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망 할망 설문대할망' 어린이극 중 설문대할망의 치마를 만드는 장면에서 아이들이 참여하고 있다.

문예회관 소극장에 네다섯 살의 어린아이들이 북적북적 요란이다. 좌석을 다 채우고도 무대 바로 앞바닥까지 세 줄로 앉아있다. 극장 안의 조명이 꺼지고 무대 위에선 그림자를 이용한 공연이 시작된다. 동물 탈을 쓰고 갈옷을 입은 어른 셋이 나온다. 어린아이들과 함께 외친다. “설! 문! 대! 할! 망!” 큰 탈을 쓴 어른은 쉰 목소리로 노래를 한다.

맨 뒤 좌석에 앉은 아이는 설문대할망을 더 잘 보고 싶어 엉덩이를 들썩인다. 자신의 몸에 비해 한참 큰 좌석에 쿠션을 깔고 앉았지만 그럼에도 앞에 앉은 아이의 머리에 가려 할망의 춤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분장을 한 어른들은 어린아이들 앞에서 연기도 하고 노래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한다. 목은 쉬었지만 흥과 신명은 관객들을 들썩이게 하기에 충분하다.

◇ “젊은 애들이 해야 되는데. 그런 역할은. 이제 오십인데.”
 

▲삼도 1동에 위치한 민요패 소리왓 사무실

신명 나는 가락으로 제주의 이야기를 노래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제주의 건강한 노래와 놀이문화를 찾아 보급하는데 앞장서고자 하는 민요패 소리왓의 사무실에서 안민희 대표를 만났다.

“들어와요. 학생이 여기까진 어떻게 왔어요?” 반갑게 맞으시는 안대표의 목소리가 낯설지 않았다. “혹시 오백이 아니세요?” 생각해보니 설문대할망 공연에서 귀엽게 뛰어다니던 설문대 할망의 막내아들 오백이의 목소리였다. “응 오백이. 아 몰랐구나. 분장을 안 해서. 젊은 애들이 해야 되는데. 그런 역할은. 이제 오십인데.”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안대표의 목소리에서 짙은 아쉬움이 느껴졌다.

“사슴이나 그런 거 하는 애들이 자기네 또래가 돼야 되지. 육지에서는 한예종 나온 애들이 줄을 선대. 오디션에. 우리 같은 공연에 거북이라든가 사슴이나 오백이나 그런 것들이 사오십 대잖아. 다. 오십 대 두 명에 사십 몇 살. 그 사람들이 할 게 아니고 젊은 애들 트레이닝 시켜가지고 예쁜 애들이 애들한테 다가갔을 때 그게 더 깜찍하지. 연출 쪽이나 그런 것 쪽에서 더 고민하고. 그런데 밥벌이가 안 나오니까. 자기가 살아야 하니까. 우리가 하는 부분들이 갑자기 크게 성과가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민요패 소리왓(이하 소리왓)은 우리 노래 연구회 민요 분과에서 92년 7월 ‘민요패 소리왓’으로 새롭게 창립해 올해로 창립 23주년을 맞이했음에도 그 규모가 크지 않다. 소리왓은 제주민요를 사랑해서 수소문을 통해 연결된 사람들이 함께 연습하고 맞춰보고 무대에 선다. 멤버가 정해져 있기는 하지만 공연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이 되지 않아서 각자 본업을 따로 갖고 소리왓의 무대는 부업으로 서고 있다. 덕분에 사무실에서 상주하는 인원도 3~4명은 됐다가 이제는 안대표 홀로 지키고 있는 실정이다.

◇ “심사위원이 지적하더라고. 다 초보라고.”
 

▲창작소리극 '제주 바당 상사화' 팜플렛

안대표는 잔뜩 펼쳐놓은 지난 공연들의 팸플릿 속에서 하나를 꺼냈다. ‘창작 소리극 제주 바당 상사화’. 제주 바당 상사화는 분단 70년을 맞아 이산의 아픔을 담아 표현한 공연이다.

