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책을 권해드렸다. 그저 책의 제목만 보고 말이다. ‘아버지’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 순간 찰나의 고민도 없이 이 책을 선택했다. 순식간에 골랐지만, 책을 공유하는 것은 생각보다 무척 부끄러웠다. 혼자 며칠을 고민한 후에 책을 드렸다. 예상과 달리 아버지는 무덤덤하게 책을 받고서는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셨다. 둘이서 무슨 비밀을 공유하나 기웃거리던 어머니는 서운한 표정을 애써 감추셨다.

 

 내게는 이 책으로나마 아버지께 전하고 싶고, 듣고 싶은 말이 있다. 둘만의 책 공유를 빌미로 이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가 생겼다. 내게 ‘아버지’라는 단어는 한없이 정겹지만 동시에 무엇인가 뜨거운 양가감정이 담겨있는 단어다. 이러한 감정은 나에게만 해당될까? 문득, 나의 아버지가 생각하는 ‘아버지’는 무슨 의미를 갖는 지 묻고 싶어졌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책

 7살 때였을까. 아버지는 퇴근길에 종종 전화로 내게 물으셨다. “아들, 아빠 붕어빵 사고 갈까?” 겨울을 사랑하게 된 이유가 붕어빵일 정도로 나는 붕어빵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저녁 7시 즈음 녹슨 현관문이 쓸리는 소리에 맞춰 나가면 아버지는 어깨에 수북이 쌓인 눈을 채 털기도 전에 하얀 봉투를 내게 건네주셨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붕어빵을 작은 두 손으로 쥐어 먹던 나는 아버지의 빨개진 손을 미처 보지 못했다. 혹여나 붕어빵이 식을까 봉지 입구를 틀어막고 추위에 맞선, 시퍼런 혈관을 드러낸 그 못난 손을.

 

 아버지에 대한 부끄러움이 터져 나온 것은 고등학생 때다. 비염 수술을 앞두고 “할아버지도 들어오라고 하셔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계기가 됐다. 그 순간 마음이 괜스레 울적해졌다. 그 전까지는 내가 늦둥이라는 사실이 삶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타인의 입에서 무심코 나온 말 한마디가 나도 몰래 숨겨두었던 창피함과 부끄러운 감정들을 들춰버렸다. 그때 나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아버지를 불렀다. 그제야 아버지의 검버섯, 기웃거리는 흰머리, 깊어진 팔자주름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으로 아버지가 창피했다. 아버지가 혹여나 눈치 채실까, 나는 그 날의 감정들을 마음 속 가장 깊은 곳까지 꾸역꾸역 쑤셔 넣었다.

 

 하지만, 군대 훈련소 수료식을 마치고 입소 후 약 40일만의 아버지를 봤을 때, 나는 눈물을 쏟아냈다. 어느새 아버지는 하얀 백발에 전에 없던 안경을 걸치고 계셨다. 구부정한 어깨와 빛바랜 셔츠는 아버지의 나이를 더 가늠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이유 모를 서러움이 물밀 듯 밀려왔다. “왜 우냐, 다 큰 자식이” 덤덤한 아버지의 한 마디는 붕어빵이 담긴 하얀 봉투마냥 따스한 온기로 전해졌다. 예전에 묻어놨던 아버지를 향한 부끄러움과 창피함의 감정들은 달콤한 붕어빵 팥처럼 사르르 녹아내렸다.

 

 며칠 후, 책을 다 읽으신 아버지는 한 줄의 감상평과 함께 책을 돌려주셨다.


 

독서릴레이 한 줄 감상평

 

 ‘자식이라는 거울에 비추어진 아버지의 모습들’. 그의 투박한 글씨체가 이내 흐려진다. ‘자식’이라는 거울 앞에서 가장 빛나는 모습만을 보여주고자 했던 아버지의 지난날들이 이제야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아빠도 ‘아버지’가 처음이라는 것을. 자기만 마냥 좋다고 좇는 아이의 눈을 마주한 순간 모든 것을 바칠 각오를 하는 한 남자를, 아빠가 되는 건 ‘핏줄’이지만, 아버지로 살아가는 건 ‘시간’이라는 것을, 아버지라는 ‘자격’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같이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버지께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은 저를 소유물이 아닌 한 인격으로 대해주셨고, 제가 토해낸 원망을 인정(人情)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핏줄이라는 연결고리에 안주하지 않고 시간과 함께 성장한 당신은, 그렇게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존경합니다. 아버지.”

 

 입에서 새어나오는 김이 제법 익숙해진 계절이 됐다. 길가에는 달콤한 냄새와 황금빛 자태를 뽐내는 붕어빵을 먹으려 사람들이 모인다. 봉지 속 쭈그러진 붕어빵을 맛있게 먹던 그 아이가 생각이 나 붕어빵을 하나 집어서 먹는다. 왜 그때의 맛이 나지 않을까. 추위와 맞섰던 한 남자의 못난 손이 자꾸만 떠올라서 괜히 울컥해진다. 이제는 아버지가 된 그 남자의 손을.

 

 오늘도 그렇게 누군가는 ‘아버지’가 된다.

 

 

<2019 출판문화실습 / 언론홍보학과 3학년 진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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