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단 호크 <기사의 편지>|부키|2017-04-14, 사진출처: 알라딘

  나는 주옥같은 문장을 좋아한다. 짧은 글로 내 마음을 휘어잡을 수 있는 이른바 촌철살인의 한마디 말이다. 이제껏 내 마음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던 것은 성경구절뿐이다. 그 밖의 다른 어떠한 달콤한 말들, 심지어 명언조차도 날 사로잡기엔 부족했다. 적어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책은 전투를 앞둔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전하고픈 삶의 교훈을 편지형식으로 쓴 책이다. 겸손, 협력, 사랑, 믿음, 우정 등의 스무 가지 ‘기사[騎士]의 규칙’을 우화를 통해 풀어냈다. 흔히 말하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지녀야할 가치라는 보편적인 소재이다. 그러나 직설적으로 설교처럼 제시하기보다는 간결한 문체의 일화를 통해 에둘러 전달하고 있다. 이는 여운을 줌과 동시에 내 마음을 온통 휘어잡기에 충분했다.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은 이 규칙들에 삶의 지혜와 더불어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가족독서릴레이 책을 정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리가족의 공통분모를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겨우 떠올린 것이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며 나를 포함한 가족 전부가 교회에 다닌다는 것 정도였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난 후 우리가족에겐 ‘이게 딱이네’ 싶었다. 우선 짧지만 가슴 깊이 다가오는 강력한 메시지들로 이뤄졌다는 점이 내 맘에 쏙 들었다. 또한 이 책이 적어도 나에겐 잠언 혹은 십계명의 느낌을 주는 지침서 같았기 때문에 가족들에게도 권하고 싶었다. 서로 사랑하고 섬기라는 성경 속의 가르침이 이 책의 가치들과 일정부분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고 가족 모두가 나와 비슷한 마음을 느끼길 바라며 먼저 아빠께 건넸다.

  시큰둥한 반응일 것이라는 나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취지를 설명하니 내일 읽을 테니까 놓고 가라며 보고 있던 TV로 시선을 돌리셨다. 겉으로 별 내색은 안하셨지만 책에 꽤 신경을 쓰신 모양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쉬고 싶을 법도 한데 바로 책을 읽으셨으니 말이다. 나는 평소에 아빠가 말을 걸어와도 눈 한번 마주치지 않은 채 대충 대답만 하곤 했다. 내가 봐도 정말 못난 딸이었다. 오랜만에 책 읽는 아빠의 모습을, 아니 그냥 아빠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언제나 강할 것 같았던 아빠는 나이가 지긋이 들어 어느덧 이순에 이르고 있었다. 눈이 침침해져 돋보기안경을 꺼내 쓰고 딸을 위해 책을 읽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 한 구석이 찡했다. 이제부터라도 아빠에게 살가운 딸이 되어드려야겠다. 그날 밤만큼은 “휴대폰 너무 오래보지 마라 눈 나빠진다.”는 말도 잔소리로 들리지 않았다. 표현 못하는 무뚝뚝한 딸이어도 아빠가 날 사랑한다는 건 변함없으니까.

  아빠는 다음 주자인 엄마께 책을 넘겼다. 항상 나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시는 우리엄마. 이름만 불러도 날 벅차오르게 만드는 엄마. 엄마는 집 안팎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셨다. 엄마의 책상에는 가족독서릴레이 책 외에도 읽어야할 다른 책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럼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책을 읽으셨다. 나중에 들은 말로는 아빠가 ‘현지가 해달라는 거 하고 있냐’며 엄마를 재촉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책이 다시 내게 돌아오기까지는 고작 4일 밖에 걸리지 않았다. 바쁜 와중에도 나를 위해 시간을 내서 릴레이에 참여해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가족독서릴레이 기록장

  한 줄 소감에는 느낀 점보다도 당신들께 와 닿았던 문장들을 적어놓으신 듯 했다.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가르침을 전하는 이 책의 내용처럼 우리 부모님도 내게 하시고자 하는 말들을 남겨 놓으신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서울에 있는 남동생은 여건상 참여하지 못했지만 부모님은 가족독서릴레이를 통해 우리 가족의 공감대를 나눠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전했다.

  책에서 말하는 스무 가지의 가치들은 시간이 지나도 유효하다. 그리고 변함없다. 그 중에서도 사랑은 최종 목표다. 저자는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는 말로 책을 끝맺는다. 결국 이 책의 모든 가치는 사랑으로 통한다. 우리는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단지 각자가 바쁜 삶을 살다보니 잠시 잊고 있었을 뿐이다. 우리 가족은 가족독서릴레이를 통해 다시금 사랑의 온기를 회복할 수 있었다. 소중하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2017 출판문화론 / 언론홍보학과 4학년 박현지>

키워드

#N
저작권자 © 제주대언론홍보학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