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험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잘 모르는것, 잘 할 자신없는것에 대해 두려움이 많은 탓이였다. 

학창시절 체육시간에는 제일 먼저 기권을 선언하고 게임을 구경했고 수능때 수리영역은 아예 응시조차 하지 않았다. 운전은 택시기사님이 하는 것, 음식은 식당에서 사먹는것, 한라산은 창문에서 바라볼때 가장 예쁜거라 믿었다. 애교가 없다고 말하는 이성에게는 눈물을 머금고 이별을 고했고, 길치인 내가 발목까지 눈이 내린 시애틀에서 길을 잃었을때는 무작정 스타벅스 안으로 들어가 엉엉울며 주문을 한 탓에 직원의 위로를 받은적도 있다. 

 

이렇게 겁이 많은 나의 관심사는 아이러니하게도 모험과 도전을 필요로 하는 것들이였다.

어렸을때부터 꿈꾸던 월간지 기자를 하겠노라며 대학에 진학했고 소위 말하는 큰물로 나가고 싶은 욕심에 ‘맨땅에 헤딩’을 불사했다. 눈물없이 들을 수 없는 구구절절한 과정을 생략하고 결론을 말하자면 나의 서울 드림은 녹록치 못했다. 잡지사에서의 막내생활은 예상보다 몇배는 더 고된 생활이였고 나는 육개월도 채못버티고 제주로, 학교로 도망치듯 돌아오고 말았다. 

제주를 떠나기 전,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업도 똑바로 안듣던 아이가 어디가서 뭘 하겠냐고 못미더워하거나 비아냥거렸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고향에서 위로는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끈기나 젊음 따위를 논하거나 너 그럴 줄 알았다며 손가락질을 하는 것만 같았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감정들은 나의 자격지심이 만들어낸 타인의 시선이였다.

 

 당시에는 24년짜리 내 인생이 내팽게쳐진 사금파리 같았다. 내가 겪은 실패는 좌절된 꿈이였고, 엉망이 된 인간관계였고, 잃어버린 열정이였다. 하나가 무너지니 모든게 흔들렸다. 그렇게 나의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낯가림도 없고 사교성도 좋다고 자부했던 나는 스스로 대인기피증이라 자가진단을 내리고 익숙하지만 날 괴롭히는 시선들로부터 벗어나 여행을 떠나겠다는 자가처방을 내렸다. 

아무런 계획도 없었다. 알람은 오전 10시전에는 절대 하지 않을것, 입욕제를 잔뜩사서 저녁마다 반신욕을 할것, 비싼 옷이나 신발 사지 않을것, 이러한 다짐들만 두 주먹에 쥔 채로 도쿄로 갔다.

 도쿄에서 보낸 일주일의 시간은 정직하게 흘렀다. 길을 걷다 마주친 전시회에 무작정 들어가서 어차피 알아지도 못할 텍스트들은 무시하고 사진이나 그림을 마음대로 해석하고 시부야를 돌아다니다가 빈티지샵에서 옷을 갈아입고 대낮에 혼자서 스시를 먹으면서도 거리낌없이 생맥주를 실컷 마시며 그렇게 보냈다.

 

24살에 다녀온 도쿄

 

아사쿠사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인들과 아침까지 술을 마신 날이였다. 아침에 숙소로 돌어와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구고 숙취와 잠을 깨우는데 문득 내 모습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져 물이 식어버릴 때까지 펑펑 울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청승을 떨고나니 피로가 몰려왔지만 얼마남지 않은 시간 중 하루를 침대에서 보내고 싶지는 않은 마음에 근처 카페로 가서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당시 내가 지내던 숙소는 도쿄의 한적한 부촌 기타센조쿠에 있는 꽤 괜찮은 원룸이였는데 전에 있던 한국인이 두고 간 한국책들이 몇권 있었고 나도 가져갔던 배우 배두나의 도쿄여행 에세이를 꽂아두며 카페에서 읽을 책 한권을 집어들었다. 그게 이방인과의 첫 조우였다. 유치하고 부끄러운 이유지만 제목이 마음에 들었고, 매우 유명한 고전이였고, 얇은 책이라 하루면 충분히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가방에 챙겨들었다.