“죽을 때까지 이런 작업하면 기쁘지. 상사화 같은 경우는 60대까지(참여했어). 이건 딸이야. 야이 빼고는 다 사십 대에서 육십 대야. 초보들도 많아서 다 되지 않잖아. 노래되고, 춤 되고, 그런 것도 심사위원들이 지적을 하지. 좋은 안무가 선생님에 젊은 애들이나 남자 구하기도 너무 힘들고. 그런데 졸업반 아이가 결합핸. 악사로. 제주대학교 4학년. 가이도 좀 특이한 아이라. 책도 많이 읽고. 노래도 꽤 잘 불러. 민요는 처음이야. 그런데 시키면 성실하게 하고. 이. 안무도 몸친데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하더라고. 이번에는 아버지네 가게 오픈해서 늦게 결합했어. 악사로 몇 번 맞춰보지도 못하고. 그런데 그것도 심사위원이 지적하더라고. 다 초보라고. 배우들은 다 목쉬어 가지고 그러고. 악사들은 다 초보다 뭐라. 그런 거 저런 거 다 따지다 보면 뭘 할 수 있겠어. 그래도 이 젊은 애들을 키워야 된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결합은 해봤지.”

안대표를 통해 들은 이 극의 속사정은 착잡한 제주민요 공연의 현실을 보여주는 듯했다. 출연진 대부분이 비전문가로 이뤄진 소리왓에게 심사위원이 요구하는 공연의 질은 너무 높다. 전문적인 안무가도, 연기, 노래, 춤이 다 되는 젊은 프로 연기자도 없는 이 공연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제주도니까, 특별한 분야에서 하니까 너희들이 이렇게 살아남는 거다. 육지 가면 잽도 안 된다”고도 한다. 하지만 안대표는 말한다. “가네들이 그렇게 제주민요를 잘 부를 수 있냐”

◇ “자기 딸만 주겠다… 그렇게 엉뚱한 방향으로 민요가 가고 있는 거지.”

“안도인 할머니(라고) 있어. 행원리에 도지정 문화제가 있네. 거기서 배웠고. 그런데 할머니가 돌아가시니까 그 마을에 해녀 하시는 두 명이 이수자가 되셨는데 그분마저도 70살이 넘어 버렸지. 문제는 제주도에서도 그렇게 돈을 받기 시작하니까 ‘자기 딸만 주겠다.’ 그런 식으로 제주 농요 하시는 분도 딸이 전수받아가지고 한다고는 하는데 그게 합동 민요를 자기들이 농요로 받았다고 해서 자기가 제주도 민요를 다 아는 건 아니거든. 그렇게 엉뚱한 방향으로 민요가 가고 있는 거지. 그래도 제주에 민요 부르는 분들 굉장히 많아. 할머니들.”

안대표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 현재 제주민요의 전승은 두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하나는 이수자의 나이가 너무 많아 전승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문화재로 지정되면 돈을 주는 제도 때문에 계승자 스스로 전승의 길을 좁힌다는 것이다.

제주민요는 중요무형문화재 제95호로 보유자에 의해 전승되고 있다. 하지만 2000년 보유자가 작고하고 16년째 보유자가 공석으로 남아있다. 현재 제주민요는 보유자 없이 전수교육조교 1명만이 명맥을 잇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제주민요의 보유자를 개인에서 단체로 전환하는 문제가 제시됐고, '2016년도 중요무형문화재 전승자 충원계획'에 따라 세부계획으로 조사·검토될 예정이다.

제주 민요는 문화재로써 현재 제도적 과도기에 있다. 제주민요가 개인종목으로 전수되는 방식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단체 종목으로의 변화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는 눈도 있다. 게다가 단체 종목으로 변경된 후의 과제도 수없이 쌓여있다.

민요는 각 곡이 지역만의 특색을 담고 있고, 부르는 방법이 정해져있기 때문에 전통적인 방식 그대로 부르지 않으면 그 노래의 정통성은 인정받지 못한다. 특색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부르는 방식은 지켜야 하지만 민요를 제도로 제한하는 것은 흐르는 음악을 가둬놓은 것과 같다.

◇ “노동현장, 그게 자산이잖아. 보배야.”

