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바크 <갈매기의 꿈>

 책은 늘 집 안 곳곳에 함께 있었지만 내 주변을 맴돌 뿐 이었다. 어렸을 때 엄마는 독서논술을 가르쳤고 항상 나와 동생이 읽었으면 하는 책을 사다 놓고는 했다. 그렇게 쌓인 책들은 거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웠고 자리가 모자라 책장에 담지 못한 책들은 박스 안에서 자신들이 빛 볼 날 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듯 나에게 책이란 오랫동안 가까이 있어 익숙해져버린, 그래서 소중함을 잊고 지낸 가족과 같은 존재였다.

 가족독서릴레이 책을 선정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였다. 마냥 가벼운 책을 고르는 건 내가 원치 않았고 그렇다고 무거운 책을 읽기에는 가족들의 상황을 고려해야했다. 혼자서는 결정을 내리지 못할 것 같아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자 3일을 고민했던 나와 달리 단 몇 초 만에 해결책을 제시했다. “지금 갈매기의 꿈 다시 읽고 있는데 그걸로 해. 그럼”. 이 대답으로 여러 가지 조건을 고민했던 시간이 무색하게 단순히 엄마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이었던 ‘갈매기의 꿈’이 가족독서릴레이 책으로 선정되었다. 이렇게 시월의 어느 날 우리 가족의 독서릴레이는 시작되었다.

 첫 번째 주자인 엄마가 책을 다 읽었을 때, 나는 아직 책을 읽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단순히 책제목이 ‘갈매기의 꿈’이라는 이유로 꿈에 대해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이 질문이 엄마에게는 심오했던 모양이다. 책을 선정하는 데에는 몇 초도 걸리지 않았던 그녀가 이 질문에는 한참동안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옆에서 기다리는 내가 방해가 된 듯 시모임에 다녀온 후 저녁에 그에 대해서 대답을 해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늦은 저녁 모임에서 돌아온 엄마는 낮에 한 이야기는 잊은 듯 티비를 시청하고 있었다. 프로그램이 끝나갈 때즈음 문득 옆에 있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이야기를 시작했다. “엄마는 결혼하고 나서 항상 앞에 수식어가 붙었어. 은수엄마, 동균이엄마, 직장선배처럼. 그런데 시를 쓰면 어떤 수식어도 붙지 않은 나로서 내 생각과 느낌을 표현할 수 있더라고. 그래서 엄마는 엄마이름을 건 시집하나 내는 게 꿈이야.” 생각지도 못한 진지한 진심이 담긴 대답이었다. 

 곧이어 내가 그 책을 넘겨받았다. 두껍지 않은 책이라 하루 만에 쉽게 읽었지만 읽고 난 뒤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이 책은 또 다른 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시점에서 꿈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나는 항상 하고 싶은 일을 꿈꾸면서도 현실로 돌아오면 그 둘 사이의 괴리감으로 인해 무기력함에 빠질 때가 종종 있었다. 그 때의 허무함은 내 스스로를 갉아 먹었고 나를 작아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책을 읽은 후 돌이켜보니 주변의 시선에 얽매여서 온전한 나로서 살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책 한 권으로 나의 모든 가치관과 성격을 바꿀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나를 돌아보고 나답게 사는 방법을 찾아 나가야겠다고 마음 속으로 되뇌었다.

 세 번째 주자로는 아빠가 책을 이어받았다. 사실 아빠는 우리 가족 중에 제일 바쁘기 때문에 책을 다 읽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시 나에게 돌아온 책에 붙여진 기록장 가득 빼곡이 쓰인 글자들을 보면서 아빠도 가족독서릴레이를 뜻깊은 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게 전해졌다. 나는 아빠에게도 엄마와 같은 질문을 했었다. 진지해지는 걸 견디지 못하는 우리의 성격 탓에 평소처럼 아무 의미도 없다는 듯이 일을 나가는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아빠는 꿈이 뭐?” 아빠의 대답 또한 간결했다. “갑자기? 가장 큰 꿈, 너네지. 난 꿈 이뤄서(이뤘어).”하고 서둘러 나서는 아빠는 뒤에서 눈물 흘리고 있던 나를 평생 알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지금 나가는 아빠의 발걸음이 아빠의 꿈을 지키려는 노력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가슴이 저릿해졌다.

 마지막 주자는 하마터면 독서릴레이에 참여하지 못할 뻔 했던 우리 집 막내가 차지했다. 고3 수능을 앞둔 동생이라 읽는다는 기대를 하지 않던 터라 아빠에게 돌려 받고 바로 글을 써내려가려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수능이 끝나고 엄마에게 들은 건지 동생은 “책 줘.”라는 말을 무심히 내뱉었다. 나는 읽고 너의 꿈에 대해 생각해보라는 말을 꺼내며 동생에게 책을 건네주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책은 돌아오지 않았고 나의 기대는 점점 가라앉아 자취를 잃어갈 때 즈음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문득 본 거실 쇼파 위에는 동생이 올려두고 간 책과 몇 번의 고민흔적이 보이는 기록장이 있었다. 아마도 내가 말한 꿈에 대해서 고민했던 것 같았다. 수정테이프로 지운 흔적 위에는 19살 동생이 지금 제일 바라고 희망하는 꿈이 적혀있었다. “꿈 : 원하는 대학에 가고 아르바이트해서 돈을 많이 모으고 싶어요.”

 이렇게 귀여운 동생의 현실적인 꿈을 마지막으로 독서릴레이는 끝이 났다. 처음에 책을 선정하게 된 계기가 너무나도 단순해서 의미 없는 릴레이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진지하게 이 과제를 받아들였고 평소에 알지 못했던 서로의 생각을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내가 이 책을 읽고 공유하면서 느꼈던 각자가 가지고 있는 꿈에 대한 생각과 가족의 소중함을 우리 가족 모두가 느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행복한 마음으로 이 글을 마친다.

<2019 출판문화실습 / 언론홍보학과 4학년 김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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