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이사카 고타로 , '종말의 바보', 랜덤하우스 출판

사실 책을 고르기 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 나를 포함하여 우리 가족들이 읽을 책이기에 너무 적당히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주제의 지루하지 않을만한 책을 원했다. 그렇게 눈에 띈 책이다. <종말의 바보>. 이 책에서는 어느 날 8년 후에 지구와 소행성이 충돌하여 종말할 것이라는 사실이 일반인들에게 공표된다. 소행성과 지구의 충돌이라니, 이건 아마도 인류 최후이자 최대의 스펙타클이 될 것이다. 그 스펙타클이 올 때까지 남은 8년 동안 사람들은 무얼 하면서 살까?

사람들이 지구 종말을 8년 전에 알게 된다는 사실과 함께, 작가는 또 한 가지 기술을 발휘하여 작품의 배경을 종말 3년 전으로 설정한다. 발표 직후도 아니고 그렇다고 종말 직전도 아닌 중간의 시간을 작품의 배경으로 선택했다. 발표 직후의 패닉과 혼란은 엷어지고, 종말 직전의 아수라장은 아직 오지 않은 상황으로, 어찌 보면 짓궂은 상황 설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힐즈 타운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모여 사는 사람들이다. 종말에 대한 발표가 있은 지 5년이 흘렀다. 그동안 떠날 사람은 떠나고 죽을 사람은 죽고 감옥에 들어갈 사람은 감옥에 들어가 있는 상태다. 원래 100세대가 모여 살던 힐즈 타운의 절반이 비었고, 사람들이 북적이던 공원도 썰렁해졌다. 거리에는 온갖 쓰레기들이 차고 넘치지만 치안도 다시 회복되고, 남은 사람들은 평온한 것처럼 보인다. ‘정말 3년 후에 종말이 오는 거야?’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남은 사람들의 심리는 모두 제각각이다. 작품의 시간과 공간적 배경은 ‘종말 3년 전의 힐즈 타운’이지만, 등장인물들의 마음은 모두 과거와 미래를 오락가락한다. 누구는 아내가 그리워 자살하려고 하고, 누구는 오래전에 죽은 여동생의 복수를 하려고 하고 또 누구는 짜증과 분노를 이기려고 샌드백을 두드린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실제로 사람들의 내면은 그렇지 않다. 종말 3년 전까지 힐즈 타운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절망과 두려움을 어떻게든 억누른 채 5년을 버텨온 사람들이다. 5년이란 시간은 패닉과 혼란을 가라앉히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절망을 그만큼 짙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세상이 3년 후에 망하는데 누군들 마음이 평온할까?

이 책은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다. 식료품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고 특별한 소일거리도 없는 사람들은 저마다 과거를 다듬고 먼저 떠나간 사람을 추억한다. 그리고 실제로 종말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긴 하다. 별을 좋아하는 중년의 남성 ‘니노미야’가 그 인물이다. 거대한 행성이 지구로 떨어지는 장면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그는 흥분해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거짓이라면 어떻게 될까? 별을 좋아하는 니노미야는 이렇게 말한다.

“소행성이 떨어지든 안 떨어지든, 세상은 끝날 거야. 모두가 진짜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밖에 달리 생각할 수가 없어.”

또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이 작품은 ‘다시 밖으로 나온 사람들’의 이야기다. 종말에 대한 발표가 있은 직후의 시내는 온갖 약탈과 방화, 폭력이 판을 치는 무법천지였다. ‘야구 방망이를 든 채로 한번 사람을 훔씬 패보고 싶다.’ 라고 말하는 사람을 골목에서 만날 수도 있다. 8년 뒤의 행성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이성을 잃은 사람과 마주치는 것이 두려운 사람들은 당연히 집에 박힌 채 나오지 못한다. 마치 동면을 하듯이 몇 년 동안을 집에서 지내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다시 예전처럼 이웃을 만나고 운전을 하고 팀을 짜서 축구를 한다. 사람들이 두려움을 잊고 소통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집에서 혼자 고민하고 생각하던 등장인물들은, 다시 밖으로 나와서 이웃과 접촉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하나씩 정리하고 결정해 간다.

우리 엄마는 8가지 에피소드 중 ‘동면의 소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씀하신다. 4년 전, 세상이 혼란에 빠졌을 때 부모님의 극단적인 선택으로 한 순간에 혼자가 된 소녀 미치의 이야기이다. 미치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리했다. 1. 아빠와 엄마 미워하지 말기. 2. 아버지의 책 전부 읽기, 3. 죽지 않기. 미치는 몇 년 동안 두 번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아버지의 서재에서 대략 3천 권의 책을 모두 읽고, 마치 동면에서 깨기라도 한 듯 서재를 나와, 세상 밖으로 나선다. 소녀는 친구와의 만남으로 애인을 찾는다는 네 번째 목표를 가지게 된다. 비즈니스 서적의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면 세 명의 의견을 들어라”는 문구를 실행하며 마치 이솝 우화처럼 그녀는 사람들을 찾아서 집을 나선다. 처음으로 만난 인물은 첫 번째 이야기 종말의 바보 속 주인공 가토리 부부, 두 번째 인물은 동경하던 동급생이었으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동급생의 어머니로 대신하게 되었고, 세 번째 인물은 제자의 이름과 최고 점수만큼은 잊지 않는다는 엣 과외 선생님이었다. 이들과의 만남 끝에 종말이 겨울잠이라면 혼자서 자는 건 쓸쓸하다며, 역시나 애인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던 미치는 곧 동화처럼 쓰러진 남자를 보게 된다. 그 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희미하게 드는 예감 앞으로 점프한다. 우리 엄마는 막연히 희망하기보다 긍정적으로 실천하고 움직이는 미치의 소녀 같은 낭만과 목표들이 예뻤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저에게 소행성이 떨어진다면 넌 무엇을 할 거냐는 물으셨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 생활하고 있는 대로 살아가지는 않을 것 같다. 우선 생각난 한 가지는 과감히 전국일주를 할 것 같다. 가능하다면 세계일주를 하고 싶지만 종말이 온다는데 비행기가 잘 날아 다닐까 하는 의문이 들어서 전국일주로 수정했다. 그리고도 시간이 남는다면 전망 좋은 옥상에서 ‘동면의 소녀’의 미치처럼 한동안 편안하게 어느 한 가지에 빠져 지내고 싶다. 마지막 종말의 날에는 그 전망 좋은 옥상에서 ‘소행성의 밤’의 니노야마처럼 다가오는 소행성의 모습을 감상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 책을 선택하기 전에는 막연히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주제를 원했다. 이야기를 가볍게 풀어가지만, 다 읽고 난 후에는 나에게 무거운 생각들을 남겨주었다. 지구 종말이라는 대사건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데 필요한 지나간 5년, 그리고 남은 인생을 나름대로 유익하게 보내기 위해 필요한 앞으로의 3년. 그래서 이 작가는 종말까지 8년이라는 유예시간을 두었는지 모른다. 언제나 느끼는 것처럼, 이 작품에서도 남은 시간이 지나버린 시간보다 짧다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2019 출판문화실습 언론홍보학과 4 박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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