민요는 민족적인 감정이나 기호가 자연발생적으로 멜로디로써 나타나는 것이라고 정의된다. 이런 면에서 봤을 때, 대중적이지 않아도 민요라고 할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해 안대표는 할 말이 많은 듯 바로 대답했다.

“민요는 알다시피 일제 시대에 단절됐지만. 예전에 노동 도구, 고래, 맷돌이 있어야만 고래 고는(맷돌 가는) 소리가 나왔고. 검질(잡초)을 메어야만 검질 메는 소리가 나왔던 것처럼. 노동 현장. 그게 있어서 노래가 나온 거라. 그럼 그게 자산이잖아. 보배야. …근데 현장이 사라져버린, 어느 순간 이 땅덩어리가 이제는 민요를 하는 검질 메는 곳이 아니고, 농사를 하는 곳이 아니고 비행장이 하니까 무언가를 사고파는 장사꾼이 돼야 되는, 땅이 엄청 비싸진 곳이 됐잖아. 이제 그런 노동의 현장이 다 사라져버린 거야. 아주 빠르게. …민요가 만약에 이 고래 고는 게 사라졌다면 이 고래 고는 것의 의미. 내용성. 이런 부분을 찾았을 때. 그 할머니들이, 어머니들이 일을 하면서 가루를 만들어서 밥을 먹기 위해서 자식들을 위해서 그런 부분들이 이 속에 그대로 담겨져 있는 거라. 그러면서 자기의 슬픔과 애처로움과 그런 것들이 이 속에 다 담아져 있는 거야. 그렇다면 고래라는 것은 이제 없지만,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슬픔, 사회의 인간관계에서 가지고 있는 이런 거, 일하고 있는 자리에서 내가 노래를 한다면 … 내가 어쨌든 죽지 않고 살려면 그래도 노래를 듣고, 음악을 들으면서 자기가 이렇게 하는 부분들이 점점 더 커지는 거 닮아. 음악이라는 부분이.”

▲'우리 할망넨 영 살았수다'공연 무대에 노동현장을 재현하고 있다.

◇ 전통 민요를 기본으로 이야기에 따라 창작 민요를 섞기도 하는 소리왓

제주민요의 전승을 꿈꾸며 소리왓은 제주창작국악동요제를 열기도 했다. 국악적인 요소, 제주민요적인 요소와 제주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참가 조건을 달고 있는 이 동요제에는 여러 초등학교의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참여했다. 하지만 지원이 끊어지면서 2007년 6회를 마지막으로 동요제는 끝나버렸다. 하지만 이 동요제를 통해 나온 ‘제주창작국악동요’는 그대로 묻혀있지 않았다. 동요제에서 나온 곡들 중 괜찮은 노래들은 공연에서 살아났다. 가사를 조금 바꿔 MR 작업을 하고 어린이극, 교육 사업, 전래놀이에 활용했다. 소리왓은 노동 민요, 굿 민요와 같은 전통 민요를 기본으로 이야기에 따라 창작 민요를 섞기도 한다.

▲국악동요제 팜플렛과 앨범

“만약에 집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 여기에는 부엌과 화장실이 나오는데 화장실에 빠진 아이들을 위해서 똥떡 이야기를 쓰게 되면 거기에 쉬운 운율로 아이들에게 “똥~떡 똥~떡” 이런 다른 풍의 쉬운 운율을 차용하고 그렇지 않고 집을 노래가 제주도에 있다 그렇다면 그 노래를 그대로. …이번 설문대할망 공연에서 마지막쯤에 죽을 쑤면서 하는 장면이랑 아기를 낳을 때 ‘어야~디야~홍~ 어으어어~ 에야~홍~’ 그게 원래는 촐 베는 소리. 초를 베면서 낫질을 하면서 바람과 같이 바람처럼 ‘어야~디야~홍~ 어으어어~ 어으어어어~’ 사설도 다 그런 응어리야. 바람처럼 막. 그걸 하면서 나름대로 그 느낌, 호흡을 머금으면서 했던 노래들을 ‘어야도 홍’이라는 홋소리에 운율 이런 것을 여성이 호흡을 하면서 아기를 낳는 느낌으로 ‘에야 홍’이라는 느낌으로 잡아봤다든지…”

