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안에서 바라본 제주

"승객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방금 목적지인 제주국제공항에 착륙했습니다.” 마침내 비행기 안내 멘트가 흘러나오면 바짝 조여져 있던 온몸의 근육이 자동적으로 느슨해진다. 지친 일상을 탈출해 떠난 여행객들에게 제주도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 통하는 통로와 같다.

제주도. 한때 신혼부부만을 위한 관광지였다가 이젠 '문화적 망명'이란 기치를 내건 육지인의 섬으로도 진화했다. 한 달 아니면 1년 정도 빈집을 빌려 '놀멍쉬멍(놀면서 쉬면서란 의미의 제주어)' 이 섬 만의 문화적 속살을 체험하기 안성맞춤인 곳. 

2017년 방영한 JTBC TV프로그램인 ‘효리네 민박’이 전파를 타면서 제주도는 한 달 살기의 대표 성지가 되었다. 그렇게 2017년을 정점으로 세대 불문 한 달 살기 붐이 일어나 그 인기는 지금까지 식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마치 '제주 한 달 살기'라는 키워드가 하나의 힐링 트랜드로 자리 잡은 추세이다.

‘일상 같은 여행’은 행복을 중요시하는 가치관의 확산과 맥을 같이 한다. ‘성공’, ‘출세’ 같은 거창한 목표보다, 다양한 ‘경험’을 쌓는 과정에서 느끼는 행복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빼곡히 짜여진 일정표대로 바삐 움직이는 여행이 아닌 일상과 여행 그 사이 흐릿해진 경계 속에서 즐기는 '느린 여행' 은 모든 것이 쉴 틈 없이 바쁘게 흘러가는 현대인들의 삶 속에서 '쉼'이란 갈증을 해소시켜 주는 듯하다.

이렇듯 언젠가부터 육지 사람들에게 제주도는 이유 없이 떠나 잠시 충전하고 싶은 하나의 '로망'이 되었다. 하지만 낭만적인 제주 살이의 로망을 이루고 마음껏 누리기엔 젊은 청춘들의 주머니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그 가운데 제주 살이를 꿈꾸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제주도 게스트하우스 스탭으로 일하기’는 꽤나 매력적인 대안으로 각광 받고 있다.

이들은 일정 기간 매주 근무일을 지정해 제주도의 게스트하우스 스탭으로 근무하며 숙식을 제공받고 무급 또는 소정의 급여를 지급받으며 지낸다. 휴무일이나 근무시간을 제외한 잉여시간을 이용해 제주도를 여행하거나 자유 시간을 가지며 제주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제주도에서 한 달간 게스트하우스 스탭으로 지낸 이지현씨를 만나보았다.

현재 24살의 이지현씨는 2년 전 게스트하우스 스탭으로 떠나던 때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영화 속 행복한 주인공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10월의 제주, 그녀가 좋아하는 가을, 바쁜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무작정 제주도의 한 게스트하우스 스탭으로 떠났다.

▲제주에서 게스트하우스 스탭으로 근무하며 지내던 당시 이지현씨의 모습

Q. 게스트하우스 스탭으로 ‘제주 한 달 살기’를 떠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 당시에 단순하고 무모하게 '가을 제주에 살아보고 싶다'라는 생각 하나로 떠났어요. 노랗게 물든 억새와 바람이 솔솔 부는 푸른 하늘. 좋아하는 계절인 가을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 제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자신이 꿈꾸던 시기로 돌아가 행복해 보이던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고, 애정 하는 시공간 속에 살아보는 것만큼 스스로 살아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을까 싶었어요. 2년간 밤샘과제에 지친 마음을 여유롭게 재정비 할 공간이 필요했고, 체력적으로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던 22살. 지금이 아니면 아무 걱정 없이 그런 여행을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휴학을 결심하고 한 달 살기를 시작했습니다.

Q. 어느 경로를 통해 게스트하우스 스탭 구인 정보를 얻고 지원하였는가?

- 경로는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아요. 직접 제주도에 내려가서 일을 구하거나 네이버 카페를 통해 지원하거나. 저는 '제주게스트하우스 여행자 모임'이라는 네이버 카페를 통해 스탭 자리를 미리 구하고 제주도에 내려갔습니다. 면접의 유무는 게스트하우스마다 다를텐데 저는 문자로 지원한 후에 전화 면접이 있었습니다.   

