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쥐똥나무'라 칭하는 강판권 교수의 '나무철학'

 

 어렴풋한 기억 속 어린 시절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노는 것 보다 집에서 위인전이나 동화책 보는 걸 더 좋아하는 그런 아이였다. 그러다 커가면서 나는 점점 책한테 겁을 먹었던 것 같다. “이 책은 나한테 너무 어려워 보여”, “이 책은 페이지가 너무 많아”와 같은 핑계를 댔고 내 방에는 책이 하나둘씩 사라져갔다. 더 이상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출판문화실습 강의에서 가족 독서릴레이라는 과제를 받고 난 후 굉장히 막막했다. 우리 가족 역시 책과 거리를 둔 지 꽤 된 것을 나는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제에 대해 들었을 때의 가족의 반응 역시 불 보듯 뻔해서 더욱 막막했다. 가장 중요한 책 선정에서 “어떤 책을 골라야 50대의 엄마와 20대의 나와 여동생 모두 공감하면서 나눌 수 있을까?”라는 문제를 갖고 꽤 오랜 시간을 고민했다.

 도서관도 가보고 지인한테 추천도 받았지만 딱히 구미가 당기는 책이 없었다. 그러다 인터넷으로 추천도서를 보던 중 유독 눈에 띄는 책이름이 있었다. 바로 ‘나무철학’이었다. 이 책이 눈에 띄었던 이유는 너무나도 단순했다. 철학이라는 단어 앞에 ‘나무’가 붙어있기 때문이었다. 나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우리 가족의 독서 릴레이에 선정되기에 충분했다.

 독서릴레이의 첫 번째 주자인 엄마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은 ‘자연인’이다. 산을 좋아하고, 숲을 좋아하고, 꽃을 좋아하는 우리 엄마는 자연을 참 사랑하신다. “그런데 나무는 싫어하겠어?”라는 자신감을 갖고 엄마에게 위풍 당당히 책을 건넸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어찌된 일인지 일주일이 지나도 엄마의 책 진도는 30페이지를 넘어가지 못했다. 닦달하는 내게 엄마는 “아드님, 나는 직접 꽃을 가꾸고 숲에서 나무를 보는 게 더 좋은게”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엄마가 자연 그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지 책을 사랑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안 읽겠다는 엄마를 끈질기게 설득했고 책의 차례를 보고 끌리는 부분만이라도 읽어보겠다는 확답을 받고 겨우 안도할 수 있었다.

 2번째 주자인 나는 사실 ‘철학’이라는 학문을 지독히도 싫어했다. 대학교 1학년 때 교양 강의에서 들었던 철학과목이 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나도 어려웠고 난해해서 철학에 대한 안 좋은 인상만 남겼기 때문이다. 물론 좋지 못했던 학점도 한몫을 했다. 그런 내가 이 책이 눈에 띄었던 것은 오기 때문인 것 같다. 앞서 고백했듯 나는 책에게 겁을 먹고 있었고 이번 기회에 내가 제일 어려워하는 분야의 책을 읽고 극복해보고 싶었다. 아마도 ‘나무’라는 단어가 없었다면 이 책을 선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무’라는 존재를 통해 철학을 조금이나마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책에 대한 두려움도 어느 정도 떨쳐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고민 끝에 직접 고르고 산 것이 후회되지 않을 만큼 좋은 책이라서 뿌듯했다.

 마지막 주자인 5살 터울의 여동생은 독서릴레이 과제의 진정한 ‘최종악당’이었다. 한참 친구들과 노느라 정신없는 20살 대학 새내기인 동생은 집에 있는 시간이 드물었다. 내가 간절한 표정으로 책을 건넸을 때 동생은 코웃음을 쳤다. “철학? 아 보기만 해도 머리 아프다.”라며 나를 방에서 쫓아냈다. 처음엔 조금 화가 났지만 입장을 바꿔 동생이 내게 부탁했어도 나도 똑같은 반응이었을 것 같아서 이해했다. 어떻게든 릴레이를 완주하고 싶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최후의 방법을 택했다. 바로 동생이 갖고 싶어 하던 옷을 사주겠다는 조건으로 협상을 했고 동생도 결국 이 유혹(?)을 뿌리치진 못했다. 동생은 집에 늦게 들어오면서도 틈틈이 책을 읽어주었고 일주일 후 내게 책을 돌려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 뭔 책이 이렇게 길어? 그나마 사진 많아서 참았다이.” 나무 사진이 많은 이 책을 고른 게 참 다행이다 싶었다.

 독서릴레이를 하면서 처음에 가족들이 내 욕심만큼 따라와 주지 않아서 조금 서운하고 화가 났다. 그때, 책에서 봤던 내용이 생각이 났다. 우리가 나무를 당연히 여기고 함부로 대하듯 나도 가족들에게 당연하다는 마음으로 함부로 대했던 것이 아닐까?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 후부터 자기시간을 쪼개가며 나를 위해 독서를 하는 모습을 보고 미안하기도 하고 너무 고마웠다. 당장 나부터도 오랜만에 책을 읽는다는 것이 어색하고 귀찮았는데 가족들은 더 힘들었을 것 같다. 이제까지 부끄러워 표현하지 못했지만 집에 들어가면 가족들을 향해 환하게 웃어주고 싶다. 나무가 항상 그 곳에서 튼튼한 뿌리와 기나긴 기둥으로 나를 안아주듯 반기는 것처럼 가족이라는 존재는 집이라는 공간에서 나를 항상 따뜻하게 맞아준다. 비록 나무보다 서툴 지는 몰라도 말이다.

<2019 출판문화실습> 언론홍보학과 4학년 진현영

우리가족의 독서릴레이 한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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