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국씨 부부

“제주도 바다는 강원도 바다보다 차원이 다를 만큼 예뻐요.”

현재 수산, 장전리에서 ‘자올’ 미술학원과 ‘다올diy’ 목공방을 운영하시는 김현국씨 부부 말이다. 김 부부는 2013년부터 제주도에 내려와서 살고 있다. 김현국씨는 처음부터 제주가 마음에 들어서 이주하고 싶었지만 부인은 그러지 않았다. 그러다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이 예뻐 마음을 바꿨다고 했다. 그러나 처음에는 제주도로 내려갈 때 가족들이 극구 만류했다고 했다. ‘시어머님은 뭐먹고 살래?’ 라며 걱정을 했다.
 
“주변에서 귀농할 거냐고 묻더라고요. 아니라고 했죠. 사실 제주도로 내려오기 전에 미술 교육 강사를 했었는데 제가 갖고 있는 미술 재능을 제주도에 가서도 펼치고 싶었어요. 재능기부도 인천에서부터 계속했었는데 제주도에서도 할 계획을 세웠죠.”
 
김현국 씨는 “저는 원래는 직업군인이었어요. 21년간 근무했죠. 훈련병 신병교육대에서 근무를 했었는데 사실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건강상의 악화가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어렵게 퇴역을 결심했고 무엇을 할까 고심했습니다.”

퇴직 이후 아버지의 목수기술을 차근차근 물려받았다고 했다. 배운 목수기술로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다 목공방을 차리기로 결심을 했고 서울에서 공방준비교육을 1년 동안 받았다고 했다. 목공방의 터전을 찾는 도중 제주도에 목공방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 제주도에 내려올 결심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리고 아내를 설득해 제주도로 내려오게 됐다.

“막상 제주에 와서 목공방을 차리고 사람들과 만나다보니 소통이 잘 되지 않더라고요. 답답했습니다. 제주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김현국씨 부부가 입을 모았다. 사실 제주도 언어는 매우 듣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이주민이다 보니 제주도 사람들의 시선도 신경을 써야 했다고 전했다. 은근히 도외 사람을 배척하는게 느껴져 도민들과 불편한 점도 있었고 사람들과 오해도 있었다고 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내려온 이주민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부분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김씨 부부는 제주도 생활에 어려움보다 재밌는 일이 많다고 전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청각장애인을 대상으로 10주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었어요”

수업을 받는 학생들이 대부분 청각 장애인이다 보니 통역 수화인이 필요했다. 그러나 2~3주를 같이 수업을 하다 보니 나중에는 통역 없이도 수업이 가능해졌다. 이 수업을 통해 김씨는 누구하고도 마음이 통한다는 사실을 느꼈다고 한다. 김현국 씨는 또 가장 기억나는 부분에서 현재도 진행하고 있는 벽화 재능기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이 마을에 대해 어떤 기부를 하는 것이 좋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많은 고민을 하다가 마을에 허름한 건물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 허름한 건물들을 예쁜 벽화로 채워 넣자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어요.”

마을 창고에 김현국씨가 벽화를 그려놓았다. 김현국씨는 벽화를 통해 마을의 활기를 불어 일으키고 있다.

그는 시간이 나면 마을의 전경을 위해 벽화를 그린다고 한다. 벽화를 그리자 마을사람들은 대단히 좋아했다고 한다. 노후 건물들을 이용해 그린 벽화가 마을을 점점 예쁘게 하는데 한 몫을 했다. 벚꽃이 떨어지는 건물벽화, 싱그러움이 감도는 푸른 꽃봉오리의 벽화 등을 그렸다. 그 작은 변화가 마을의 아름다움을 더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마을 사람들은 전했다. 그리고 김현국씨 부부는 변해가는 마을을 보며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도외처럼 특색에 맞게 마을 단위로 뭉쳐서 그리고 싶어요. 벽화를 그리는 건 지금 우리부부 밖엔 없지만 나중에는 모든 시민들이 다 같이 벽화를 그리길 소망합니다”<2017 신문제작실습 / 강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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