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락방에 있는 아빠의 추천도서들

  우리 집 다락방에는 얇게 먼지 쌓인 책들이 있다. 단연 우리 가족 중 독서 왕이라고 할 수 있는 아빠의 책들이다. 오래전부터 아빠는 책을 읽으신 후에 한 번씩 읽어보라며 집으로 가져오시곤 했다. 자기계발서,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 등 장르를 불문한 책들이 많았다. 하지만 아빠 외에 엄마, 오빠, 동생과 나는 독서를 즐겨하는 편이 아니다. 그 때문에 아빠의 추천 도서들은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외면 받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더 일찍 가족 독서릴레이를 만났을 지도 모른다. “한 번씩 읽어봐!”라고 했던 아빠의 말을 들었더라면 그게 릴레이가 되고 있었을 텐데 아무도 책을 읽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빠께 미안한 마음을 간직한 채 가족 단체 채팅방에 메시지를 남겼다. “이번에 한번 가족 독서릴레이를 해볼까 하는데 참여하실분!” 가장 먼저 답장을 남기신 아빠는 “좋은 취지네! 학교에서 하는 거야?” 라고 하셨다. 또 “이제 지연이 도와줘야하니까 다들 꼭 읽어야겠네.” 라고 하시며 뼈가 박힌 듯한 무서운 말도 남기셨다.

  책 선정을 위해 다락방에 가족 독서릴레이를 할 만한 책이 있나 찾아봤는데 내가 원하는 내용의 책은 없었다. 내년이면 고입을 앞두고 있는 동생, 취업을 앞두고 있는 오빠와 나, 또 다른 인생을 위해 준비를 하고 계시는 엄마, 아빠를 위해 책 선정을 하는 것이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요새 다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할까?’를 생각하며 도서관에서 오랜 기간 책을 살펴봤다.

  다양한 책들을 살펴보니 각자의 모험을 준비하고 있는 우리가족에게 알맞은 책을 찾을 수 있었다. 자신의 꿈을 향해 어떠한 장애물이 있어도 나아가는 이야기가 들어있는 “연금술사”로 선정했다. 무엇보다 나이가 어린 동생도 읽기 쉽고 아빠, 엄마, 오빠도 읽을 만한 남녀노소가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연금술사는 2가지 버전이 있다. 2001년에 나온 글로만 이루어져 있는 버전과 2014년에 나온 일러스트 버전이 있다. 어떤 것을 선택할까 고민했는데 그림이 같이 있는 편이 동생이 책을 이해하기 쉬울 것 같아서 일러스트 버전으로 선택했다.

△연금술사ㅣ파울로 코엘료 글ㅣ뫼비우스 그림ㅣ2014

  내가 먼저 책을 읽고 거실 탁자에 올려 논 저녁, 오빠가 책을 보자마자 “내가 먼저 스타트 끊을게!”라고 했다. 베트남 여행을 1주일 앞두고 있던 오빠는 여행이 길어질 것 같다며 떠나기 전에 책을 읽고 싶다고 했다. 며칠 후 한 손에 책을 들고 온 오빠는 “이 책 과제 끝나면 나주라.” 라는 약간 당황스러운 말을 했다. ‘책이 그렇게 감명 깊었나.’라는 생각에 책은 괜찮았냐고 물어봤다. “책 내용도 괜찮고, 그것보다 뒤에 적힌 이거 때문에.”라며 가족들의 한 줄 평 때문에 책을 가지고 싶다고 했다. 책을 읽고 각자 쓰는 한 줄 평이 오빠에게는 꽤나 인상 깊었나보다.

  베트남으로 오빠가 여행을 떠나던 날 나에게 장문의 메시지가 왔다. 책을 완독하는 기쁨을 알게 해줘서 고맙고 덕분에 여행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좋은 책 읽고 있다는 오빠의 메시지였다. “직접 말로 하는 사이는 아니잖아.”라며 부끄럽지만 메시지 남긴다는 오빠가 약간은 낯설고 어색했지만 내가 대단한 일을 한 느낌이라 기분이 이상했다. 그리고 메시지의 마지막에는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책 다음 타자는 너야” 라며 2차 가족독서릴레이를 예고했다.

