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살면서 한 번쯤 들어보는 질문이다. 특히나 어릴 적 친척들이 모이는 자리에 가면 꼭 이런 짓궂은 질문이 나에게 던져졌다. 엄마, 아빠 둘 다 내가 어떤 대답을 할지 듣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질문을 듣자마자 내 마음속에 답은 이미 정해져있었다. 엄마.

  나는 아빠와 대화가 별로 없는 편이다. 무뚝뚝한 남자의 표본인 아빠는 엄마는 물론 딸들에게도 살갑지 못했다. 아빠는 술을 좋아하시는데 술에 잔뜩 취하실 때면 다른 사람이 되곤 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어릴 적에 아빠의 술주정 때문에 우리 가족은 고통받았고 나는 많이 울었다. 나는 아빠를 원망했고 그런 아빠와 딸의 관계는 결코 평범할 수 없었다. 아빠는 늦둥이 동생이 태어나고 주름살도 늘면서 조금씩 변하셨지만 성인이 된 지금도 내 가슴 한구석엔 어릴 적 아빠에 대한 기억이 굳은살처럼 딱딱하게 박혀버려 떼어낼 수 없었다.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긴 것이다. 가끔 아빠에 대한 악몽이라면 악몽을 꾸고 잠에서 깨 강제로 되살려진 옛 기억을 달래며 겨우 잠이 들기도 했다.

  지난주 금요일 저녁, 잠자리에 들려 하는 데 때마침 아빠가 집으로 돌아오셨다. 술 한 잔을 가볍게 하신 듯 콧노래를 부르며 기분이 좋아 보이셨다. 곧 소리가 내 방으로 점점 가까워졌고 아빠는 내 방으로 들어오더니 대화 좀 할 수 있겠냐고 물으셨다. 아빠는 술을 드시면 가끔 얘기 좀 하자며 이런저런 말들을 했지만 그것은 술 주정에 가까웠고 크게 의미 있는 대화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아빠는 이미 할 말들을 생각해놓고 뭔가 다짐한듯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았다. 아빠가 무슨 말을 할까 짧은 순간에 머릿속으로 다양한 생각들이 스쳤다. 아빠는 조심스러운 말투로 졸업하고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생각한 것이 있냐며 물으셨다. 순간 내가 아빠를 어려워하는 만큼 아빠도 나를 많이 어려워하고 있는 것이 느껴져 머릿속이 깜깜했다. 아빠와 딸 사이에 오가는 평범한 대화가 우리에겐 나름의 용기와 다짐이 필요한 일이었다. 아빠는 “네가 요즘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 같아서......”라며 말을 이어갔다. 아빠를 이토록 가깝게 마주한 게 얼마만일까. 나는 그날 아빠와 긴 대화를 나눴다. 조심스럽게 내 생각을 말하면 아빠는 들어주었고 나는 아빠가 하는 위로의 말들을 귀담아 들었다.

<아버지, 이채윤 저>

  문득 독서노트를 쓰기 위해 빌린 ‘아버지’라는 제목의 책이 떠올랐다. ‘아버지’라는 무겁고도 애잔한 제목에 나도 모르게 집어 든 책이었다. 아빠와의 대화가 끝나고 나는 그 책을 읽기 시작했다. 무심코 빌린 책, 아빠와의 대화 그리고 공감을 주는 책의 내용까지 이 삼박자가 운명처럼 맞아떨어져 이 책을 가족독서릴레이로 선정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가족독서릴레이를 해야 한다는 핑계로 아빠에게 이 책을 권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고 책 속 주인공의 딸처럼 아빠를 이해하고 있다고 전하고 싶기도 했다.

  이 책은 아버지에 대한 뻔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한 집안의 가장이라는 책임을 짊어지고 자신의 삶은 없이 자식과 아내를 위해 돈을 벌고 희생하고, 밤에는 고독하게 혼자 술잔을 기울이는 그런 아버지는 이 책에 없다. 집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하는 일마다 실패하고 결국 흔적도 없이 아내와 자식을 두고 가출을 감행한 이 책의 아버지의 모습은 다소 이기적이라고 생각될 수 있으나 누군가의 아버지, 누군가의 남편이 아닌 한 인간으로써 존중받으며 살고 싶은 심정 또한 이해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아버지의 모습은 이제까지 내가 얼마나 아빠를 내 멋대로 판단해 왔는지 느끼게 한다. 아빠는 왜 술을 먹고 집에 늦게 들어오는지, 왜 딸한테 다정한 말 한마디를 쉽게 해주지 않는지. 아빠를 미워하기만 했지 들여다보고 이유를 찾으려 하진 않았다. 난 항상 아빠가 아빠로서의 역할을 다 하고 있는지 따지면서 아빠를 판단해 왔던 것이다. 아버지라는 이름에 가려져 진짜 아빠의 모습과 생각은 내 관심 밖이었다. 그러면서 정작 나 자신은 딸로서의 역할을 잘 하고 있는지 따져본 적이 없으며 늘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했다.

' 나는 이제 더 이상 누구의 남편, 누구의 아버지, 누구의 무엇이 아니다. 나는 내가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숨 막히지 않는 자유를 위해 껍질을 깨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고 싶을 뿐이다. 그저 나 자신이 되고 싶을 뿐이다. 이제는 연극을 그만두련다. 나는 연극 무대를 떠나서 나 자신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

  어쩌면 우리 아빠도 이 책의 아버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아빠는 누구의 남편, 누구의 아버지라는 마음의 짐이 너무 무거워서 밤마다 술을 먹으며 덜어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아빠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해하고 싶었다. 아빠도 슬픔과 기쁨을 느낄 수 있는 평범한 인간이라는 걸 이해하면 오해가 조금은 풀릴 수 있을까.

  아빠에게 학교 과제라고 가족독서릴레이 책과 한 줄 서평 종이를 건넸다. 아빠는 덤덤하게 책을 받았고 돌아온 종이에는 ‘아버지들의 애환’이라는 짧고 굵은 한 줄 평이 적혀 있었다. ‘애환’이라는 단어가 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아빠가 애환이라는 단어를 썼다는 것이 이상했다. ‘아버지들의 애환’, 그렇게 아빠는 묵묵히 견뎌 왔나 보나.

  가족독서릴레이를 마치면서 가족이라는 단어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의 남편, 누구의 아버지, 누구의 무엇으로서 역할을 해야만 하는 ‘가족’이라는 어설픈 연극의 막을 그만 내리고 싶다. 아빠, 엄마, 언니 동생, 나 모두 각자의 역할에서 벗어나 한 인간으로 이해되고 존중받았으면 좋겠다. 그 이해의 출발이 아빠이다. 이 출발을 시작으로 나는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2017 출판문화론 / 언론홍보학과 3학년 김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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