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혜민 저. 2012. 쌤앤파커스

‘한 권의 책으로 가족들과 생각을 공유하다’

  아마 대학생활 3년 중 가장 어려운 과제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나 자신이 책과 친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책을 선정하는 기준도 없고 그보다 가만히 앉아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두 번째 이유는 이것이 나 뿐만이 아니라는 것. 가족들 중 누군가 책을 읽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내가 어릴 적 우리 집은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이사를 여러 번 다녔다. 이사를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짐이 많으면 이사를 하는데 더 힘이 든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남기고 오는 것들은 더 이상 보지 않을 것 같은 책이었다. 시리즈별로 샀던 위인전, 동화책, 만화책 들을 두고 오니 현재 우리 집에 있는 책은 나와 언니의 전공 서적을 제외해 대략 스무 권 정도다. 이 책들마저 애물단지가 되기 전에 읽겠다는 다짐이 벌써 1년이 넘었지만 가족독서릴레이를 시작하고 나서야 이를 실천하게 되었다. 내가 고른 것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쉼없이 달려오기만 했던 가족 모두가 혜민 스님의 따뜻한 위로로 잠시 쉬어갈 수 있으면 했다.

  책은 총 8강으로 나누어지고 휴식, 관계, 미래, 인생, 사랑, 수행, 열정, 종교 순이었다. 각 강은 우리에게 전하고픈 스님의 지혜로 가득히 채워져 있다.

  독서릴레이 스타트를 끊는 처음주자는 나였다. 무작정 읽기 시작했는데 어느 덧 혜민스님의 말을 읽고 다시 또 읽어보고 있었다. 곧 4학년이 되는데 그동안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진 적이 없었던 것같다. 학교와 아르바이트로 하루를 보내는 것이 익숙하다보니 어느 덧 22살의 내 젊음이 지나가고 있었다. 친구들은 일을 잠시 쉬라고, 멈추라고 해도 나는 그러지 못했다. 책을 읽으면서 반성도 많이 하고 앞으로의 삶은 나 자신을 위하자고 다짐했다.

  나의 바통을 이어 받은 것은 엄마였다. 아침 4시 40분 알람소리로 하루를 시작하는 엄마를 보면 그저 존경스럽다. 아침 9시 수업도 헐레벌떡 뛰어가는 나에 비해 10년간 쉬지도 못한 채 지각 한번 없이 새벽 출근을 하시는 엄마의 뒷모습에 항상 미안한 마음이다.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지 몇 년째인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런 엄마에게 잠시 휴식을 줄 겸 책을 전하였다. 책을 받아든 엄마가 가장 먼저 내뱉은 말은 ‘요즘 작은 글씨들은 잘 안 보염져게’ 였다. 그 말 한마디에 미안한 마음은 배가 되었다. 다 안 읽어도 좋으니 시간 날 때 조금씩, 특히 1강 휴식의 장을 마음속에 새기며 읽어보라 했다. 책을 통해서라도 엄마가 잠시나마 쉴 수 있기를 바랬다. 책을 받은 지 3일 후 엄마가 말했다. '엄마도 모든 걸 내려놓고 절에 들어갈까?' 하는 장난스런 말에 절 말고 나중에 세계 여행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하며 엄마의 릴레이를 마쳤다.

  그 뒤를 잇는 세 번째 주자는 언니가 되었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라 사실 책을 권하는 데 고민이 있었다. 혹시나 시험공부 하는데 방해될까 생각했지만 엄마가 책 읽는 모습을 보고 흔쾌히 그 뒤를 잇는데 동참했다. 대학가면 끝날 줄 알았던 학업이 이제 시작이라는 것을 알았고 졸업장만 있으면 되겠지 했던 안일함이 우울함으로 바뀔 줄이야. 힘들어 하는 언니를 보며 이 책이 언니의 초심을 잡도록 도와주길 바랬다. 3강 미래의 장과 4강 인생의 장을 더 깊이 읽어 볼 것을 권했고 그렇게 언니도 혜민 스님의 지혜를 받아들이는데 함께하였다.

  바통을 이어 받은 마지막 주자는 아빠다. 평소 말이 없고 무뚝뚝해서 가장 어려운 존재인 아빠. 아빠는 항상 새벽부터 자신을 찾는 누군가를 태우고 목적지를 향해 가기 바쁘다. 택시기사의 삶은 손님과의 짧은 대화뿐이고, 딸과의 대화는 그보다 적어 손에 꼽히는 정도다. 그런 아빠에게 조심스럽게 독서릴레이 얘기를 꺼냈고 피곤할 아빠를 생각해 관계, 사랑의 장까지만 읽어보라고 전했다. 아빠는 읽고 나서 앞으로 책 읽는 시간을 종종 갖자고 말했고, 시간은 좀 걸렸지만 이렇게 처음으로 책 한권이 가족 모두의 손을 거쳤다.

  그저 한 권의 책 일뿐이라 생각했던 나의 생각은 틀렸다. 집안의 막내인 나조차 어느 덧 20살을 넘은 성인이 되었고 각자의 위치에서 쉼 없이 달려 온 가족의 모습을 이번에 새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아르바이트도 끝나면 새벽 12시. 집에 가면 가족들은 이미 잠을 자고 있어 주말에 밥을 먹는 시간이 대화를 나누는 유일한 시간이 됐다. 이런 와중에 독서릴레이가 가족간의 대화를 이끌었고 덕분에 가족과의 추억이 하나 더 늘어나게 되었다.

  젊은 나이에 승려이자 미국 대학 교수라는 조금은 버라이어티한 인생을 사는 저자 혜민 스님이 삼십 대가 되었을 때쯤 깨달은 것이 있다.

  ‘남을 위한다면서 하는 거의 모든 행위들은 사실 나를 위해 하는 것이었다는 깨달음입니다. 내 가족이 잘 되기를 바라는 기도도 아주 솔직한 마음으로 들여다보면 가족이 있어서 따뜻한 나를 위한 것이고,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우는 것도 결국 내가 보고 싶을 때 마음대로 볼 수 없는 외로운 내 처지가 슬퍼서 우는 것입니다. 자식이 잘되길 바라면서 욕심껏 잘해주는 것도 결국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자식이 잘되길 바라는 것입니다. 부처가 아닌 이상 자기 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가장 공감이 되면서도 씁쓸함을 남긴 이 말. 결국 내 인생은 나를 위한 것이라는 메시지가 나의 가슴 속에 깊이 박혔다. 하지만 내 삶은 가족, 친구, 동료 등 그들과 분리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진심을 담아 진실된 행동으로 그들을 대했으면 한다. 결국 그 또한 나를 위한 것일 테니까.

  이번 독서릴레이를 핑계 삼아 가족들과 잠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해보며 그동안 가족들에게 무관심했던 나 자신을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 깨닫고 가족들에게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내가 됐으면 한다.

  이 책은 불교가 아니거나 나처럼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이 읽어도 좋다. 종교를 떠나 ‘나’에 대한 깊은 성찰과 반성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한다. 스님의 말을 빌려 모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순간순간 사랑하고, 순간순간 행복하세요, 그 순간이 모여 당신의 인생이 됩니다.’ <2017 출판문화론 / 언론홍보학과 3학년 임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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