가고, 잡지의 정체성을 구축할 즈음, 16호부터 필진들을 대거 섭외했다. 본격적인 시즌 2가 시작된 것이다. 외과의사인 전영웅 씨부터, 협동조합의 홍보 담당 조남희 씨까지, 약 4~6명의 외부 필진이 유동성 있게 구성되었다. 어떤 직업을 갖느냐에 따라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각각 다양하다. 본업이 따로 있지만 글 쓰는 일을 즐기고, 책을 좋아 하는 이들이 모여 각자의 영역, 각각의 시각에서 상호보완적인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매거진 1301' 20호를 편집하고 있는 이광진 편집장.

매거진 1301은 5년이 흘렀고, 20호 발간을 앞두고 있다. 그의 경험으로 보건대, 매거진 1301의 애독자들은 조용히 자신들의 의견들을 내뿜는다. 잡지와 닮은 사람들을 보는 것 같아 그는 내심 흐뭇하다. 고단한 작업 끝에 묵묵히 지켜봐 주는 그들과 함께 취향을 공유한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소리 없이 묵묵히 지켜봐 주는 그들과 함께 생각을 공유하는 것에 그는 늘 감사를 느낀다. 매거진 1301은 보기에 따라서는 진부하고, 감내하기 어려워 고통스럽기까지 한 잡지라고 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오래 두고 여러 번 볼 수 있는 잡지인 것이기도 하니 그 나름의 뚜렷한 색깔이 살아있다.

범람하는 온라인 서적 들 속, 그가 종이 잡지를 좋아하는 이유는 ‘인간적인 맛이 아직, 책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온 과정이 종이책을 좋아하게 만들었고, 잡지 특유의 감성적인 느낌이 좋았다. 집중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풍부한 페이지와, 그의 생각이 가장 잘 드러나는 개성 강한 작업물, 책을 좋아하고 예술을 좋아하는 그에게 있어서 매거진 1301은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한 달 남은 2015년,

지금 이 순간을 빨리 앞으로 감기하고 싶은지, 아니면 조금 느리게 가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자문해보자. 12월에 느껴지는 크리스마스와 연말, 그런 노곤함과 여유로움 속에 벗어나 1월부터는 다시금 옷깃을 여미듯, 스스로를 가다듬는 어떤 이는 새로운 계획으로부터의 '새 출발’을 해야 할 것만 같은 부담감을 갖는다. 그런 느낌에 12월의 끝자락에 좀 더 늘어져 엉겨 붙고 싶다는 생각을 갖기도 한다. 지금 주어진 12월의 시간조차도 그들에게는 '여유'와 같은 건지 '숙제'와 같은 건지 문득, 이러다 1월이 되어도 마치 오늘에서 내일이 되듯, 똑같이 하루하루 날짜가 흘러가는 것은 아닌지 조바심이 든다.

누군가 당신에게 13월을 선물해 준다면, 좀 더 솔직해지자면 '13월' 이란 건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계획 속에 치우쳐 현실에 대해, 조바심으로 나날을 보내기보다는 우리에게 삶은 살만한 것이라고, 현실에 자신을 맞추지 말자고 그는 조언한다.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에서 가끔은 쉼이 필요하다. 13월을 통해 남보다는 나를 돌아보며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2015 신문제작실습 / 김하윤> 

 

키워드

#N
저작권자 © 제주대언론홍보학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