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로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말한다. ‘아 이런 곳에서 여유롭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에 여행은 짧고 살기엔 부담되는 제주도에서 딱 한 달만 사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다. 한 달 살기 전용 숙소들이 생겨나고 많은 사람이 제주에 와서 한 달 동안 낯선 삶을 즐기고 간다. 게 중에는 여행하며 일상에서 벗어나 쉬러 온 사람도 있으며 제주 이주를 고민하며 오는 사람도 있다. 서로 다른 목적으로 한 달 살기를 즐기는 사람들을 만났다.

◇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환경, 그것 하나였죠.
전화기를 들고 환하게 웃어 보인 그녀의 옆에는 남매로 보이는 아이가 둘이나 있고 멀찍이 남편인 남자가 서 있다. 제주에서 한 달 살기 3주차 최유리(32) 씨는 취재를 위해 온 가족을 동반했다.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찾고 싶었다는 그녀는 제주에 이주를 목적으로 한 달 살기를 진행 중이다.

“근데 사투리 안 쓰시네요?” 최 씨가 처음으로 건넨 말이다. “저 처음 제주도 와서 사투리 들었을 때 ‘이건 외국어다’라고 생각했어요.” 사투리로 말하는 할머니에게 죄송하다고 연신 말했다며 웃는 최 씨는 서울 신촌에 살며 대학교 선배를 통해 알게 된 분의 게스트 하우스에 한 달 동안 거주 중이다.

▲ 최유리씨가 가족들과 지낸 한 달 살기 게스트하우스. ⓒ최유리

최 씨가 머무는 숙소는 제주 전통 가옥으로 꾸며진 게스트 하우스의 별채로 화장실 딸린 방 한 칸에서 4명이 부대끼며 산다. 18박 19일에 60만 원에 빌린 이 방은 게스트 하우스에서 쓰는 공동 주방에 가려면 밖으로 나가야 하는 불편이 있다. 그래서 최 씨는 집 안에서 밥을 먹기보다 밖에서 저렴하게 한 끼를 할 수 있는 맛집들을 찾아다닌다.

그녀가 이곳을 좋다고 느낀 이유는 따로 있다. “게스트 하우스 안에 작은 공연장이 하나 있는데 원래는 서재처럼 꾸며진 공간이에요. 날씨가 안 좋아서 나가기가 어려울 때면 아이들과 그곳으로 가서 책을 읽었어요.” 또 이곳에 머무르며 제주를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을 많이 알게 됐다. “이 게스트 하우스가 커뮤니케이션의 장이더라고요. 그래서 좋은 인연을 만들 수 있었죠.”

이주 준비를 동시에 해야 했던 그녀는 제주에서 집을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인터넷으로만 찾으려니 잘 없어서 여쭤보니까 여기는 부동산보다 입소문으로 집이 나오고 빠진다고 하네요.”라고 말한 그는 제주 마을에서는 부동산보다 마을 이장님 또는 어르신들이 집을 구하는 데 있어 정보가 많다는 것을 알았다.

딸과 아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고 있던 그녀는 서울에서 살 때는 이런 적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서울에서는 아이들이 밖에서 놀기보다 집에서 TV를 보거나 책을 읽고 가끔은 장난감 때문에 싸우는 일도 많고 그랬어요. 그런데 한 달 살기 숙소에는 장난감도 없고 책도 없고 하물며 TV까지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서 오히려 둘이 더 잘 놀고 서로 더 양보하고 배려하는 법을 배우게 된 것 같아요.”

▲ 최유리씨의 아이들. ⓒ최유리

최 씨는 한 달 살기를 진행한 숙소 근처로 집을 구했다. “한 달 사는 내내 제주 서쪽 지역으로 매일 집을 보러 돌아다녔어요. 예쁘고 아름다운 모습이 많은 건 세화나 성산 같은 동쪽 지역이었는데 한 달 살기를 하는 서쪽이 곶자왈도 있어 마음에 들었거든요”.

한 달 살기를 통해 그녀는 가족과의 소중한 시간을 얻은 것 같아 좋다고 말했다. “사실을 서울에서 사는 것보다는 불편해요. 편리성 같은 것은 떨어지지만, 가족이라는 주제만 놓고 봤을 때는 아주 좋은 터전인 것 같아요.”

◇ 백수처럼 놀면서 동네 마실 이나 나가볼까?
“여기요!” 하며 큰소리를 친 여자가 손을 위로 휘두르며 멀리서 보고 있었다. 추운지 팔을 몸에 감싼 그녀는 남수지(27) 씨로 현재 제주에서 한 달 살기를 진행 중이다. 그녀가 저녁을 먹자고 데려간 카페에는 수지 씨 외에도 박상숙(49) 씨, 김민채(34) 씨, 황순철(25) 씨가 있다. 그들은 모두 고산리에 있는 작은 셰어하우스에서 한 달간 머무른다.

