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가 지났다. 아마도 고향을 찾은 많은 아들들이 어깨를 제대로 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50살이 넘은 이들에게는 더욱 그러했으리라. 그 나이가 되면 삶의 성취가 그리 내세울 것이 못 된다는 것을 알게 될 뿐만 아니라, 연로한 부모님을 포함한 피붙이들에게도 힘이 되어줄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설에는 "제주는 저를 키워준 어머니다. 어머니, 제주의 아들 원희룡이 왔습니다"라는 말의 무게가 새삼 크게 다가왔다. 잘난 아들이 아니고서는, 자랑스러운 아들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말이다. 이전이나 향후에도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표현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원희룡 도지사가 유일무이할 것이다. 그런데 '돌아온 아들'에게는 잘났든 못났든 애잔함이 진하게 배어 있기 마련이다. 객지에서의 고난과 설움 그리고 이제는 힘이 다한 어머니를 책임지겠다는 비장함 등이 다 담겨있기 때문이다. 제주의 아들 원희룡은 50살이 넘어 고향 제주에 그렇게 돌아왔다.

 그러한 원 지사가 취임 일성으로 건넨 화두는 협치(Governance, 協治)였다. "도민이 중심이 되는 수평적 협치, 생각이 달라도 연대하고 협력해 하나의 제주를 지향하는 포용의 정치를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30년 만에 귀향한 원 지사에게 협치는 과연 무슨 의미였을까? 사뭇 궁금해지는 요즈음이다.

 협치라는 말은 원희룡 지사가 처음 쓴 말은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2011년 8월 15일 경축사에서 '협치'라는 말을 썼다. 임기를 1년 남겨둔 이명박 대통령에게 절박했던 이 말이 원 지사에게는 임기를 시작하면서부터 절실했던 모양이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2014년 9월 미국의 스탠포드 대학 강연에서 '협치와 혁신'을 자신의 시정 철학이라고 소개했다. 용어는 다르지만 남경필 경기도지사도 도정의 기조로 협치에 가까운 '통합'을 들었다. 우연인지 언론들은 '수직적 통치'가 아닌 '수평적 협치'를 즐겨 쓰는 이들을 비중있는 대권후보군으로 분류해놓고 있다.

 설 연휴 모든 언론에서는 도의회가 제안한 '예산 정책 협의회'를 실질적으로 원 지사가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한마디로 도의원의 '쌈짓돈'을 줄여 예산을 개혁하겠다는 것이다. 일견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도 물음은 있다. 제주도정의 예산 책정은 과연 적정한가이다. 제주도 관료들이 짠 예산이라고 해서 거기에 선심성, 관행성이 빠져있다고 속단하기는 힘들다. 주어진 예산 편성 매뉴얼에 따라 경직성 예산을 편성하지는 않았는지도 점검의 대상이다.

 또한 역으로 관료제가 보듬지 못한 부분에 도의회의 쌈짓돈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한 인정이다. 사실 우리는 우리지역 국회의원들에게 줄곧 이러한 주문을 해왔다. 우리는 중앙정부에서 쌈짓돈을 받아오는 국회의원들을 칭찬했고, 제주언론들은 이를 대서특필했다. 중앙정부의 경직성 예산에 대한 인정이고 암묵적인 합의인 셈이다. 제주도와 제주도의회라고 해서 그 관계가 크게 다를 수는 없을 것이다.

 요즘 예산 국면을 맞아 TV에 보이는 원 지사의 이미지는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열정과 단호함이 넘쳐난다. 때로는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그 무엇도 버릴 수 있다는 비장함까지 보인다. 어느 정치평론가는 이를 가리켜 "지적 우월감, 지위의 고귀함, 영웅적 면모를 지닌 역대의 정치가들이 자주 보여주었던 모습과 흡사하다"고도 했다. 이러한 엘리트 정치가들이 수평적 협치 보다는 수직적 통치를 선호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협치의 시대에는 잘난 아들보다는 관용적이고 인내심을 갖춘 50대 가장의 귀향이 더 절실해지는 법이다.

*본 칼럼은 한라일보 월요논단(2015.2.23)에 실린 내용입니다.

저작권자 © 제주대언론홍보학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