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오사무 <인간실격>

나는 이 남자의 사진을 3장 본 적이 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일기장을 훔쳐보았다. 썩 기분이 좋지 않다. 남의 일기장을, 그것도 훔쳐보았으면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흥미롭지만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그도 어디선가 나를 훔쳐보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인간 실격>은 내 일기장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그것도 옷장 깊숙이 숨겨둔 비밀 일기장 말이다. 이쯤 되니 에곤 쉴레의 그림도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거 같았다. (민음사 <인간실격>의 표지 그림으로 제목은 ‘꽈리열매가 있는 자화상’ 이다.) 그래서 그 시선들에 의해 오롯한 ‘나’를 들켜버린 건 아닐까 하였다. 그리고 이걸 추천한다면 사람들 또한 ‘나’를 훔쳐보게 만드는 것 같아서 두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실격>을 추천하는 이유는 확신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다자이 오사무의 일기장이, 내 일기장이 당신의 일기장도 될 것이라고 말이다.

1.
세상이란 도대체 뭘까요. 인간의 복수일까요. 그 세상이란 것의 실체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무조건 강하고 준엄하고 것이라고만 생각하면서 여태껏 살아왔습니다만, 호리키가 그렇게 말하자 불현 듯 “세상이라는 게 사실은 자네 아니야?”라는 말이 혀끝까지 나왔지만 호리키를 화나게 하는 게 싫어서 도로 삼켰습니다.
‘그건 세상이 용납하지 않아.’
‘세상이 아니야. 네가 용서하지 않는 거겠지.’
‘그런 짓을 하면 세상이 그냥 두지 않아.’
‘세상이 아니야. 자네겠지.’
‘이제 곧 세상에서 매장당할 거야.’
‘세상이 아니라 자네가 나를 매장하는 거겠지.’
<인간실격>中 p.92

사실 <인간 실격>이 처음부터 와 닿았던 것은 오로지 제목 하나뿐이었다. 작가 다자이 오사무가 현대 일본 소설의 상징이라 하지만 나는 일본인이 아니라서 처음 듣는 작가 이름이었고 여성이 매춘부, 마담 혹은 주인공 요조의 밥줄이나 다름없이 다루어지며 표현되는 방식이 상당히 불쾌하였다. (외로움과 사랑이란 이름으로 포장되어있다) 그리고 위의 글만 읽어보아도 책이 아니라 어디 인터넷이 올라오면 당장의 흑역사가 생성 된 것 같은 글귀 같았다. 허나 타인의 노여움을 두려워하는 부분이나 그 잘못을 나에게서 찾는 모습,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모습으로 자신을 꾸며내고 사랑에 목말라 하는 부분이, 자괴감과 열등감이 인간의 한 부분이라 미워할 수만은 없었다. 그리고 세상이란 개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더욱 더 이 책을 미워할 수 없게 만들었다. 세상이 개인이란 생각에 나는 일부분 동의한다.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긴 하지만, 남의 평가도 중요하긴 하지만 개인의 생각이, 스스로의 평가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지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들은 하나님 같은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를 해도 스스로 자신을 ‘실격’시켜 부끄럽게 살아왔다 생각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인간이란 무엇이고 인간 실격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결국엔 스스로가 판정을 내리는 것이었다.

2.
<인간 실격>은 다자이 오사무의 자서전 같다.(그래서 일기장이라는 표현을 썼다.) 다소 우울한 문체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인간실격>이 흥미롭게 읽혀질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확실히 어렵고 불쾌하다.

지금 내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갈 뿐입니다. 이제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내가 단 하나 진리처럼 생각하는 것은 오직 그것 하나뿐입니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나는 금년에 스물일곱 살이 됩니다. 흰 머리칼이 제법 많아졌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로부터 마흔 살 이상으로 보여집니다.
<인간실격>中 p.175

스물일곱의 청년을 마흔 살 이상으로 바라본다. 외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그가 살아온 일생도  40대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우여곡절도 많았고 ‘젊음’하나로 인생을 살아갔으나 결국 '젊음'도 잃어버린다. 그래서 소설의 끝을 장식하는 저 문장이 유난히 서글프게 느껴진다. 하지만 정말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갈 뿐이다. 주인공조차도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갈 뿐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는 선택은 ‘자살’이었다. 다 지나갈 것이라고 하였으나 결국 삶을 놓아버린 것이다.
이 책을 소개시켜준 사람에게 “너 이 책 읽고 자살 생각할 지도 몰라” 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나는 자살을 생각하지 않았고 이렇게 책에 대해 서평을 쓰고 있다. 다자이 오사무와 요조와 나의 차이는 하나였다. 일기장은 같았으나 결국 다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인간다움도, 인간임을 실격 당함도 틀린 것은 없다. 다름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남들과 다름에 무너질 필요도 없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갈 뿐이니

친구와 술자리에서 <인간실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친구가 말했다. “ 근데 결국  주인공이 나약한 거 아니야?” 나는 웃으며 동조했다. “맞아 그럴 수도” 아, 이 얼마나 멍청한 술자리의 대화였는가 싶다. 앞에서 구구절절 인간다움도 실격 당함도 틀린 건 없다 이야기 하고 자기 자신은 스스로가 평가하는 거라 생각한다면서 나는 모순되게도 그들을 평가하고 실격 당했다 말하고 있었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읽을 때마다 내 상황에 따라 나는 그들과 닮고 싶기도 닮아가기 싫기도 한 그런 책. <인간실격>은 인간 같다. 하나로 정의내릴 수 없고 하나의 성격만 있는 게 아닌 그런 인간 말이다. 오늘은 <인간실격>이 내가 어떤 생각을 하게 만들지 궁금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인간실격>에 대한 생각을 나눠보고 싶다. 그렇기에 이 책을 추천한다. <2017 출판문화론 / 언론홍보학과4 안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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