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화리 벨롱장을 알려주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세화리 인근 게스트하우스나 카페, 공방 등을 운영하는 이주민들이 그들이 갖고 온 중고물품을 교환하는 조그만 벼룩시장으로 시작된 플리마켓. 세화리 벨롱장이 생긴지 3년도 채 안된 지금 제주도 곳곳에 플리마켓들이 많이 생겨나며 전 지역에 퍼졌다. 그만큼 각각의 플리마켓은 점점 다른 성격을 띠게 됐고, 그들만의 매력이 입소문을 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됐다. 그중 우리는 제주도를 동서남북으로 나누어 플리마켓의 시초인 동쪽의 벨롱장을 중심으로 반시계 방향으로 돌며 어떤 특징들이 있는지 직접 체험해보고 느껴보기로 했다.

◎ 에메랄드빛 바다를 머금은 세화리 벨롱장

▲ 세화리 벨롱장에는 사람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붐비고 있다.

10월 마지막 벨롱장이 열리는 지난 31일. 에메랄드빛 바다가 한눈에 펼쳐진 구좌읍 세화리에 위치한 벨롱장에 도착했다. 벨롱은 제주어로 ‘불빛이 멀리서 번쩍이는 모양’이란 뜻을 가진다. 그래서 이름처럼 벨롱장은 11시부터 2시까지 반짝하고 열린다. 입소문이 많이 탄 만큼 사람들이 붐벼 발 디딜 틈도 없이 북적북적 거렸다. 해안가를 따라 길게 늘어선 셀러들. 제주도에 처음으로 생긴 플리마켓인 만큼 다양한 셀러들이 직접 만든 물건들을 팔고 있었다.

▲베이지색 탁자위엔 제주도와 관련된 다양한 에코백들이 진열돼 있다.

누구나 자유롭게 탁자에 물건들을 펴놓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어울리고 있는 이곳. 이 많은 셀러들 중 밝은 미소로 에코백을 정리하는 셀러가 있어 나는 그분에게 다가갔다. 제주도와 관련된 아기자기한 그림이 그려진 에코 백과 파우치를 파는 곳이었다. 나는 해녀와 말, 그리고 꽃이 그려진 에코백들 사이로 보이는 당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유치원생이 그릴만한 유치한 당근 그림이 그려진 에코백이었다. “당근이 참 귀엽네요”라는 말에 그 분은 “이거 우리 애가 그린거예요”라며 친근하게 답했다. 알고 보니 자녀분이 그린 그림을 에코백에 새겨 팔고 있었다. 친근하게 대해주신 그분이 궁금해 어디서 오셨냐고 물었더니 표선에 거주하고 있는 제주 도민이었다.
 
자리를 떠나 돌아다니다 예쁜 바다 조개껍질로 만든 액세서리를 팔고 있는 부부를 만났다. 이 부부는 직접 제주의 바다를 다니면서 조개들을 주워 디자인을 전공하신 아내분이 손수 액세서리들을 만든다고 했다. 제주도 바다에서 나온 아름다운 오색빛깔의 조개들을 오늘 처음 만났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예쁜 조개들이 나열돼 있었다. 제주도를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아 “도민이세요?”라고 물은 나의 질문에 서슴없이 “네”라고 대답한 두 분. 알고 보니 육지에서 내려온 이주민이었다. “저희는 내려온 지 4년 돼가요”라며 “육지에서 이주해 왔지만 제주 도민이라고 생각해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주민이지만 제주도에 녹아들어 제주도민이 된 이분들을 보니 마음이 뭉클했다.

'판매 수익금을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에 기부한다'는 팻말이 세워진 곳. 팻말에 눈이 가 둘러보다 “학생! 이거 한번 보고가~”라는 말에 발길이 멈춰 그 셀러들에게 다가갔다. 이분들은 제주도에 놀러와 틈틈이 모자를 만들면 팔러 나온다는 여행객이었다. “이곳은 만든 거 아니면 팔지 못해요”라며, 두 분은 조금이라도 팔기 위해 탁자 위에 3~4개 정도의 수제 모자를 진열해 놓고 소량 판매를 하고 있었다.

◎ 정감 가득한 야시장의 진리! 아라동 지꺼진장

▲제주 옛목석원 옆 지꺼진장을 알려주는 간판이 세워져 있다.

쌀쌀한 가을날, 11월의 문을 연 아라동의 지꺼진장에 도착했다. 이주민의 영향을 받아 제주도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이곳은 아라동에 위치한 옛 목석원 옆에 자리해있다. 벨롱장과 다르게 오후 5시부터 저녁 8시까지 열리는 야시장이다. 비가 와서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곳의 셀러들은 밖에서부터 천막을 쳐 자신이 키운 농산물들을 팔고 있었다. 안으로 더 들어가면 비닐하우스처럼 생긴 커다란 움막이 자리하고 있다. 그 움막 안에서는 먹을거리, 생활용품 등이 탁자 위에 진열돼 있었다. 공연도 진행되고 있었는데 우리가 그 움막 안으로 들어간 순간 갑자기 불이 꺼졌다. 놀란 손님들은 웅성웅성 거리기 시작했다. 근데 갑자기 그 사이로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고, 알고 보니 공연 도중 전기를 많이 써서 꺼진 것이었다. 여기 셀러들은 그것에 여의치 않은 듯 공연하는 분들에게 위로의 박수를 보냈다.

지꺼진장은 먹거리가 아주 풍성했다. 대안학교의 학생들이 만든 피자와 고구마 맛탕, 오징어구이 그리고 핫바 등이 판매되고 있었다. 이 먹거리들 덕분에 눈과 입이 즐거웠다. 그중 핫바를 파시는 아저씨는 노형에 거주하며 핫바 가게를 운영하시는 제주 도민이었다. "이곳이 열리면 가게 문을 닫고 와요"라고 말했다.

▲지꺼진장 한쪽 구석에선 뻥튀기가 터지고 있다.

밖에서는 뻥튀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처음 보는 뻥튀기 기계가 신기해 아저씨에게 다가가 “뻥튀기 언제 터져요?”라고 물었더니 “내 맘이여”라며 쿨하게 뒤돌아 갔다. 머쓱한 마음에 뻥튀기가 터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뻥이요”하고 터지는 뻥튀기들을 보며 옛날 시장에 온 느낌이 들었다.

▲ 지꺼진장이 열리는 움막 안에는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장을 이루고 있다.

움막안으로 다시 들어가 주위를 둘러보다 커피 비누라는 팻말이 보였다. 궁금한 마음에 커피 비누를 파시는 분에게 다가갔다. 어디서 본 것 같이 푸근하게 생겨 도민이냐고 물었더니 몇 년 전 이주해 오신 이주민이었다. 제주도민이 열었지만 이주민도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장을 만드는 이 플리마켓은 정겨운 느낌이 많이 들었다.

벨롱장이 아기자기하고 손수 만든 물건들을 파는 신세대 느낌이라면 지꺼진장은 정겹고 신선한 농산물을 파는 오일장 느낌이다. 하지만 두 플리마켓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제주도민과 이주민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조화를 이룬다는 점일 것이다. 이주민에 의해 생겼지만 이제 제주도민들도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플리마켓은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하나의 문화가 돼 제주도에 녹아드는 것 같다. <2015 신문제작실습 / 신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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