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사랑’에 대해 생각한다.

 사랑. 빨간색, 정열적, 활활 타오르는 불.

 아, 진부한 가사의 사랑 노래도 빼놓을 수 없다. 이미 흔해질 대로 흔해진 ‘사랑’이란 단어는 나에게 종종 가벼운 존재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20대 초반, ‘낭만적 사랑’의 바다를 항해하며 끊임없이 행복해하고 아파하는 사이, 어느새 나에게 ‘사랑’의 이미지는 활활 타오르는 불이 되어버렸다. 이 불은 금세 타올라, 집채만큼 커졌다가도 금세 식어 회색의 재만 남기도 한다.

나의 두 사람, 김달님, 어떤 책

#2 나의 두 사람, 사랑에 대한 재발견.

 눈 내리던 1월 어느날, 나는 중앙로에 위치한 작은 책방에서 책 한 권을 골랐다. 수많은 책들 사이로 존재감을 뽐내던 ‘나의 두 사람’. 내가 이 책을 어떻게 집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책을 집어 들고 10분이 넘게 찬찬히 훑어보느라, 친구의 물음에 건성으로 대답한 것이 기억 날 뿐이다. 이 책을 계산할 때, 책방 주인이 그 주말에 이 책 저자의 북 콘서트가 제주에서 열린다는 것을 알려줬다. 그 책을 가슴에 품고 책방을 나와 구불진 골목을 걸을 때도 몰랐다. 이 책이 나에게 어떤 충격을 가져다 줄 지를.

 그 주의 주말이 되었다. 바람이 몹시 차가운 날이었다. 버스를 타고 남원에 위치한 한 공간으로 갔다. 다양한 사람들이 책의 저자와 만나기 위해 공간에 모였다. 모두 옹기종기 모여 저자가 직접 읽어주는 책 내용을 듣기도 하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시간을 보냈다.

 이 책의 저자, 김달님작가는 부모 대신 조부모의 돌봄 아래, 자라났다.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않은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조부모는 정성으로 그를 키워냈다. 그가 건강한 성인으로 자라는 동안의 추억들과 조부모에 대한 에피소드들을 ‘나의 두 사람’이라는 책으로 엮어냈다.

 나는 중간중간 몰래 눈물을 훔쳤다. 책 내용에 대해 여러 감정이 교차하고, 그 감정을 들킨 것 같아 약간의 부끄러움을 느끼는 그 틈바구니에서 나의 ‘두 사람’의 얼굴이 두둥실 떠올랐다. 순희와 창익. 그들의 얼굴이 점점 선명해졌고, 저 멀리 있는 사람처럼 순간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가슴이 뛰었다. 나의 두 사람이 몹시 보고 싶어졌다.

 

#3 사랑을 잠시 잊고 살아간 시간

 나는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순희와 창익으로부터 물리적 독립을 했다. 제주 시내로의 ‘유학’을 떠나간 것이다. 17살의 어린 나이에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려 하다 보니, 제 나이와 맞지 않게 어리숙한 어른이 되어버렸다. 나를 책임질 사람은 ‘나’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것 같다. 순희와 창익이 나의 부모이자 보호자이지만, 나는 금세 그 사실을 잊어버린 듯 행동했다. 학원을 등록할 때도, 대학 입시 원서를 쓸 때도, 아르바이트하거나, 여행을 갈 때도 나는 ‘선 결정 후 통보’의 방식을 사용했다. 하지만 순희와 창익은 묵묵히 나를 지지해주고 넓은 세상에서 내가 두 발로 설 수 있게 용기를 주었다.

 지금도 방학이 되면, 미지의 세계로 훌쩍 떠나버리는 못난 딸을 순희와 창익은 가만히 바라본다. 그저묵묵히 기다리는 것, 안부를 묻는 것, 무탈하게 여행이 끝날 때까지 기도하는 것은 ‘자유’에 갈망하는 딸을 대하는 순희와 창익, 그 두 사람의 방식이었다.

