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그리던 독립을 하게 된 것은 올 봄이였다. 부모님과의 신경전으로 매일 방문을 부서지도록 닫지않아도 되고, 몇시에 일어나건, 몇시에 집에 들어가건 이십대 후반을 달리는 딸들에게 과한 관심과 애정을 보이는 부모님으로부터 적당한 거리를 두게 된 것이다.

역마살이라도 끼인 마냥 일년에 두어달은 여행을 다녀야 직성이 풀리는 언니는 워킹 홀리데이를 비롯해 세계각국을 쏘다니며 집을 비웠고, 하고 싶은게 너무 많아 이것저것 들쑤시고 다니는 나는 학창시절부터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서울로 일을 하러 가겠다며 집을 비우는 시간이 잦았다. 유일하게 집에 붙어있던 막내아들은 작년 여름, 나라의 부름을 받고 강원도로 가게 된 탓에 내가 성인이 되고 난 뒤로는 온 가족이 집에 모여 저녁을 먹어 본 기억이 까마득 할 정도였다.

 

떨어져 살면 애틋해지는게 가족이라 누가 그랬던가, 각자의 삶에 치여 같은 집에 사는 나와 언니조차도 얼굴보기가 힘들었고 맥주나 인스턴트 음식만 가득한 냉장고를 볼때, 몇일만 미뤄도 쌓이는 빨래나 청소, 쓰레기 버리기 등 해도해도 끝없는 집안일 덕분에 나같은 효녀도 없는 줄 알았던 자아도취에서 깰 수 있었다.

미용사인 엄마는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서서 일을 하면서도 나중에 시집가면 하기싫어도 해야된다며 우리에게 집안일을 거의 시키지않으셨다. 내가 늦게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오는 밤이면 제철과일을 깍아주며 그것보라며 적게 벌어 적게쓰고 부모님이 주는 용돈으로 만족하고 살면 될텐데 뭐하러 이렇게 고생하냐고 잔소리를 덧붙이곤 하셨다.

 

차로 1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서 자취를 시작했으니 자주 만날 수 있을거라는 생각도 잠시, 독립한 이후로는 언니와 나의 월급날을 핑계로하는 외식이 가족끼리 밥을 먹을 수 있는 날이였고 그때마다 이산가족 상봉을 현장을 방불케했다. 

내 월급날, 장어를 구우며 온가족이 과제 이야기를 꺼냈더니 유일하게 반기던건 엄마였다.

엄마는 책을 좋아하신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에 쫒기다보니 책을 달고 살지는 못하지만 나와 언니가 읽겠다고 책꽂이에 예쁘게 꽂아두기만한 책들을 우리보다 더 열심히 꺼내가며 엄마의 배게 맡에는 다양한 책들이 스쳐지나갔다. 엄마는 용돈을 달라하면 여느 부모님처럼 잔소리를 늘어놓다가도 책을 산다고하면 선뜻 카드를 내어주셨다. 그런 엄마에게 떨어져사는 자식들과 책을 읽는 과제가 무척 반가웠던 모양이다.

 

온 가족이 읽을만한 책이 뭐가 있을까를 한참 고민하다 ‘버드맨’이라는 영화에서 우연히 본 구절이 마음에 들어 중고책으로 구입했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을 책장에서 꺼내들었다.

이 책은 레이먼드 카버가 쓴 단편 17편의 모음집인데 모든 단편에는 지극히 일상적인 상황과 인물들로 구성되었고 평범한 사람들이 말하는 애정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만든다.

그래서 그 평범함 속에서 말하는 사랑에 대한 관점들이 불편한듯 내 이야기 같았다.

 

우리 ‘가족애’는 언제나 애정과 애증 사이를 위태롭게 오갔다. 부모님의 넘치는 관심과 사랑이 다 커버린 자녀들에게는 귀찮음으로 느껴졌고 자꾸만 충돌했다. 자취를 하고 난 후에도 부모님의 전화가 귀찮아서 거절 버튼을 몇번을 눌렀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적막한 집에 멍하니 앉아있을때면 식탁에 둘러앉아서 아빠가 잡아 온 한치회를 실컷 먹거나 엄마가 구워주는 대하에 맥주잔을 부딪히던 날들이 생각나서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다들 나처럼 느끼고 있을까? 내 기분에 따라 때로는 부족하고 때로는 과하게 느껴지는 사랑을.

사실 오랜시간 나의 눈에 엄마와 아빠는 사랑하는 사이라기보다 의무적인 사이처럼 느껴질 정도로 무미건조하게 보였다. 필요할때만 가정적인 아빠와 자신의 삶도 없이 필요이상으로 가정만 보는 엄마는 각자의 방식으로 자식들을 사랑했다. 둘째딸로 자라면서 나는 애정결핍이 심했다. 아빠는 큰딸만 찾는것 같고 엄마는 막내아들만 아끼는것 같아서 사춘기 내내 걸핏하면 언니와 싸웠고 심심하면 동생을 쥐잡듯이 잡아가며 집안의 폭군을 자처하던 나였다.

 

 

 

“정신나간 소리로 들리겠죠. 하지만 그건 사랑이었어요. 사람들은 저마다 달라요. 물론 그는 때로 미친사람처럼 굴었죠. 그래요. 하지만 그는 나를 사랑했어요. 아마 자기 방식대로였겠지만 사랑은 있었어요, 거기에 사랑이 없었다는 말은 하지 말아요.”

 

 책을 읽다보니 ‘가족애’야말로 많은 사람들이 이상적인 모습을 꿈꾸지만 맘처럼 안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인들의 사랑처럼 둘이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해야 하는 교감이고 살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싫어지면 이별통보로 끝낼 수 있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은 아닐까. 

 

 

몇일전 책전달을 핑계로 본가에 갔다. 인스턴트보다 집밥을 해먹으라는 둥 저금은 얼마나 하고 있냐는 둥 잔소리를 듣다보니 한숨이 나왔지만 오랜만에 육성으로 듣는 엄마의 잔소리에 왜인지 마음이 편했다. 아빠는 어쩐일로 왔냐 하면서도 직접 잡아온 생선을 손질하셨다. 이게 우리 엄마 아빠 방식의 사랑이겠지?

엄마와 아빠는 게으른 딸을 둔 덕분에 다른 부모님들보다 늦게 과제에 참여하게 됐다.

지인들보다 가족들에게 더 무뚝뚝한 아빠에게, 사랑이라는 말을 낯간지러워 할 것만 같은 엄마에게, 한 집에 살아도 sns로 안부를 확인하는 나의 하우스 메이트 언니에게, 1년이 넘는 시간동안 군대에 있으면서도 내게는 연락 한통을 안하는 동생에게 이 책이 어떤 의미로 다가갈지 궁금해졌다. 각자의 사랑을 돌아보게 될까? 앞으로의 사랑을 고민하게 될까? 

 

 돌아오는 월급날 대화주제는 정해졌다. 사랑을 말할때 우리 가족이 이야기하는 것들.  (2017 출판문화론 최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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