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말라, 잘 써주마”

독서릴레이를 부탁드리자 결혼 전 작가가 꿈이었다는 엄마가 자신감을 드러내셨다.

“그니까요~ 엄마 아가씨일 때 서점에서도 일했다면서요? 글 잘 쓰시잖아요”

어릴 적부터 몇 번인가 들은 정보를 바탕으로 약간에 아부를 곁들여 쐐기를 박았다.

내가 선택한 독서릴레이 책은 그 유명한 ‘어린왕자’였다. 하나, 집에 있는 책일 것. 둘, 분량이 짧을 것. 셋, 나에게 의미있는 책일 것. 독서릴레이 시작하기 전 혼자 나름대로 정해본 이 3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는 최적의 책이었다. 앞에 2가지 조건이야 뭐 아무 책이나 만족 시킬 수 있었지만 마지막 조건이 어려웠다. 혹시나 우리 가족에게 의미있는 책이 있을 까 기억을 더듬어 봤다. 내 기억 상으로 만화책이랑 동화책 제외하고 내가 첫 번째로 읽은 책이 ‘어린왕자’인가 ‘거지왕 김춘삼’ 인가 그렇다. ‘거지왕 김춘삼’은 호기심이 동해 펼쳐봤다가 그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내용에 적잖은 충격 받은 기억이 있어 탈락이다.

우리 집에 있는 이 ‘어린왕자’는 무려 1988년 생. 나보다 나이가 5살이나 많았다. 저자도 ‘생텍쥐페리’가 아닌 ‘쌩땍쥐뻬리’, 심지어 컬러판이라는 글귀를 자랑스레 표지에다가 박아 넣은 책이다. 아마 엄마 결혼도 전이니 엄마가 말했던 그 서점 시절에 마련한 책일 것이라고 혼자 의미를 부여했다. 확실치는 않지만 내가 처음으로 읽은 책, 이것도 확실치는 않지만 엄마가 서점 시절 마련한 책이라니... 의미는 충분했다.

사실 어린왕자는 내가 썩 좋아하지 않는 책이다. 미취학 아동 시절 처음 읽었을 때는 그 내용을 잘 몰랐고, 군대에서 왠지 손이가 한번 더 읽었을 때는 어린왕자에게 공감이 가지 않았다. 어린왕자가 유일하게 긍정적으로 평가한 인물이 허구헌날 불켜고 끄는 작은 행성의 관리인이라는 점이 너무 융통성 없게 여겨졌다. 또 어린왕자가 탐욕적이라며 떠나간 왕도 불쌍했다. 그저 외로워서, 표현이 서툴러서 저런 건데 너무 심하게 반응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

아무튼 군대에서 2번은 더 읽은 책이라 얼른 속독하고 한 줄평 딱 휘갈겨 엄마에게 전해드렸다. 엄마는 언제나 그렇듯 내 개발세발 글씨체를 지적하면서도 뭔가 바통을 넘겨받은 듯한 비장한 눈빛을 보였다. 그러나 너무 믿었던 탓인지... 발등을 찍혀버리고 말았다. 제출 2주 남겨놓고 엄마에게 전화해 독서릴레이 종이 좀 넘겨달라고 하자 약 3초간 정적 후에 종이를 잃어버렸다고 대답하시는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괜찮아요, 아무 종이에나 다시 써주세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나 1주일 후에 다시 전화했을때는 바쁜데 귀찮게 좀 하지 말라고 되레 짜증을 내셨다. 이런...망했다. 당장 집으로 가서 한줄평을 받아오고 싶었지만 집은 한림, 내 자취방은 시청 맥도날드 맞은 편. 갔다오기는 너무 힘든 거리였다. 한 번에 승부를 보자는 생각에 큰 마음먹고 한림 집으로 찾아가 한줄 평을 요구했다. “네가 알아서 써”라며 툴툴거리시더니 이내 2줄, 3줄, 4줄 써내려 가시기 시작했다. 한줄만 쓰시면 된다고 말려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이제 27살의 성장해버린 아들보다 더 나이가 들어버린 어린왕자 책을 다시금 책장에서 꺼내어 읽어 보았다. 다시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듯 어린왕자가 되어 읽어 내려갔다. 어린아이가 겪는 실수 그리고 외로움 허무함 길들여진 것에 대한 사랑... 이제 50대를 넘어 살고 있는 아게 옛날 읽었던 때보다 훨씬 더 많은 공감과 고개를 연신 끄덕이는 모습을 본다. 등장인물 여우의 말들을 다시금 가만히 되새겨본다’

우리 가족 중에는 엄마 한분 밖에 독서릴레이에 참여를 안했지만 프로젝트를 끝마치고 느낀 것은 한줄 평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어떤 평을 쓰느냐 보다는 독서릴레이를 하는 과정이 즐거웠다. 단지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오랜만에 엄마와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시간이었다.<제주대학교 언론홍보학과 서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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