▲ 쉐어하우스에서 한 달 살기를 진행하는 (왼쪽부터 순서대로) 황순철씨, 남수지씨, 방상숙씨, 김민채씨. ⓒ남수지

서울에서 내려온 수지 씨와 상숙 씨는 이모와 조카 사이다. 수지 씨는 취업준비생으로 그간 여행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했고 상숙 씨는 회사를 퇴직하고 수지 씨와 제주로 왔다. “처음에 한 달 살기를 계획한 것은 아니었어요. 여행숙소를 찾다가 셰어하우스 주인이 여행을 간다고 한 달 동안 빌려주겠다고 하셨어요.”

대구에서 간호사를 하다 내려온 민채 씨는 전에 제주를 여행 왔을 때 이 셰어하우스에 묵은 적이 있다. “올해 제주를 3번 왔는데 다시 오고 싶어서 묵었던 숙소를 알아보다 찾게 됐죠.” 순철 씨의 경우는 서울에서 회사에 다니다 친한 형과 함께 이곳에 오게 됐다. “셰어하우스는 친한 형과 같이 알아보던 중 한 달 살기 카페를 통해 알게 됐어요.”

성격도 나이도 출신지도 다 다른 그들이 한 달 살기를 하러 제주까지 온 이유는 ‘여행’과 ‘휴식’ 두 가지다. “제주에 여행 올 때마다 너무 아쉽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이게 3일이든 일주일이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제주의 향수가 그리워요. 그래서 이번엔 한 달을 살려고 내려왔죠.”라며 수지 씨는 아쉬웠던 제주 여행에 대해 말했다.

그들이 사는 셰어하우스 맞은편에는 딸린 창고와 같은 부엌에 모두가 식사할 수 있는 테이블이 있다. 상숙 씨가 차를 한 잔 받으며 “우리 거실 청소 담당 누구야?”하고 물었다. 이들은 자신들 나름의 규칙으로 셰어하우스의 청소 구역을 나눴다. 수지 씨와 상숙 씨가 화장실, 민채 씨가 부엌, 순철 씨가 거실 청소 담당이다. 그런데도 큰 맏이인 상숙 씨가 청소나 빨래를 대부분 하고 있다. “성격이 급해서 제가 할 때 사용했던 수건 세탁할 거면 같이 달라고 해서 널어놔요. 서로 도우면서 사는 거죠.”

▲ 그들이 사는 셰어하우스.

이들은 며칠 전까지 순철 씨가 렌트해 온 차를 타고 다니면서 고산에서 성산까지 여행을 다녀왔다. 그러나 차를 반납하면서 인터뷰 날 오전에는 버스를 타고 애월에 다녀온 게 전부다. 이마저도 비가 와 점심만 먹고 다시 돌아와야 했다.

민채 씨는 한 달 살기를 하면서 소위 말하는 ‘잉여로움’을 즐기는 중이다. “뭐를 꼭 해야지 하는 생각은 없어요. 전날 저녁 먹으면서 ‘우리 내일 이거 할까?’라고 대충 정해놓고 그 다음 날 여유롭게 출발하는 거죠. 아무것도 안 하는 날에는 집에서 영화를 보거나 동네 마실 나가는 정도가 전부에요.”

그들은 제주도에만 있는 도민 할인 문화에 부러움을 느꼈다. “대구에는 대구 시민 할인 같은 게 거의 없어요. 근데 여기는 관광지 외에도 항공이나 선박까지 다 할인이 되잖아요. 많게는 무료나 50% 까지 떨어지니까 그게 제일 부러웠어요.” 민채 씨는 도민이 아닌 것에 많이 아쉬움이 남는 듯 말했다.

이들의 한 달 살기가 열흘가량 진행됐다. 수지 씨와 상숙 씨, 민채 씨는 숙박 날짜가 끝나는 대로 다시 서울로 돌아간다. 순철 씨는 기간을 연장해서 더 있을 예정이다. 끝은 아쉬운 법이지만 수지 씨는 말한다. “제주에서 살고 싶은 마음은 많아요. 그렇지만 내가 일상에 지쳐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다시 올 수 있는 곳이 제주였으면 좋겠어요.”

‘한 달 살기’라는 같은 방법에도 사람마다 제주에 온 목적은 확연히 다르다. 그러나 취재 내내 느낄 만큼 이들이 아름다운 제주에 빠져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한적한 마을에서 지친 일상을 떠나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이주와 여행 둘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은 과감하게 제주로 한 달 살기를 떠나 보는 것은 어떨까. <2015 신문제작실습 / 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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