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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사는 세상, 한림항 이야기[우리 제주 보물 이야기] (5) 바다향 가득한 항구의 하루
박재현 | 승인 2015.12.14 14:41

귤이 맛있게 영글어가는 11월, 제주의 바다는 통통하게 살이 오른 조기가 제철이다. 제주의 바다의 생생한 숨결을 느끼기 위해 제주시내에서 한 시간 가량 이동해야 모습을 드러내는 작은 항구, 한림항. 해가 져 어두컴컴한 밤이었지만, 한림항의 등대가 환한 불빛으로 손님들을 맞이한다. 등대가 비추는 깊은 밤바다에선 어디선가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들린다.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피곤함에 지친 몸을 이끌고 따스한 집으로 향하는 이들. 바로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온 한림항 사람들이다. 이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시간이다.

▲한림항의 어부들이 그물에 걸린 생선을 떼어내고 있다.

한림항의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길, 조용하고 정감 있는 읍내가 먼저 보인다. 바다 냄새를 따라가다 보면 이윽고 조그마한 항구가 나온다. 한림항은 늦은 시간에도 줄지어선 조기잡이 배들의 조명으로 낮처럼 밝다. 초겨울의 차가운 바람에도 항구의 열기는 조명만큼이나 뜨겁다. 한림항의 어부들은 배 그물에 걸린 생선들을 떼어내는 작업에 한창이다.

거대한 그물에 걸린 싱싱한 생선들은 있는 힘껏 은빛 위용을 뽐냈다. 줄지어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오랜 세월 함께 일한 듯 합을 맞추며 좋은 품질의 생선을 선별해 상자에 쌓는다. 한림항 사람들의 하루 중 가장 보람찬 순간, 거센 파도를 헤치고 바다에서 얻은 전리품을 정리하는 그들의 손길이 무척이나 분주하다.

▲작업을 마치고 항구로 입항중인 배

미리 들어온 어부들이 작업을 하는 사이, 배들은 바삐 움직인다. 항구에 들어오는 배의 소리는 고래 소리만큼이나 우렁차다. 커다란 배를 항구에 대는 과정은 자칫 큰 사고가 날 수 있기에, 어부들은 항상 조심스럽다. 어떤 마음으로 바다로 향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어업을 하는 양씨(50)는 “출항 후 입항까지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도착한 배에서는 싱싱한 생선들이 긴 여정을 마치고 육지를 밟는다. 그리고 어부들이 정리를 마친 상자들은 지게차와 트럭을 통해 한림 수협의 어판장으로 이동한다.

어판장은 항구에서 5분 거리에 있다. 커다란 창고같이 생긴 건물에 트럭들이 바삐 오가며 상자를 운반한다. 입구를 통해 안쪽으로 들어가면, 수백 개의 상자들이 보인다. 상자들은 생선의 종류와 주인에 따라 구역이 나눠지는데, 각 구역마다 중앙에는 커다란 탁자가 있고 주변을 상자들이 둘러싸고 있다.

▲어부들이 어판장에서 생선을 손질하고 있다.

어판장에서 생선을 만지는 손길이 분주해진다. 싱싱한 생선의 상태를 유지해, 도·소매업자와의 경매에 나서야하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 가장 큰 위판장인 한림수협위판장에는 조기를 비롯해 고등어, 갈치 등 수많은 어종들의 경매가 이뤄진다. 아침이 되면 얼음과 생선이 가득 담긴 상자들이 구역별로 가지런히 채워지고, 빨간모자를 쓴 경매사가 돌아다니면서 경매를 진행한다. 각자의 번호가 쓰인 모자를 쓴 중매인들이 작은 나무 판에 경매가를 쓰고 펼쳐 보이면 경매사는 가장 큰 금액을 쓴 중매인에게 낙찰을 외친다.

경매에는 경매사를 비롯해 어부들과 상인들, 조금의 구경꾼들까지 있어 북적거릴 것 같지만 조용한 상태에서 진행이 된다. 경매사와 중매인들이 나무판의 가격으로만 대화를 하기 때문이다. 한림수협위판장의 경매는 싱싱한 생선을 비교적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고, 중매인을 통해서 일반인들도 경매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인기가 많다. 주인이 바뀐 생선들은 곧바로 경매가 끝남과 동시에 포장이 돼 전국각지로 차량으로 배송된다.

그물에서 건질 때부터 한배에서 부대낀 생선들을 보내는 어부의 마음은 조마조마하다. 경매를 통해 괜찮은 가격으로 낙찰되고서야 비로소 그들은 편안한 마음으로 미소를 짓는다. 작업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주로 하냐는 기자의 물음에 어부 양씨(50)는 “자식들 생각을 주로 하고 몸이 힘들어도 만선인 채로 돌아와 아이들에게 용돈 등으로 챙겨줄 때가 가장 뿌듯하고 보람차다.” 라고 답해주었다. 첫 출항부터 집으로 향하는 길까지 힘들지 않은 작업이 없지만, 자식들의 웃는 얼굴을 생각하며 힘든 작업을 꿋꿋이 해내는 것이다.
 
그렇게 모든 일과를 마친 후 드디어 갑옷과도 같은 두꺼운 장갑과 장화를 벗자, 바닷바람의 세월을 비켜가지 못한 사내들의 얼굴이 드러난다. 그들의 피부는 검게 그을었지만 자식들을 생각하는 눈은 마치 바다처럼 깊고 맑았다.

사람들이 보는 시각에 따라 바다의 모습은 수백, 수천가지로 변한다. 그리고 그만큼의 의미를 가진 바다를 한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다. 한림항 사람들에게 바다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삶 그 자체이고, 고된 노동이 기다리지만 달콤한 보상을 주는 일터로서의 바다, 그곳에 가야 비로소 마음의 안정을 느끼곤 하는 집과 같은 바다가 그것이다.

날이 밝은 한림항에는 처음 왔을 때 느꼈던 낯선 느낌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남아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눈으로 보이진 않지만 한림항 사람들의 일과를 지켜보고 대화를 나누기도 하면서 새로운 감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바다의 짠내와 비릿한 향에서는 누구보다 진하고 따뜻한,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님의 마음이 짙게 깔려있었다.

▲날이 밝은 후의 한림항의 모습

식탁의 곳곳에는 각자의 사연이 담겨 있다. 점점 간소화 되어가는 현대인의 식탁에서 밥 먹는 시간은 짧을 수 있다. 하지만 잠깐의 시간이라도 작은 생선에 담긴 한림항 사람들의 깊은 이야기를 한번 떠올려 보는 것은 어떨까. 오늘 저녁은 따뜻한 밥에 바다를 가득 올려 든든한 한 끼를 먹어야겠다. <2015 신문제작실습 / 박재현>

박재현  hoii6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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