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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뒤에 감춰진 이야기를 꺼내다백비의 이름을 새기기 위해 4·3을 알리는 인류학자
유철인 제주대학교 교수
김명근 | 승인 2020.06.25 10:31

인터뷰 당일, 그의 연구실이 위치한 제주대학교 인문대학 건물에 찾아갔다. 그러나 그의 연구실을 찾기란 여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건물을 한참 둘러보아도 그의 이름이 적힌 연구실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찾는 것을 포기하고 전화를 걸려던 중 한 연구실 문 앞에 제주 4·3을 상징하는 동백꽃 로고가 눈에 들어왔다. 이를 통해 그의 연구실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문을 두드리고, 조심스레 들어간 방에서 처음 날 반겨준 건 빼곡히 쌓인 서적들이었다. 탑처럼 겹겹이 쌓인 책 뭉치들을 몇 번이나 비집고 들어가서야 오늘의 인터뷰 주인공을 만날 수 있었다. 반가움도 잠시, 책으로 꽉 찬 그의 연구실에서는 앉을 자리 하나 찾는 것 또한 쉽지 않았는데, 책상 한편을 정리하고 나서야 그와 제대로 된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유철인 교수는 현재 인문대학 철학과 소속 교수로 ‘제주 4·3 연구소’ 전 소장직을 역임했으며, 제주학회 회장직을 맡았었다. 그중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알려진 유 교수의 업적은 제주대학교의 대표 교양 수업인 ‘제주 4·3의 이해’를 강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까지 4·3 강의를 이끈 지 햇수로 13년, 누적 수강생 수는 만 명을 족히 넘었다. 어쩌면 그는 전국에서 4·3 강의를 가장 많이 한 인물일지도 모른다. 

유철인 교수의 연구실 입구

# 과거의 사건이 현재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 제 궁금증을 증폭시켰습니다.

많은 학생이 유 교수를 기억하는 이유는 ‘제주 4·3’, ‘제주 해녀’, ‘재일제주인’ 3가지의 제주 사회․문화 수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세 키워드는 유 교수가 대중으로부터 제주 문화를 이해시킬 때 강조하는 핵심 단어이기도 하다. 오늘은 세 핵심어 중 유 교수의 ‘제주 4·3’에 대해 면밀히 알아보고자 한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 학생들이 교수님에게 품은 궁금증부터 해소하고 싶습니다. 교수님은 철학과 소속이신데 어떻게 4·3강의를 진행하게 되셨습니까?”

유 교수는 옅은 미소를 띠며 답해주었다.

“저는 사실 주전공이 문화인류학인데 우리 학교 전공에는 인류학과가 없어 제주도 문화를 알리는 교양수업만 진행하고 있습니다. 많은 학생이 수강하고 있는 수업인 ‘제주 4·3의 이해’, ‘제주 해녀의 이해’, ‘재일제주인의 삶과 정신’을 강의하고 있죠.”

그는 이어서 4·3을 강의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서울에서 살다 83년도에 임용 공채로 제주도에 오게 됐는데 발령 과정에서 자꾸만 행정처리가 지연됐었습니다. 이유는 4·3에 연루된 사람인지 신원 조회를 해야 하는 복잡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30년이 지난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연좌제로 인해 취업에 불이익이 있다는 것이 4·3에 대한 제 궁금증을 증폭시켰습니다.”

유 교수는 문화인류학자로서 과거의 사건이 현재까지 영향을 주는 4·3이 무엇인지 궁금해졌고, 발령 오기 전까지 4·3을 들어본 적도 없기에 꼭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호기심에 시작한 공부가 지금까지 이어져, 현재는 4·3 강의까지 도맡아 진행하고 있다.

# 학생들이 부담감 없이 4·3에 쉽게 노출되고 인식하는 것에 만족감을 느낍니다.

유 교수에게 강의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내용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앞서 말했듯이 과거의 사건이 현재까지 어떻게 영향을 주고 있는가 하는 인류학적 관점을 중점으로 두고, 비교적 객관적인 입장에서 4·3을 바라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유 교수는 최대한 중립을 지키고자 대개 정부에서 조사한 4·3진상보고서에 입각해 강의안을 만들었고, 그 외의 강의 내용 또한 4·3연구소 소속 선생님들의 학술 자료 내용을 발췌했다고 밝혔다.

“또한 제주대학교의 구성원이라면 4·3을 꼭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 기본적인 내용들을 토대로 시험 문제를 쉽게 제출합니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이 부담감 없이 4·3에 쉽게 노출되고 인식하는 것에 만족감을 느낍니다.”