  다음 타자는 내가 부탁하기 전에 이미 정해져있었다. 우리 가족이 원래 이렇게 독서에 열정이 가득했었나? 독서릴레이에 다들 참여해주려고 해서 너무 고마웠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열정적이라 당황스러웠다.

  세 번째 타자로 나선 사람은 엄마였다. 책은 불과 3일 만에 돌아왔다. 다 읽는데 일주일을 보낸 나에 비해 정말 짧은 시간이었다. ‘혹시 엄마는 릴레이가 아니라 레이스로 생각한 것일까.’ 라고 생각하며 책을 받았다. 아침에 출근해 늦은 시간에 퇴근하시는 엄마의 일상을 생각해보면 도저히 책 한 권을 읽을 수 없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데군데 접혀있는 페이지와 형광펜 자국이 바쁜 시간을 쪼개가며 책을 읽으신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책 좋더라~ 엄청 술술 읽히던데? 간만에 읽으니까 재밌더라.” 라고 말씀하시는 엄마에게서 뿌듯함이 느껴졌다.

  가장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아빠는 일 때문에 제주도와 서울을 예정 없이 오가셔서 시간을 맞추기 힘들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마지막 타자는 동생이 되었다. 정말 완강했다. “나 안읽젠 귀찮아.” 이해한다. 나도 15살 때 책보다 게임이 더 좋았으니까. 책 읽는 것도 공부라고 생각했던 나를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반응이었다. 강요하긴 싫고 한번쯤 읽으면 좋은 책이라 어떻게 하면 읽게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 엄마께서도 “누나 과제하는데 책 한번 못 읽겠냐.”라고 하셨지만 그럼에도 동생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며칠 동안 다음 주자에게 넘어가지 못한 채 책상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책이 집에 와보니 사라져 있었다. 책이 어디 갔는지 아무리 책상 주변을 살펴보아도 찾을 수 없었다. 그 날 저녁을 먹으면서 책 혹시 누가 가져갔냐고 물었더니, 동생이 “그거 나한테인”이라고 말했다. “갑자기 왜? 안읽는다며.” 라고 말했더니 “국어 수행평가로 독후감 쓰고 오랜.”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 말을 듣는 순간 속으로 ‘국어 선생님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돌아온 책 속 동생의 한 줄 평에는 “재밌다.”라고 적혀있었다. 유난히 짧은 한 줄 평일지라도 독서가 곧 공부라고 생각하는 동생에게 재미라도 준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 우리 가족의 한 줄 평


  독서릴레이가 끝나고 오빠도 여행에서 돌아왔다. 여행에서 돌아온 오빠는 다들 책 읽었냐며 한동안 책에 대해 물어보고 인상 깊었던 구절에 대해 말하곤 했다. 그런 분위기를 이끌어준 오빠 덕분에 나는 내가 듣지 못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인상 깊은 구절은 밑줄을 두 번 그었다는 이야기, 책을 다 읽고 마음에 드는 부분만 또 읽었다는 이야기, 한 줄 평 이야기 등 책을 전달받았을 때는 듣지 못했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을 수 있었다.

  서울에 살고 계시는 아빠 이야기를 하면서 다음에는 꼭 아빠가 추천해주신 책으로 돌려 읽자고 다짐했다. 잠들어있던 독서 DNA를 깨운 우리 가족은 독서를 점점 더 가까이 하고 있다. 오빠는 나에게 예고했던 대로 2차 독서릴레이를 진행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엄마는 이미 독서릴레이가 끝난 후에 다른 책을 읽기 시작하셨다고 한다. 각자 독서에 한 걸음 가까워지면서 우리 가족의 독서릴레이는 끝을 맺었다.

< 2017 출판문화론 / 언론홍보학과 4학년 이지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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