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사회』, 한병철, 문학과지성사(2012).

 사실 나는 여태껏 피로사회와는 거리가 있어왔다. 아니, 우리 집은 그랬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 위해 어머니는 주야를 가리지 않고 일을 하셨고, 철없는 나는 내 돈을 쓰고 싶어 전단지를 돌리러 다니고 그랬다. 그런 나에게 어머니는 공부에 집중하길 바라셨다. 어린 아들에게 힘든 일을 하게 하려니 억장이 무너지는 마음이셨을 것이라 짐작한다. 주간에는 학습지를 하시고 야간에는 공장에 나가시며 철없는 아들 손에 몇 푼 쥐어주며, 친구들하고 놀고 학생 본분의 역할에 충실하라고 하셨다.

 나는 가정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한들, 어머니는 아들에게 최대한 나은 환경에서 살게 해주고 싶으셨을 것이다. 아버지의 부재 역시 느끼지 못하게 하시려고. 그래서 더욱 더 일에 매진하셨고 그 속에서 최대의 성과를 이루기 위해 당신을 희생하고 학대하시진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당신을 착취하고 소진 해 나가셨다. 가끔 어머니가 한잔 하시고 들어온 날, 화장실에서 홀로 울고 계셨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나는 그렇게 사회학과로 입학했고 어문계열을 전공한 어머니와 형과는 다른 길을 가게 됐다. 사회를 분석하고 현상을 파악하는 일은 나와 잘 맞았고, 복수전공인 언론홍보학과는 더 잘 맞았다. 사회학과 언론학의 시너지 효과를 노리고 입학했던 나에게 전공은 적성에 잘 맞았고 나름대로 괜찮은 결과를 보였다.

 어머니는 늘 내가 하는 일들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고, 나 또한 나름의 공부한 것들을 보여드리고 싶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말씀드리지 못했다. 오히려 교육자였던 어머니가 도움이 될 만한 많은 책들을 추천해주시곤 했다. 그런 중에 출판문화실습 수업의 일환이지만 책을 추천해드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내가 배우는 전공과 가깝고,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소개하고 싶어 한병철의 ‘피로사회’를 추천했다. 책을 선택하고 많은 고민을 했다. 이제까지 힘들게 살아왔을 어머니의 인생에서 피로사회라는 책이 ‘이제는 조금 쉬어가도 괜찮다’라는 메시지를 던져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이제까지 고생 많으셨고, 그런 사회를 수 없이 겪어 온 어머니께 감사하다’는 내 생각이 전달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첫 주자는 당연히 어머니였다. 대구에 계신 어머니께 택배로 책을 보내드렸다. 처음 아들이 책을 추천하고 보내드리겠다고 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을까. 늘 아들이 읽었으면 하는 괜찮은 책들을 추천해주시다가 반대로 아들이 책을 추천하고, 그 것도 아들이 공부하는 것과 관련된 것을 보내드렸으니 나름 좋아하셨으리라 생각한다. 책을 추천하는 내게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직접 책을 사서 보내드리는 과정에서 많은 생각을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손을 떠난 택배는 대구에 계신 어머니께 도착 했다. 평소 책을 즐겨 읽으시는 어머니는 2주 내로 독서를 끝내고 형이 있는 창원으로 책을 보내셨다. 어머니는 이번 릴레이에 대해

 가족의 해체를 당연시 하는 요즘의 삭막한 세태 속에 문자가 가지는 막대한 힘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번 독서릴레이는 좋다는 느낌을 벗어나 습관처럼 되어야 할 멋진 릴레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느 순간부터 세대차이라는 풀려버린 실타래를 독서릴레이를 통해 실마리를 찾아 같이 읽고 생각을 공유할 수 있어 조금은 흥분되기까지 하는 시간들이었다. 아들이 골라 건네 준 귀한 책 한장 한장 아깝게 넘겨보며 지식은 시간이 지나면서 머릿속에서 사라져가지만 축적되어가는 사유의 시간은 머리가 아닌 몸에 새겨진다는 구절이 생각났다.

 이번 독서릴레이를 통해 아이들과 사유를 공유하는 행복한 시간을 가져서 너무 감사했다.  이것을 시작으로 계속적인 릴레이가 되도록 하면 좋겠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다음 주자인 형에게 릴레이가 이어졌다. 독어독문을 전공하는 형에게 이 책이 그리 낯설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평소 장남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었다고 짐작하는 바, 책을 읽고 조금은 편안해졌으면 했다. 그런 동생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책을 전해주려 연락했을 때 형의 첫 마디는 “귀찮다”였다. 그래도 형은 소감문까지 써주며 최선을 다해주었다. 소감은 다음과 같다.

 처음 동생이 협조를 부탁했을 때 마냥 귀찮은 일이라 생각했다. 바쁜 와중에 책을 익고 한 줄 평까지 써 달라니. 물론 마음으로는 ‘평소에 책을 좀 읽자’ 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하고는 있었지만 바쁘다는 핑계를 대면서 미루기를 반복하고 실제로 실천을 하진 못했다. 그래도 이 ‘가족독서릴레이’에 대한 내용을 듣고 나서는 같은 책을 가족이 읽고 각자 어떤 평을 내 놓을까 궁금하기도 했고, 어찌 되었든 책 한 권 읽는다 생각하고 참여하게 되었다.

 일단 나름대로 도서 선정을 잘 해 주어서 책을 읽는데(물론 책의 내용은 여러 번 곱씹어 봐야 했지만) 큰 거부감은 없었다. 비록 타의로 인해 읽게 된 책이긴 하지만 책의 내용도 괜찮아서 독서 릴레이가 끝나고 나서도 책을 좀 더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기도 했다. 다만 조금의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면 ‘독서 후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하는 순서가 있으면 좋았겠다’ 라는 생각을 하긴 했다. 물론 지금 우리 가족의 경우는 모두 다른 지역에 있어서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점은 있지만 그렇다고 온라인 메신저로 의견을 상호 교환하기에는 무리인 감이 없잖아 있으니. 내가 아마 재학 중 이었다면, ‘같은 학과 또는 학교 학생들과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정기적으로 독서 토론을 할 수 있었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 독서 릴레이 중 한 줄 소감.

  평소 우리 가족은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다. 자주 연락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그리고 필요한 게 있으면 보내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하지만 책은 처음이었다. 이렇게 책을 통해 소통하는 시간을 가져본 적 없었기에 새롭고 신기했다. 이런 감동적인 경험을 하게 해준 수업에 감사한다. 또 잘 협조해 준 고마운 마음을 담아 가족에게 귤 한 박스를 보냈다.

 제주에서 혼자 지내고 있는 아들, 동생에 대해 조금은 안심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책을 통해 내가 살고 있는 사회를 알려주고, 어머니와 형이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해 조금 알 수 있었다. 나는 이번 독서릴레이를 통해 당신들의 사회에서 스스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나아가 힘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당신들 스스로에게 물어보길 바랐다. 그런 나의 책을 통한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당신의 사회를 묻습니다”

<2019 출판문화실습 사회학과 4학년 김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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