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시절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생각보다 많았다. 새벽에 군부대로 들어오는 차를 들여보내는 업무를 주로 하였는데, “자격증 공부를 해라, 영어공부를 해라“라는 선임에 조언에 따라 무엇이라도 해보자 하는 심정으로 처음 시작한 것이 독서였다. 처음 시작은 독서량에 따라 외출이 주어진다는 유혹이었다. 나는 주로 맘에 드는 구절이 나오면 독서기록장에 적고, 페이지를 기록하여 그 책을 볼때마다 나의 노트를 다시 펴 그 구절을 읽어 보곤 했다. 그렇게 1년8개월이 지나고 나니 나의 독서기록장에는 198권이라는 책이 적혀 있었다.

전공수업때 ‘가족 독서 릴레이’ 라는 과제를 얻고나서 처음 딱 생각난 책은 그 리스트에 적혀있는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라는 책이다. 이 책을 선정하게 된 계기는 군대에서 근무중일때 돌아가신 할머니 때문에 슬퍼하는 나를 보고 맞선임이 선물해준 책이기도 하고, 책의 주인공인 할머니가 나의 할머니와 겹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할머니라는 존재에 대해 우리 가족과 한번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는데 이 기회를 통해 서로에 이야기를 하며 그분을 기억하는 일도 뜻 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찍 할아버지가 돌아가셔 할머니 밑에서 자란 우리 아버지, 6살 때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 우리 가족 모두에게 어머니 같은 존재였던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나에게 할머니란 존재는 기억해내고 싶은 과거라고 표현하고 싶다. 늘 주시던 땅콩사탕과 붕어빵 아이스크림, 저녁마다 끓여주시던 김치찌개 와 같은 추억이 희미하게 기억이 나지만 생생하지는 않다. 희미하게 기억나는 얼굴과 잊혀져 가는 목소리. 이별이 아직 익숙치 않은 나이이고 받아들이기 힘든 순간이었던 그 순간의 내가 기억이 난다.

저자 : 프레드릭 베크만 < 다산책방>

첫번째 주자인 나는 군대에서 읽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할머니라는 소재때문에 선택한 책이기도 하지만 ,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돌아다니는 전개와 공감되는 구절이 많아 이 책을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번째 주자는 엄마였다. 엄마를 선택한 이유는 어머니께서 “종진아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어. 너의 할머니가 나에겐 두번째 엄마야” 라고 해주셨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책을 처음 받은 엄마는 기대에 찬 눈빛이었다. 평소에 소설을 잘 읽지 않아 생기는 기대감인지, 할머니라는 소재로 글을 쓴 이 책에 대한 설렘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엄마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틈틈이 책을 읽었지만 소설이 자신이 선호하는 부류가 아니 라서 끝까지 다 읽지는 못했다고 말씀하셨다.

어머니께서는 책을 건네 주시며 할머니 이야기를 해주었다. 자신이 21살 때 결혼한 이야기와 할머니께서 자주 하시던 욕들, 장례식장이후에 할머니에 대해 이렇게 둘이 할머니에 대해 이야기 한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필요했던 우리 엄마와 아들만 세명이던 집안에서 애교를 부려주는 딸이 필요했던 할머니. 이 둘의 만남을 이제는 보지 못하는 상황이 정말 슬프게 다가왔다. 장례식장에서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 보내야 할 때 보내줘야 할머니도 웃으면서 떠날수 있다. 시간이 흐르고 좋았던 기억만 기억하며 할머니를 떠올리면 된다 “ 그 말의 의미를 되새기며 할머니를 떠올려본다.

세번째 주자는 아버지였다. 25년동안 아버지가 책을 읽는 모습을 한번도 본 적이 없어서 걱정이 앞섰다. 역시는 역시.. 아버지는 반도 안읽고 도저히 안되겠다며 포기하셨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에 대한 질문으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사실 언제나 감정을 숨기고 과한 반응 없이 딱 그 사람의 무게로 그 자리에 존재하던 아버지와 이 주제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버지가 먼져 자리를 피하기도 했고 나도 무슨 이유인지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런 시간이 지나고 아버지는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짧은 이야기만 하고 다시 자리를 피하셨다. “종진아 아무리 할일이 많고 바쁘더라도 제사, 벌초 날은 꼭 같이 있어드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동안의 핑계로 잘 하지 못했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돌아가신 후에는 전에 한번이라도 더 찾아 뵐 걸 생각하던 나였는데 막상 시간이 지나니까 그때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 한마디가 얼마나 크게 다가왔던지… 순간 모두에게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우리는 민망함과 어색함 그리움 여러가지 감정을 공유하며 독서 릴레이를 마무리하였다.

그때를 생각해보면 주변 친구나 지인의 장례식은 자주 가봤지만, 나의 직계 가족 장례식은 처음이라 정말 많이 울었던 것 같다. 군대에서 소식을 듣고 휴가를 나와 상황을 자세히 들었고, 할머니의 가방에서 나오는 많은 숫자에 병원과 관련된 서류, 명함, 약봉지를 보며 ‘얼마나 아팠을까 얼머나 외로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며 내 자신을 스스로 미워했었다.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이 없다는 사실도 아직도 후회되는 일이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언젠간 한번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가족과 나누고 싶었다. 그러던 중 이 독서릴레이 라는 기회를 통해 그들과 추억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기회였던 것 같다 어머니 아버지와 할머니에 추억을 공유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소중한 기억을 공유한 다는 사실이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언제나 우리 가족에 든든한 엄마였던 할머니를 기억하며 독서릴레이를 마무리한다.’  

<2019출판문화실습 언론홍보학과 4 강종진>

키워드

#N
저작권자 © 제주대언론홍보학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