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독서 릴레이, 초등학교 방학과제에서도 볼 수 없었던 과제를 대학교 4학년이 되고 나서 처음 접했다. 굳이 과제로 해야 되나 싶었지만 막상 의도를 알고 나선 꽤 의미 깊은 숙제가 될 것 같았다. 가족이 돌려 읽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한 명의 주자가 다 읽으면 다음 주자가 이어받아 책을 읽는 식이였다. 문득 과연 ‘아빠가 하실까’란 의문도 들었다. 그렇게 서둘러 책을 선정해야 했고 나 혼자 읽는 것이 아닌 가족 전부가 읽는 책이기에 관심을 더 기울여야 했다.

  그렇게 고르고 고르다 발견한 책, 중학교를 다닐 적 읽었던 책으로 사춘기 때문에 모든 것이 하기 싫었던 내게 희망을 불어 넣어줬던 책, 연금술사를 선정하게 됐다. 취업을 앞둔 나와 곧 준비를 하게 될 두 살 어린 남동생 덕분에 평소 대화를 잘 나누지 않았지만 더 대화가 없어진 우리 가족 모두에게 권하고 싶었다. 이 책을 읽고 가족 모두가 불안을 떨치고 희망을 머금었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연금술사' 겉 표지

  연금술사는 ‘파울로 코엘료’란 작가가 쓴 책으로 2001년 12월 1일 초판이 인쇄됐다. 책 프롤로그엔 무언가 고상하면서 성경에서나 볼 법한 그림이 있다. 여행을 하고 싶어 양치기가 됐던 주인공이 자신이 꿨던 꿈을 쫓아가게 되고 결국 자아로서의 발견과 깨달음을 얻게 되는 내용이다. 책 문장 하나하나가 쉬운 단어들로 구성되어 읽기 쉬울뿐더러 몰입도가 굉장히 강했다. 이해가 어려웠으면서도 정말 와 닿았던 부분은 책의 마지막쯤 구간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꿈에 다다랐지만 그 곳에서 모든 것을 잃게 되었을 때 마지막 깨달음을 얻고 기뻐하는 장면이다. 이 책을 처음 읽었던 중학생 땐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릴레이로 다시 읽었을 땐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었다. 결국 모든 것은 자신의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고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조차 우리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을. 결국 연금술이란 납을 금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떠한 것에 가치를 두고 생각하기에 따라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읽기를 마무리해 다음 주자인 아빠에게 드리기 전에도 시간이 된다면 언제라도 다시 읽으리라 생각했다. 독서릴레이에 대해 설명 드리고 책을 드렸을 때 아빠의 반응은 정말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뭔데 이거?”

  이 한마디를 하시곤 어이없다는 표정과 이 나이에 이걸 해야 되냐는 표정이 반쯤 씩 섞여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책을 읽으실 땐 꽤나 진지하셨다. 거의 스포츠 채널을 틀고 읽긴 하셨지만 소리를 최소화 하신 후 정독하셨다. 9일이 지났을 때 쯤 이였다.

“엄마한테 주면 되냐?”

  릴레이에 반은 했구나 싶었다. 그렇게 엄마 손에 쥐어진 책은 내 예상과는 다르게 꽤나 오래 걸렸다. 주무시기 전이나 아침 드시고 나서 혹은 점심 드시고 나서 읽으셨던 엄마는 한 문장 한 문장 소리 내면서 읽으시기도 하셨다. 이따금 이 부분까지 읽었는데 나는 이랬을 것 같다며 자신의 생각을 말씀하시기도 하셨다.

  그렇게 2주가 지나고 나서 책은 마지막 주자인 동생에게 넘겨졌다. 동생을 못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계속해서 읽고 있는지에 대해 확인을 해야만 했다. 동생 역시 대학에 재학 중이여서 이것저것으로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지만 나의 집요함 때문에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약간 강요하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다.

  그렇게 동생이 마지막주자로 릴레이가 진행 중이던 어느 날 모처럼 온 가족이 집에서 저녁식사를 할 때였다. 평소와 같이 별 대화 없이 식사를 하던 도중 엄마가 동생에게 말을 꺼냈다.