 

#4 ‘나의 두 사람’ 순희와 창익에게 책 ‘나의 두 사람’을 건넸다.

 가족 독서 릴레이를 이유로 순희와 창익에게 이 책을 전했다. 살갑게 이야기하진 못했지만, 그들의 반응을 기대했다. 순희는 이 책을 절반 정도 읽다가 덮었다고 했다. 마음이 아프고, 힘들다고 했다. 평소 모든 드라마를 섭렵하는 순희라도, 논픽션에는 약했다. 순희는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지만, 공감 능력이 뛰어나 감정이 전이되기 쉬웠다. 감정 이입 대상이 아프면 그 고통을 똑같이 느끼는 순희였다. 순희에게는 이 책이 왜 힘들었을까. 순희가 떠올리는 두 사람은 누굴까. 순희는 작년에 별이 된 외할아버지를 떠올렸을까? 그리고 별이 된 외할아버지의 숨결이 남아있는 집에서 홀로 외로운 밤을 보내고 있을 외할머니를 떠올렸을까?

 창익에게는 장난스럽게 따져 물었다. “아빠, 내가 말한 그 책 안 읽었지?” 결과는 당연했기에 나의 제안을 거절한 창익이 밉지 않았다. 창익은 책을 읽지 않았다. 제주의 겨울은 창익에게 그 어느 때보다 바쁜 시기이다. 창익이 일 년 동안 흘린 땀과 정성을 보상받을 수 있는 ‘감귤 수확 철’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은 창익의 반응을 상상해 보자면, 마음속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뒤로 숨긴 채, “이거이.. 좀 슬픈데, 재미가 없더라.” 라고 장난 섞인 목소리로 얘기했으리라.

 

#5 나는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좀 전에 사랑은 활활 타오르는 불이라고 했던가? 그 말은 일부 취소한다.

 나는 그동안 잊고 있던, 당연하지만 꼭 당연하지만은 않은,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려 한다. 순희와 창익이 나에게 줬던 사랑은 활활 타오르지 않는다. 그저 내가 따듯함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묵묵히 그리고 일정한 온도로 타올랐다.

 어릴 적 배탈이 잦은 나의 배를 밤새도록 문지르던 창익, 힘들어서 자책하고 작아질 때마다 ‘주화는 강한 아이’라며 용기를 주는 순희. 다섯 남매를 먹이고 입히느라 늘 바빴던 나의 두 사람. 종종 나에게 다른 사람이, 혹은 다른 일들이 그들보다 우선순위가 될 때도 순희와 창익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순희와 창익이 내게 준 사랑의 색은 너무 뜨겁지도 미지근하지도 않은, 짙은 초록색이라 말하고 싶다. 너무 뜨거워 데일 일도, 쉽게 꺼져버릴 일도 없는 짙은 초록색의 사랑 말이다.

#6 나무가 잘 자라기 위해서는 물과 햇볕, 그리고 정성이 필요하다.

 하나의 씨앗이 흙을 뚫고 나와, 건강한 나무로 성장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바로 물과 햇볕 그리고 정성이다. 천재지변이나 해충과 같이 성장을 방해하는 요인들을 관리하는 것. 생채기 난 줄기가 다시 잘 자랄 수 있도록 보듬어 주는 것. 그것을 정성이라 할 수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랑이다.

 ‘나의 두 사람’의 사랑으로 나는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향해 줄기를 뻗어나갔다. 어떤 날은 거센 바람에 흔들릴 수도, 어떤 날은 예쁜 꽃을 피우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으로 보듬어진 나무는 세상의 고됨을 이겨낼 면역력이 있다. 그 면역력으로 다시 꽃을 피우고 잎을 내며 넓은 그늘을 드리울 것이다.

 순희와 창익의 짙고 따듯한 초록색의 사랑이 한 그루의 나무를 크게 만들었다. 건강한 나무의 시원한 그늘과 그 안에서 노니는 새들의 노래를 두 사람에게 다시 돌려주고 싶다.

<2019 출판문화실습 / 언론홍보학과 4학년 진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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