▲이지현씨가 근무했던 게스트하우스의 외관(좌)과 내부(우) 모습

Q. 게스트하우스 스탭은 어떤 일을 하는가?

- 저는 유급 스탭으로 일주일에 3일 쉬고 4일 근무하며 한 달 급여 10만원을 지급 받았습니다. 업무로는 아침에 조식 준비를 하고, 게스트 분들이 퇴실하면 청소를 시작했어요. 그 후로 입실 시간까지는 자유 시간이라 쉬는 날이 아니더라도 근처 카페나 바다에 가서 구경할 시간이 있었어요. 돌아와서는 새로운 게스트 분을 맞이하기 위해 입실 안내를 했습니다. 초보자도 가능할 정도로 일의 강도가 높지 않았고, 근무 형태나 시간도 여유로운 편이라 덕분에 일을 하면서도 여행할 시간이 충분했어요.

Q. 제주 게스트하우스 스탭으로 지내면서 한 달 기준 생활비는 어느 정도 쓰였는가?

- 개인의 씀씀이에 따라 많이 달라지는 부분이라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저는 육지에서 생활했던 금액에 10만원 정도 더 쓰고 왔습니다. 소문처럼 제주 물가가 서울만큼 높았음에도 매일 카페에 가고 제주도 한 바퀴를 여행하며 상대적으로 아낄 수 있던 이유는 숙식 제공이 컸습니다. 사장님의 요리 솜씨는 게스트 분들도 놀랄 정도였거든요. 덕분에 먹고 자는 건 걱정 안 하고 지낼 수 있었어요.

Q. 게스트하우스 스탭으로 근무하면서 힘든 점이 있었다면?

저는 운 좋게도 좋은 사장님과 스탭 언니를 만난 덕분에 특별히 힘들었던 점 없이 하루하루가 즐거웠어요. 사장님께서 뚜벅이인 저희를 데리고 이곳저곳 많이 데려가 주셔서 굉장히 감사했습니다. 쉬는 날에는 다 같이 오름에 가서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바다를 보면서 갓 말린 오징어를 뜯으며 이런 게 행복이구나 싶었습니다. (웃음) 벌써 2년 전이지만, 육지에 돌아와서도 같이 근무한 스탭 언니와 만나 종종 그때의 추억에 빠지곤 합니다.

Q. 게스트하우스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지내면서 어려움은 없었는지.

-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게스트 분들은 서로 고민을 털어놓으면서 그 자리에서 만큼은 직업, 나이 상관없이 가까워졌던 것 같아요. 바쁜 삶에 지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인 만큼 '퇴사자의 성지'로 불리기도 한 이곳에서 같은 마음으로 모인 사람들과 만나 여러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습니다. 한 사람을 만나는 건 하나의 세계를 알아가는 것과 같다는 말처럼 저에게 게스트하우스 스탭은 다양한 사람들의 각양각색 인생담을 들으며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던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Q. 제주 게스트하우스 스탭으로 지낸 제주에서의 생활은 만족스러웠는가?
 
- 휴학까지 하면서 간 제주도였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한 달 살기였어요. 바쁜 삶 속에서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잠시 제주로 떠날 때입니다. (웃음)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던 중 핑크빛 노을을 보며 행복해 하다가 이렇게 하늘을 올려다본 게 언제 적인지 제주에 내려와서 깨달았어요. 자연이 주는 사소한 행복조차 놓치고 있으면서 나는 어디서 행복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던 걸까. 매일매일 오늘 하루는 무엇을 할지 나를 위해 고민하는 것도 오랜만이었고요. 방해받지 않고 개인 시간을 갖고 싶은 분들 중에 금전적인 부분이 고민이라면 꼭 한번 경험해 보시길 바라요.

Q. 게스트하우스 스탭으로 '제주 한 달 살기'를 꿈꾸며 망설이고 있는 청춘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 막상 제주도에 가면 망설이는 시간이 아까웠다고 느낄 거예요.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짧다는 것도요. 당시에는 시간 낭비가 아닐까 걱정했지만, 제주에서 한 달을 보내며 지금까지 열심히 산 기간에 비하면 한 달 정도는 별거 아닌데 그 시간은 온전히 나를 위해 써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생에 지친 당신, 부디 제주에서 좋은 것만 보고 듣고 힐링 하고 오길 바라요.

이지현씨의 바람처럼 많은 이들이 한번쯤 바쁜 일상의 짐을 덜어 놓고 진정한 '쉼'을 느껴 보길 바란다. 앞으로 이지현씨의 한 달 살기 그 이후의 삶과 수많은 청춘들의 도전을 응원한다. <2020 신문제작실습 / 공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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