◇ “스토리와 노래와 동작이 한 쾌로”

소리왓은 이야기에 노래를 맞추는 극과 동시에 노래에 이야기를 넣는 작업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달구소리라고 땅을 집을 짓기 전에 다져야 돼요. 평평하게. 그렇게 할 때는 ‘어~허~ 달~구! 어~허~ 달~구!’ 하면 노동 동작은 스티로폼으로 만들었지만 이게 돌. 그런 걸로 만든 것들을 재현하면서 동작을 하면서 옛날에 어떻게 했는지 교육 사업에서 보여주는 거죠. 그래서 땅을 다지는 스토리와 노래와 동작이 한 쾌로 가는 거예요. 그랬을 때 신명과 타당성. 이유와 이야기와 재미가 곁들어지는 거죠. 이런 제주도 민요의 노동요의 장점은 일을 통해가지고 신명을 만들기 위해서 노래를 만들었던 것처럼 그 속에서 찾는 의미. 이게 현대에선 쓰지 않는 거다 보니까 이 노래를 아무 데서나 부를 수가 없는 거라. 이렇게 전통적인 부분을 이야기로 만들어서 가져갔을 때는 그대로 오리지널로 쓰는데 그럼 이 달구를 어떻게 현대에 쓸 것이냐 이야기를 찾았을 때 현대에 적합한 이야기가 무엇이냐. 그런 부분.”
 

▲민요패 소리왓 대표 안민희씨

민요 이야기를 하는 안대표는 다양한 표정을 지었다. 진심으로 기뻐하기도 했다가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했으며 어떤 때는 화도 냈다. 연이은 공연으로 쉬어버린 그녀의 목소리도 커졌다 작아졌다를 불규칙적으로 반복했다. 안대표의 말과 그 안의 민요는 구분 없이 섞인 느낌이었다.

스케일이 큰 공연은 관객 동원조차도 힘든 실정이다. 부르는 사람뿐 아니라 듣는 사람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돈이 아깝지 않은 공연이라는 마니아층을 제외한 대중의 관심은 차갑다. 열악하고 힘이 달린다. 공연에 서는 배우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정산하기에 바쁘다. 젊지 않은 사람에게 빠르게 변하는 국가 시스템은 너무 복잡하다. 이런 현재의 상황에서도 소리왓은 기금도 받아보고, MR 작업도 하며 노력하고 있다. 안대표의 입장은 하나다. 하는 데까지 해보자.

“제주에는 모든 것에 노래가 다 있어. 그런 걸 찾다 보면 제주 민요는 제주어와 같아. …문화에 관심 많이 가져. 앞으로 다 연결될 거야. 앞으로 제주도 전통이나 이런 게. 왜냐면 점점 더 극심해지잖아. 도시화가. 이런 것들 속에서 제주도의 원래 아름다움을 찾을 수밖에 없어.” <2015신문제작실습 / 정유리>

제주의 가치는 무엇입니까?

“제주의 가치는 내가 살고 있는 곳, 제주 섬”

제주의 가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안대표는 주저함 없이 대답했다.

“제주의 가치가 내가 살고 있는 곳이고 제주 섬인데 사람들이 행복해야지. 행복해야 되는데 물질이 따라온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게 아니니까. 그런 것이 걱정이 된다는 거지. 제주 자체는 파괴되지 말고. 이 제주 섬 자체를 보존해야 되는 건데. …육지 사람이 다 사가지고 장사하고. 여기서 무슨 제주도의 아름다움을 노래할 수 있을까. 제주도 사람이 나중에 다 떠나게 될지도 모르잖아. …거기서 나는 제주도에서 태어났고 제주도의 후손이라고 얘기할 만큼 여유롭지가 않아. 사람들이 여유롭지가 않아. 많은 걸 잃어버련. 예술세계도 그렇지.”

제주도를 사랑하는 제주도의 후손으로서 그녀는 현재 제주도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안대표는 제주가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제주 섬이 되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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