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은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가는데 네 아빠는 항상 자기가 병원에 갔어. 어느 날은 네가 감기가 걸려서 소아과를 갔는데, 병원 원장이 ‘이 아이는 기관지가 태생적으로 안 좋습니다.’라고 말하니깐 아빠가 의사 멱살을 잡은 거야. 진료실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지. ‘왜 우리 애한테 안 좋다고 함부로 말하냐.’며 그렇게 애지중지했어. 죽는 그 순간까지.

 

 아빠는 공기다
  누군가 나에게 스케치북을 주고 ‘엄마의 얼굴을 그려봐’라고 말한다면 엉성하긴 해도 완성은 시킬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 아빠의 얼굴을 그리라고 한다면 아주 희미한 원 하나를 그릴 것 같다. 아빠는 내가 태어나고 생후 몇 개월이 채 되지 않아 폐암으로 죽었다. 이젠 그 사실이 슬프지도 부끄럽지도 않다. 나는 자라며 아빠의 이야기를 불특정 다수에게 수없이 들었다. 그리고 엄마는 내가 아빠를 똑 닮았다고 한다. 생김새와 성격, 입맛까지도. 그렇게 25년을 듣고 살다 보니 아빠가 공기 같아졌다. 눈에는 보이진 않지만 존재하는 ‘공기’.  

 

 출판문화실습에서 ‘가족독서릴레이’라는 과제를 받았을 때 참 당황스러웠다. 책이라면 불교, 관상, 운명에 관련된 것만 가끔 읽는 엄마. 그리고 3개월 전에 군대에 간 남동생까지. 그 외 친척들에게는 부탁하기 민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읽어야 한다면 조창인의 《가시고기》를 읽고 싶었다. 독서릴레이 당시 우리 집은 가족끼리 불화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가족행사에 참여하지 않는 작은이모가 못마땅한 엄마와 가족과 단절한 작은이모. 이 과제가 해결의 실마리가 되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졸업 후 서울에 취직하기 전 친척들에게 아빠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가 있었으면 했다. 취지가 이렇다보니 독서릴레이의 주자는 응당 ‘아빠를 기억하는 사람’이 읽어야 했다.

 

 첫 번째 주자인 내가 책을 다 읽었을 때, 당시 엄마는 식당개업을 준비 중이라 매일 바빴으며 날이 서 있었다. 나는 엄마의 머리맡에 책을 계속 놔두며 읽어두라 일렀지만 “잠잘 시간도 없는데 책을 어떻게 읽느냐”며 볼멘소리가 날아왔다. 이대로 둘 수 없어 가족들이 있는 네이버밴드에 독서릴레이와 취지를 설명하는 글을 남기고 개인적인 연락을 해도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가장 친한 작은이모에게 부탁했고 두 번째 주자는 작은 이모가 됐다.

 

 “그냥 안 읽고 소감만 적으면 안 돼?” 이모는 가시고기를 예전에 읽었다며 책을 안 읽은 지 오래되었고 시간이 없다고 했다. 거부하는 이모 집에 찾아가 한사코 책을 쥐여주고 난 후 일주일 후에 소감 평을 받을 수 있었다. 아빠와 가시고기가 무슨 상관이며 투덜거렸지만 <오랜만에 읽으니 옛날 생각이 나서 좋았고 다움이 아빠의 부성애가 감동적이다> 라는 글이 남겨져 있었다.

 

 마지막 주자인 엄마의 감상평은 선물처럼 왔다. 엄마는 피곤함을 외치더니 어느 날은 퇴근 후 드라마도 안 보고 소주도 안 마시고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개인적인 바람도 아니고 ‘학교과제’라고 하니 엄마도 여간 신경이 쓰였냐보다. 엄마는 늘 그랬다. 없는 살림에 옷 한 벌은 못 해줘도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빚을 내서라도 배우게 해줬다. 4학년 2학기 마무리와 개인일정으로 바쁘던 나는 독서릴레이를 잠시 잊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안방 탁상 위 펼쳐져 있는 엄마의 감상평을 봤다. <부모가 되기 전에는 자식을 낳으면 당연히 부모가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키우며 내가 아니면 아이를 누가 돌볼까- 생각을 많이 했다. 네 아빠도 그랬다. 너도 낳아보면 알 거다> 가시고기 속 다움이 아빠의 부성애는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엄마도 만만치 않았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아빠도 그랬을 거다.

 그렇게 다사다난했던 독서릴레이 마감 후 우리 가족은 <늘봄>에 모여 양념갈비를 먹었다. 내가 처음으로 주최해본 가족모임이라 어색했지만 아빠가 얼마나 짠돌이었는지, 누구를 중매시켜줬는지, 그리고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또 얼마나 아팠는지 알게 됐다.

 

독서릴레이는 이렇게 끝이 났다. 과제를 통해 가족과 대화를 할 수 있었던 점, 아빠를 아로새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당신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 나에겐 지금 가까이 없더라도 힘이 되는 존재다. 가시고기의 마지막 문장이 생각이 난다. <사람은 말이야……. 그 아이를 세상에 남겨놓은 이상은, 죽어도 아주 죽는 게 아니래>

 

<2019 출판문화실습/김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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