“책 다 읽었니?”

  동생은 거의 다 읽었다고 답했고 엄마는 주인공이 크리스털 가게를 머무르던 시점이 가장 인상 깊었다며 대화를 이어갔다. 주인공이 꿈을 쫓아 새로운 이국의 땅을 처음 내딛자마자 진귀한 물건에 정신이 팔린 순간 여행 경비를 몽땅 도둑맞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표지’를 따라 그저 그런 크리스털 그릇을 파는 한 가게에 다다랐고 가게 주인에게 초심자의 행운을 증명하면서 가게에 머무르게 된다. 그 곳에서 주인공은 가게 주인을 도와 일을 하며 ‘표지’를 계속해서 쫓게 되고 ‘표지’는 계속해서 행운을 가져다줘 결국 가게 주인과 주인공 모두 부유한 삶을 얻게 된다. 그렇게 여행경비의 몇 배의 돈을 번 주인공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양치기 생활을 하려했으나 가게 주인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고심한 끝에 꿈을 향해 여행을 하기로 결정하게 된다. 주인공은 크리스털 가게에서 무엇이든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는 것을 깨달음과 동시에 자신의 이상향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내딛었던 셈이다. 엄마는 이 부분에서 주인공에게 몰입돼 꽤나 빠르게 읽었다고 했다.

그러자 아빠도 한 마디 하셨다.

“마크툽.”

  이 말은 크리스털 가게 주인이 주인공에게 했던 말로 해석하자면 ‘기록되어 있다’라는 뜻이다. 즉, ‘모든 일은 운명처럼 정해져 있다.’라고 나는 해석했다. 주인공이 양치기 시절 광장에서 현명한 왕을 만나게 된 것, 그 후 꿈을 쫓아 이국의 땅으로 오게 된 것, 돈을 모두 잃게 된 것, 크리스털 가게에서 일을 하게 된 것, 이 모든 것이 크리스털 가게 주인한테는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나는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것에 동의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반대하기도 한다. 어찌 됐건 운명은 스스로가 선택함에 따라 개척해간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론 결과만 따지고 봤을 땐 정해져 있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되기도 한다.

  동생은 주인공과 주인공의 그녀 ‘파티마’를 만나는 부분까지 읽었었는데 그 부분이 제일 인상 깊었다고 했다. 주인공이 그녀를 처음 만난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고, 만물의 정기가 주인공의 내부에서 끓어올라 소용돌이치는 듯 했다. 우리로선 심장이 뛰고 엔돌핀이 돈다고 할 수 있겠다. 마치 생에 첫사랑을 만난 것처럼, 혹은 운명의 상대를 만난 것처럼.

  주인공은 그녀를 만난 후 모든 시간을 그녀와 함께하고 싶었지만 파티마는 주인공이 목표 혹은 꿈에 계속 다가가기를 바랐다. 결국 주인공은 그녀를 뒤로 한 채 꿈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갔고 파티마는 그녀의 신념에 따라 주인공이 목표를 이루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게 된다. 정말 마음 한 구석이 아리면서도 감동적인 부분이었다.

  책 한권 덕분에 오랜만에 가족과 여유로우면서도 흥미 있는 대화를 할 수 있었으며 또한 서로 간의 감정을 나눌 수 있었다. 꽤나 정감 있는 저녁식사 후 며칠이 지난 뒤 동생이 책읽기를 마쳤고 그렇게 가족 독서 릴레이를 완주했다.

  나 혼자 책을 읽고 그쳤다면 그저 홀로 느끼는 감정으로 끝이었겠지만 온 가족이 나눠 읽음으로서 감정을 공유하고 느낌과 생각을 대화 할 수 있어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이자 새로운 경험이었다.

‘소중한 사람에게 소중한 책을’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소중한 사람에게 스마트폰의 메시지보다 소중한 책 한권 건네 보는 것은 어떨까. <2017 출판문화론 / 언론홍보학과 4학년 고상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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