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품격. 이기주 저. 황소북스 출판.

  초등학교 훈화 시간에 '말은 나에게 돌아온다'라는 말을 들었다. ‘상대에게 나쁜 말을 하면 그 말은 똑같이 나에게 돌아온다. 대신 좋은 말을 하면 그것 역시 똑같이 돌아온다.’ 그 날 저녁 부모님께 정말이냐고 물었다. 부모님께서는 그렇다고 끄덕이셨다. 그러면서 아빠는 나에게 '너의 가치는 네가 만드는 거다. 너의 가치를 잘 가꿔라.' 라고 말씀하셨다. 어릴 때는 어떻게 해야 가치를 가꿀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내가 하는 행동과 말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말에는 무게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무게는 내가 얼마나 그 일들을 진지하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믿는다. 그러기에 말을 하기 전에 생각을 먼저 다듬기로 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학교에서는 가족 독서 릴레이를 한다고 했다. 무슨 책을 골라야 가족 모두가 편하게 읽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도중, '언어의 온도'와 '말의 품격'이 대세라고 광고하는 글들을 보게 되었다. 그중 말의 품격이라는 제목이 더 마음에 와 닿았다. 신기하게도 책의 뒷 표지에 '나는 인간의 말이 나름의 귀소 본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언어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가려는 무의식적인 본능을 지니고 있다. 사람의 입에서 태어난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냥 흩어지지 않는다. 말을 내뱉은 사람의 귀와 몸으로 다시 스며든다.'라고 적혀있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홀리듯 그 책을 사버렸다.

  가족독서릴레이의 첫 주자는 나였다. 다양한 카테고리의 '말'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나와 비슷하였고, 그가 한자해설을 풀이한 '품(品)'자가 ‘입 구(口)’자가 3개 모여서 된 것이라고 하였을 때 한동안 잊고있던 아빠의 말도 떠올랐다.

  책을 읽고, 서로에게 책을 넘겨주는 틈에 껴서 '나는 이 부분에서 이게 생각나더라'라고 한마디씩 던졌다.

  그 중 '침묵'이라는 장이 있었다. '인간의 가장 깊은 감정은 대개 침묵 속에 자리하고있다.' 라는 글귀가 적힌 장은 '침묵'을 '어색함'과 거의 동일시하던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주었다. 그리고 그 장을 읽으며 일화가 떠올랐다. 원하는 시험 때문에 고민하고, 앞을 몰라 헤맬때,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나눈 이야기들로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원하던 결과가 나왔을 때, 맨 먼저 아빠에게 전화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출근 시간이었을텐데, 딸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는 아빠의 심정은 어땠을지 궁금하다. 아빠는 잠시 아무 말도 못하고 침묵했다. 마침내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고생했다. 아빠도 걱정했는데, 정말 축하해.' 라는 떨리는 목소리에 결국 엉엉 울어버렸다. 엄마는 생각 외로 담담했는데, '언젠가는 될줄 알았으니까.' 라고 단호하게 하는 말에 '믿어줘서 고맙다'는 말 말고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동안 분명 부모님도 나 못지않은 고민을 했고 그것을 티내지 못했을 게 미안했고 믿어줘서 고마웠다.

  '공감' 장에 대해서는 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에 수능을 본 동생에게는 '어떻게 되었냐'고 질문하기보다는 '고생했다'라고 말했다. 수능을 본 지 꽤 오래 되었지만, 수능 당시의 기분, 시험장의 분위기, 채점 후의 기분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1 학년인 동생에게 수학을 가르쳐주면서 '원의 방정식이 나도 제일 어렵더라고. 이 부분이 3차 함수보다 더 어려운거 같아.' 라고 하며 다독였다.

  동생들에게는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맞아. 정말 이렇게 되지.' 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알려주고 싶었다. 동생들도 나중에 경험을 통해 알게 될 일이다. 하지만 조금 일찍 더 멋진 사회인이 되길 바라는 첫째의 마음을 담았다. 가족독서릴레이 과제라는 의무로 시작했지만, 잊었던 추억도 다시 떠올리고, 새로운 주제로 함께 대화를 나누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2017 출판문화론 / 언론홍보학과 4학년 고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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