지하철로 10분정도 떨어진 지유가오카에 도착하니 소나기가 내리고 있었다.

비를 피해서 들어간 카페에서 두잔의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이방인의 전반적인 내용은 세상의 부조리함과 사람들의 시선에 관한 책이였다. 주인공 뫼르소는 그가 저지른 살인과 별개로 평소 모습,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의 태도와 그 후 삶의 모습에 의해서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짧지만 강렬한 내용이였고 뫼르소의 태도에 어쩐지 찝찝함을 느끼며 여행을 마쳤다.

나는 남들과 다름을 꿈꾸며 선택한 것들이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뫼르소를 이해하지 못하던 소설 속의 사람들처럼 나도 내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고, 자괴감으로 인해 타인의 시선이 무섭고 부담스러웠다.

 

2년이 지나고 마지막학기를 보내던 중 과제를 공지 받았다. 바쁘게, 그러나 딱히 해내는 것도 없이 수개월을 보내던 나는 회의감과 자괴감에 빠져드는 일이 잦았고, 언제나처럼 대책도 없이 일본에 다녀오기로 했다. 회사에 급하게 짧은 휴가를 쓰고 비행기표를 예매한 날 서점에 들러 이방인을 구매했다.

단촐한 짐을 싼 캐리어에 넣었다. 그리고 도쿄에 도착한 날 밤 책을 읽어 내려갔다. 

이전에는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던 뫼르소에게서 왠지 모를 용기를 얻었다. 다시 읽은 이방인에서 그는 그저 솔직한 사람이였다. 사회에서 정한 규범, 관습과 다른 가치관과 감정들이 그의 솔직한 태도에서 보여졌고 그런 솔직한 삶은 사회에 동화되지 못하는 이방인의 모습이였다.

 

 

 

모험이 두려워 익숙한 것만 찾던 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생활에 지칠때면 낯선 곳으로의 도피를 선택했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없는 곳에서 가장 솔직하고 행복한 나의 모습을 보는게 즐거웠기 때문이다. 

 

시대가 만들어내는 관습이 있다. 좋은 성적을 쌓아서 빛나는 졸업장을 가슴에 안고, 안정적이고 편한 삶을 만들어 줄 직장에 취업한다거나 36평 아파트와 외제차, 그리고 여유로운 노후를 보장받는 삶을 살며 주변사람의 부러움을 사는 것. 대학이라는 공장에서 찍어내듯 비슷한 목표와 미래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완성되어 사회로 나간다.

개중에는 1등 상품으로 인정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불량품으로 취급받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애초에 불량품이나 이방인은 없다. 그런 평가는 타인의 시선일 뿐이고 나는 다른곳에서 멋지게 쓰이거나 제자리를 찾아서 빛을 낼 존재다. (더 이방인스러운 생각을 해보자면 남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거나 어디선가에서 빛을 내지 못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2010년, 자발적퇴교를 외치며 고려대를 떠난 김예슬씨를 기억한다. 그녀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성공한 인생을 살고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했다는 것을 존중해주고 싶다.  

 

내가 다른 사람들처럼 되지 못한 이유는 다른 사람들처럼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또래의 스물여섯과 다른 길에 있는 것은 내가 다른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선택에 만족하려한다.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살다보니, 지금 이 자리에 있고 나는 아직도 하고 싶은게 넘친다. 그 중 대부분은 여전히 남들이 보기에 혀를 끌끌 차게 만드는 한심한 계획 혹은 나를 두렵게 만드는 모험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간 날 정말 불행하게 만든것은 내가 한 선택이나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아니라 그런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이였다. 

 

나는 이제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도쿄가 아닌 곳에서도 행복하기로 다짐했다. 
 

<2017 출판문화론 / 언론홍보학과 4학년 최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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