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봄. 지금의 신랑과 나는 비밀연애 중이었다. 우연히 업무 상 경기도에서 교육 받을 기회가 생겼는데 우리는 다른 사람들 몰래 그 교육을 같이 신청했다. 비밀연애 중이라 그런지 항상 서로가 그리웠던 우리는 업무 시간에도 서로와 같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얼마나 들떴는지 모른다. 그리고 더 신이 났던 건 교육을 마치고 주말에 같이 여행을 갈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다른 직원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긴장의 연속이었던 교육이 무사히 끝나고, 우리는 서로 다른 일정이 있는 척 다른 사람들을 따돌리는 데 성공했다. 주위 눈치 보느라 맘껏 데이트도 못해봤던 우리는 여행 내내 야구, 연극 등을 즐기며 너무 즐거워했다(물론 다투기도 많이 했다). 그리고 그 중 지금까지도 마음 속 깊이 남은 추억이 하나 있는데 바로 경복궁에서 열렸던 ‘이중섭 전’을 보러갔던 일이다.

  그림에 문외한이었던 나였지만 남자친구에게 교양 있는 여자인 척 보이고 싶어 제안한 ‘전시회 데이트’였다. 그러나 역시 전시회에 가서는 이중섭의 작품을 보며 별 감흥 없이 지나치기 일쑤였다. 그런 내가 2층 공간에 꾸며진 전시에서는 한참이나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중섭이 아내 남덕에게 보낸 편지들 中

   “이게 이중섭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라고?” 내 첫마디는 놀라움이 섞인 격앙된 어조로 튀어나왔다. 그의 편지는 1940년대에 썼다고 하기에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달콤하고 닭살스러운 표현으로 가득했다. 이런 희대의 로맨티스트가 그 시절에 존재 했다는 것이 무척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가 일본인이었던 아내에게 지어 준 ‘남덕’이라는 이름을 부르며 보낸 수많은 편지들은 그가 아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절절히 가슴속에 와 닿았다. 또한 그가 아이들에게 보낸 편지는 요새 사람들이 말하는 ‘아들바보’가 따로 없을 정도로 깊은 애정이 느껴졌다.

  그런데 내가 그 전시에서 깊은 감동을 느끼고 지금까지 잊지 못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이중섭의 편지들을 눈으로만 읽은 것이 아니라 귀로 들었기 때문이다. 2층 공간에 전시된 수십 개의 편지들을 남자친구는 따뜻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남덕’ 대신 내 이름을 넣어 하나하나 읽어주기 시작했다. “나의 귀중하고 귀여운 나영아”, “나의 소중한 나영아”, “당신의 모든 아름다움을 굳게굳게 포옹하고 몇 번이나 몇 번이나 긴긴 뽀뽀를 보내오...” 비록 남자친구가 직접 쓴 편지는 아니었지만 듣는 내내 왠지 모를 그의 진심이 묻어나는 것 같아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이들이 들어간 내용을 읽어 줄 때는 남자친구가 나의 가족이 되어 함께하는 미래가 그려지며 설레고 행복한 마음마저 들었고 오래도록 그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가득했다. 그로부터 일 년 후 우리는 정말 백년해로를 약속하며 예쁜 가정을 꾸리게 되었다.

  지난 가을 오랜만에 학교에 복학한 내가 신랑에게 ’가족독서릴레이‘라는 과제를 설명해 줄 때 묘한 기분이 들었다. ‘가족’이라는 표현이 그랬다. 나는 입으로는 과제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있었지만 머릿속으로는 ‘가족’이라는 단어만 자꾸자꾸 맴돌았다. ‘이제 정말 우리가 가족이구나. 오빠와 내가, 그리고 우리 아기가 정말 가족이 되었구나. 새로운 가족이구나.’ 신랑은 내 설명이 끝나자 대뜸 “으아, 책? 나 책 잘 못 읽는데...꼭 읽어야 되는 거야?”라고 말했다. 나는 못 읽는 게 아니라 안 읽는 거라며 면박을 한번 주고는 신랑도 잘 읽을 수 있는 책을 고심하기 시작했다. 여러 책들이 후보에 올랐다. 「가시고기」,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등 어렵지 않으면서 가족의 사랑을 느낄만한 책들을 떠올렸다. 그런데 그 책들을 권해줄 때마다 반응은 시큰둥했고, “나중에 읽을게”라는 말이 항상 덤으로 따라왔다.

  그러다 우연히 들른 학교 도서관에서 「이중섭 편지와 그림들」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나는 이중섭 전시회에 있었던 편지들이 책으로 엮어져 있다는 사실도 몰랐는데 이 책을 발견하자 너무나 반가웠다. 바로 ‘이 책이다!’ 싶어서 순식간에 다 읽고는 신랑에게 넘겼다. 책을 건네며 나는 두 사람 몫(아기까지)의 독서를 했으니 오빠는 더 성의 있게 읽어야 한다고 협박 아닌 협박도 잊지 않았다. 처음에는 심드렁하게 그림만 몇 장보며 넘기더니 “어? 이거 우리 그때 서울 가서 본거잖아.” 라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기억은 하고 있어 다행이다.’ 싶었다. 사실 기억 못했으면 섭섭했을 것이다. 내가 부러 그 책을 선정한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해주었다. 전시회에서 오빠가 직접 내게 읽어 준 기억 때문에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 모른다고 거짓말 같은(?) 진실을 말해주며 어르고 달래 책을 다 읽게 하는데 성공했다.

  “그래서 느낀 점은? 한 줄 서평 말씀해 보시겠어요?” 라고 내가 물었을 때 신랑은 당연히 내가 만족할만한 답변을 주지 않았다. 뻔하디 뻔한 그런 서평이었다. "아내에 대한 애정이 느껴집니다." 그것뿐이냐는 내 볼멘소리에 신랑은 서평하기 너무 어렵다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내에게 나도 잘해야겠습니다." 나는 꺄르르 웃으며 뒷부분에 대한 변심은 용서치 않겠노라며 한줄 서평은 그쯤 받아두기로 했다.

  우여곡절 끝에 릴레이를 마치고나자 우리의 연애시절 추억들이 한편의 영화처럼 떠오르며 왠지 코끝이 찡해졌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그림에 문외한이지만 이중섭의 그림을 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지게 되었다. 그의 작품들이 주제를 떠나 전체적으로 따뜻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그림에 매진했던 그의 마음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새로운 우리 '가족'

  지금 나는 ‘가족’이란 이름의 출발선 상에 있다. 앞으로 우리 가족에게는 수많은 일들이 펼쳐질 것이다. 그때마다 우리의 그 애틋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소중했던 시간을 추억하며 견뎌보고자 한다. ‘아고리’(이중섭)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2017 출판문화론 / 언론홍보학과 4학년 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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