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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할 것인가, '소유'할 것인가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고상혁 | 승인 2018.06.26 15:05

  우린 현재 손안에서 무수히 많은 정보를 보고 선택하며 버릴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손안에서 전 세계의 뉴스를 볼 수 있고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국가의 제품을 살 수 있으며 이러한 정보들을 더 이상 원치 않을 땐 차단시킬 수 도 있다. 무수히 많은 정보가 각종 매스미디어 및 뉴미디어에서 쏟아져 나오고 우리는 좋든 싫든 접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소유하고 있기에 남녀노소 나이를 불문하고 언제든 어디에 있든 그럴 수 있다고 나는 생각 한다. 표면적으론 이러한 정보들을 늦게 알게 되거나 혹은 모른다고 해서, 아니면 정보를 얻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겠지만 남들과 뒤쳐질 수 있다고 하겠다. 이런 현상이 좋은 것일까? 아니면 안 좋은 것일까?

  2학기이자 졸업학기였던 나는 출판문화론이란 강의를 수강하게 됐고 프로젝트 중 하나인 헌책을 팔기 위해 ‘책밭서점’이란 중고서적을 판매하는 서점에서 내가 팔아야 할 책을 선별해야 했다. 단지 내가 읽거나 남들에게 대여해 줄 것이 아닌 판매를 해야 했으므로 신중히 책을 고르고 있었다. 꽤나 긴 시간 끝에 몇 권의 책을 선정하고 있는데 ‘무소유’란 책이 눈에 들어왔다. 법정스님이 쓴 책으로 고등학교를 다닐 적 듣기만 하고 읽어 보진 못했던 책이었다. 일단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판매를 위해, 또 호기심이 들어서. 만약 책이 팔리지 않는다면 내가 구매해서 읽어볼 의향이었다.

  하지만 역시 전자의 촉이 딱 들어맞았고 진열함과 동시에 10분이 채 안돼서 내가 고른 30권의 책들 가운데 제일 먼저 팔렸다. 물론 나로서는 다행이기도 했다. 결국 도서관에서 대여했고 남들처럼 이것저것 할 것이 많아 책을 시간 나는 대로 빠듯하게 읽어야 했지만 그렇게 두꺼운 책이 아니었던 터라 읽는데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무소유' 겉 표지

  ‘무소유’는 법정스님이 짤막하게 쓴 35개의 수필을 모아놓은 수필집으로 주변의 삶 속에서 나오는 깨달음을 잘 표현했다. 각 수필에는 삶 속에서 이끌어낸 교훈들이 많았다. 35개의 수필 중 가장 유명한 수필은 단언 책 제목에도 있듯 ‘무소유’였다. 수필의 시작은 마하트마 간디가 런던에서 열린 원탁회의에 참석했을 당시 했던 말을 인용함으로써 시작한다.

“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요포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뿐이오.”

  우리 인생사를 소유사로 칭하며 무소유의 진리를 경험과 함께 말해주고 있다. 법정 스님이 두 개의 화분에 우연히 선물 받은 난초를 기르고 있었다. 훌륭한 난초로 키우기 위해 난초에 집착해 외출을 해도 난초에 신경을 썼고 마음을 편히 가지지 못하는 과정에서 소유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 난초를 버렸다는 이야기다. 그 외에도 책 안의 글에는 '취미다운 취미는 자기 분수에 맞는 일이어야 그 즐거움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 '내 차례가 언제 어디일까 생각하면 한 순간도 허투루 살고 싶지 않다.', '용서란 타인에게 베푸는 자비심이라기보다, 흐트러지려는 나 스스로를 거두는 일이다.', '집착은 우리를 부자유하게 만드는데 물건에 대한 집착보다 인정에 대한 집착이 몇 배나 더 질기다.', '아름다움은 누구에게 보이기 전에 스스로 나타난다.', '우리는 물고 뜯고 싸우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등의 구절들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진정한 행복은 ‘무(無)’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본래 인간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태어나 아무것도 갖고 가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다.’ 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그렇기에 ‘무소유’처럼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림으로써 욕심을 버리고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러한 것이 틀렸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소유를 하지 않는 다는 것은 버리는 것, 즉 포기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함으로써 행복을 찾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분명 아닌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정되고 편안한 삶을 살기를 원하고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선 안정된 직장이 있어야 할 것이며 안정된 직장을 취하기 위해선 다양하고 남들과 차별된 스펙을 소유하고 있어야 하는 시대다.

  나는 무소유를 하는 것 보단 기회비용을 생각해 적절한 선택을 하는 것이 현재 시대엔 좀 더 현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포기하는 것보단 선택을 함으로써 포기하게 되는 가치를 생각해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하는 것이다. 물론 탐욕에 관해선 ‘무소유’하는 것이 올바를 것이다. 지나친 욕구는 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이는 곧 파멸까지 가져 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절한 욕구, 현명한 소유는 자기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을 것이며 타인과 경쟁에서도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좋든 싫든 나 자신과 또 타인과 경쟁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 만약 이러한 경쟁이 싫다고 하여 삶을 살기를 거부하고 자살을 택할 것인가. 각자 선택 나름이겠지만 삶을 포기하는 사람은 지극히 드물 것이다. 너무 극단적으로 말하긴 했지만 이는 곧 현실이다. 무조건 버리고 포기해 무소유 할 것인가, 아니면 소유에 따른 적절한 선택을 할 것인가. 선택하는 건 우리 스스로의 몫이다. <2017 출판문화론 / 언론홍보학과 4학년 고상혁>

고상혁  xvrequi@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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