학생들 사이에서 유 교수의 4·3강의는 재미있고, 시험 난이도도 쉬운 편이라 인기 강좌에 속해 있다. 그 속에는 유 교수가 학생들을 4·3에 노출시키려는 깊은 뜻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생각지 못한 답변에 유 교수의 목표가 내심 궁금해졌다.

“교수님께서는 학생들에게 4·3을 알려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입니까?”

“제가 생각했을 때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4·3의 정확한 정의를 찾아 정명하는 것입니다. 현재 4·3평화공원에는 이름을 새기지 못한 백비가 7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4·3의 정의를 찾아 그 비석에 어울리는 이름을 새겨야 합니다.”

그는 정명의 단계를 뛰어넘고 평화·인권·상생에 중점을 둔 현재 4·3의 의미가 사람들에게 큰 와닿음을 선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덧붙여 제주대학교 학생들이 올바른 이름을 찾아줘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고, 4·3의 성격을 규정하는데 함께 노력해 줬으면 한다고 전했다.

# 4·3을 알리는데 노력하고 있는 사람은 제가 아닌 학생들입니다.

“4·3이 정부로부터 탄압되던 80년대 시절부터 사람들에게 4·3을 알리려고 노력했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그러한 행동들로 인해 정부와 마찰을 빚은 적은 없었나요?”

“아마 85년도의 일로 기억합니다. 당시 사회과학대학 학생회에서 4·3을 언급한 학술지를 편찬하는 과정에 정부와 마찰이 있었습니다. 혹시나 학생들이 학술지에 잘못된 정보를 집필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논문 번역과 검토를 도와주었습니다. 또한 공안당국의 제재를 막고자 중간 입장에 서서 양측의 이해를 도왔습니다.”

유 교수는 당시 아내가 둘째 아이 출산이 임박해 서울에 올라갔다가, 학생들의 소식을 듣고 급히 내려온 일을 회상했다. 추억에서 깨어난 유 교수는 학생들이 전부 노력한 결과물일 뿐, 자신은 한 것이 없다며 겸손한 태도를 취했다.

“강의를 13년간 해오면서 보람찼던 경험도 많으시겠어요.”

유 교수는 타 대학 학생들이 4·3 강의에 많은 관심을 가져줄 때나, 교육자들을 가르칠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방학기간에는 타 대학 학생들이 이 수업을 많이 신청합니다. 다른 지역 학생들이 4·3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는 것에 고마움을 느끼며, 4·3에 대한 이해를 조금이나마 도왔다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또 학생들뿐만 아니라 초·중등 교사들을 가르치는 연수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교육자들을 가르치고, 이는 또 제자들에게 전파되는 것이 나름 보람찬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색안경을 벗고 제주의 역사를 바라봤으면 합니다.

그는 앞으로도 4·3을 알리는데 노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앞으로도 강의는 계속됩니다. 폐강이 되지 않는다면 말이죠. 그리고 아직까지 4·3과 관련한 방송 및 라디오 출연 요청을 거절한 적이 없는데, 앞으로도 그럴 생각입니다”

방송 요청과 관련해 유 교수는 자신이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에서 4·3을 말하는 사람이기에, 어느 PD가 와도 만족할만한 인터뷰를 한다고 자부하며 웃어넘겼다.

흥미로운 대화가 오가다 보니, 어느샌가 예정된 인터뷰 시간을 훌쩍 넘어버렸다. 그제서야 인터뷰 중에도 연구자료를 놓지 못하는 유 교수의 모습이 보였고, 괜스레 바쁜 시간을 뺏은 건 아닌지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질문지를 덮어두고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끝으로 제주대학교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지요.”

어떤 질문에도 막힘이 없던 그가 마지막 질문에서는 한참을 고민하다 입을 뗐다.

“우선 색안경을 끼지 않고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색안경이라는 것이 거창한 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색안경은 이데올로기 측면일 수도 있고, 또는 제 강의가 좋은 학점을 챙길 수 있는 강의로만 인식하는 학생도 있을 겁니다. 이런 색안경을 모두 벗고 제주도민들이 무고하게 학살당한 슬픈 역사인 것을 상기하며, 진심으로 제 강의를 들어줬으면 합니다. 4·3의 기본적인 내용으로 구성된 강의니 제 강의를 들으면서 제주의 역사를 바로 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유 교수는 색안경을 끼지 않고 바라보는 자세와 요즘 유행하는 문구인 ‘팩트 체크’처럼 항상 올바른 ‘진실’을 보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전했다. 그리고 4·3을 알리는데 노력하는 사람은 자신이 아닌, 강의를 열심히 들어주는 학생들이라는 것을 재차 강조하며 마지막까지 겸손한 태도를 유지했다. <2020 신문제작실습 / 김명근> 

김명근  kk9975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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