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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진상규명운동, "전국으로"...마침내 '특별법' 공포[제주대신문으로 본 대학가 4.3진상규명운동](5) 4시기 : ‘4.3 특별법’ 제정을 위한 발걸음
강영준 | 승인 2017.06.14 12:32

4.3대학진상규명운동이 본격화된 3시기를 지나 4시기인 1993년도부터는 진상규명운동에 대한 다양한 결의대회가 이뤄졌다.

93년 4월 1일에는 제주교대서 제주지역 총학생회 협의회가 ‘제45주기 4.3제주민중항쟁 추모 및 한미행정협정 개정과 내정간섭 반대를 위한 청년학도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청년이 주가 된 결의대회는 개최 후 관덕정까지 시가행진을 했다. 이 대회를 시작으로 4.3항쟁 45주기를 맞아 각종 추모제, 계승대회, 유적지 순례등을 가지고 4.3항쟁의 조속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3일에는 사월제 공동준비위원회가 탑동에서 ‘제주 4.3항쟁 45주기 추모제’를 열었다. 이 추모제는 추모굿, 분양 및 헌화, 추모사, 추모시 낭독, 추모행진 등 의 순서로 총 3부로 구성되어 진행됐다. (제주대신문 93년 4월 1일 자)
93년도에는 미국 내정간섭 반대와 김영삼 정부 타도를 외치며 4.3항쟁의 진상규명 촉구가 활발했다. 이런 상황에 ‘제45주기 4.3제주민중항쟁 추모 및 한미행정협정 개정과 내정간섭 반대를 위한 청년학도 결의대회’를 시작으로 구체적이며 다양한 4.3 정신 계승대회를 열어 청년이 주가 된 45주기 4.3항쟁 추모 및 청년 아라 결의대회를 개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94년에 이르면서 도의회에 구성된 ‘4.3특별위원회’에 거는 도민들의 관심이 컸다. 4.3이 입에 오르내리고 진상규명을 위한 공개적 움직임을 보인 것이 불과 몇 해 전에 일이었다. 특히 공공기관인 제주도의회가 이 문제에 본격적으로 접근한 것은 불과 1년 남짓한 일인만큼 기대가 큰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본사에서는 주민의 대의기관인 도의회에 ‘4.3특별위원회’가 구성된 후 1년간의 활동을 평가 진단해 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했다. (제주대신문 94년 3월 29일 자)
94년도 신문에는 4.3사건이 사람들 속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기사들이 많이 나타난다. 그해 3월 29일자 제주대신문에는 ‘도의회 4.3특위 1년을 진단한다’라는 기사를 내세워 피해 신고실 설치, 위령제 공동개최 중재 등 4.3관련 시설들이 잘 행해지고 있는지 되짚어보는 기사를 냈다. 이런 기사를 통해 4.3사건이 사람들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는 것을 인지시켜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주대신문 94년 3월 29일 자

95년에는 4.3 제47주기를 맞아 제주지역 총학생회 협의회 및 도내 각 사회단체에서는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합동위령제를 공동으로 갖는 등 4.3진상규명을 위한 각종 사월제 행사를 개최했다. 그 해 4월 5일에는 제총협 주최로 3백여명의 학우들이 참여한 가운데 4.3유적지 중에 하나인 서귀포시 영남동 일대에 대한 역사 순례를 진행했다. 이날 행사는 순례장소 집결 후 순례지를 소개하고 폐촌마을 일대를 순례한 후 단합의 시간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제주대신문 95년 4월 5일 자)
 
96년 4월 4일에는 총학생회주최로 열린 ‘4.3특별법 제정을 위한 8천아라 결의 대회’에서 학우들은 4.3 제48주기를 맞이해 4.3의 진상규명과 4.3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좌용철 총학생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정부의 과잉시위진압으로 인한 노수석학우의 죽음을 애도하며 현 정부를 타도할 것을 선언하고, 4.3항쟁 48주년을 맞이한 시점에서 앞으로 학우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표명했다. 이날 제주 민주청년단체 협의회와 제총협은 ‘52만 제주도민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4.3은 문민정부의 ‘역사바로 세우기’구호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 진상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고 전제한 후 “총선에서 4.3문제의 해결을 외쳤던 김영삼 대통령과 제주출신 국회의원들을 4.3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을 회피하고 있다”면서 “이제 4.3특별법을 제정하기 위해 우리 도민들이 단결된 힘을 보여줘야 4.3의 역사를 바로 세우고 도민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좌용철 제총협상임의장은 “이제까지 정치인들의 4.3에 대한 선거공약은 도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며 그 때문에 지금까지 4.3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힌 후 “제주지역 국회의원 후보들을 4.3진상규명과 특별법제정의 공약을 반드시 지켜야 하며, 제주도민들은 4.3 48주기를 맞아 진상규명을 위해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제주대신문 96년 4월 4일 자)
96년도 기사들은 '4.3특별법' 제정을 위해 대학생들이 투쟁을 시작하게 됐다는 기사들이 주가 된다. 이를 통해 이전 연도와는 다르게 도민들이 4.3이 이제는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된다고 자각하기 시작한 시기였다는걸 알 수 있다.

97년 4월 1일에는 제주대 총학생회가 ‘4.3학살 원흉 미국의 공개사과와 G-2보고서 완전 공개를 위한 제총협 동맹휴업 및 9천아라 실천대회’를 개최했다. 대회 개최 후 관덕정 앞에서  제총협 집회 및 시가행진이 이뤄졌다. (제주대신문 97년 4월 1일 자)

98년 3월 20일 자 제주대신문에는 총학생회가 오전 11시 백두관에서 4.3항쟁 50주기를 맞이하는 시대돌파 총학생회 입장을 담은 기자회견문을 발표했다는 기사가 있다. 이 날 이성은 총학생회장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4.3 50주기를 맞이하는 올 해를 진상규명의 원년으로 삼고 4.3항쟁의 전국화 사업을 통해 전국 각 대학별 홍보에 적극 나서겠다”면서 “왜곡, 은폐된 역사는 이제 끝나야 한다. 김대중 정부는 국회내에서 4.3항쟁 진상을 규명할 수 있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특별법을 제정할 것”을 촉구했다. 총학생회장은 또 “4.3특별법 제정, 4.3 진상 규명의 의지를 심어주기 위해 4.3 동맹휴업 결의를 모을 것”이라며 “앞으로 대정부투쟁도 전개할 것 ”이라고 덧붙였다.

98년 오전 11시 백두관 1층로비에서 열린 총학생회 주관 ‘4.3특별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

99년에는 4.3이 있은 후 51년 동안 4.3이 제주 도민들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돌아봤다. 이렇듯 4.3 발발 반세기가 지난 지금 한국사에서도 아직 공론화조차 되지 못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상설기구로 존재하던 ‘4월제 공동준비위원회’ 와 ‘4.3학술문화사업추진기구’ 등을 비롯한 재야인사, 청년 학생들이 나섰다. 이들은 지난 3월 8일 도민연대를 결성하여 4.3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결의했다. 도민연대는 대통령이 직접 개입해 문제 해결의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 줄 것을 요구했다. 적어도 이번 임기의 국회에서 ‘국회 4.3특별위원회’가 구성돼 조속한 시일내에 ‘4.3특별법’이 제정되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이들은 4월 초까지 구체적인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오는 4월 8일 집권당 중앙당사에서의 항의 집회까지 불사할 각오를 가졌다. 도민연대는 지난 30일 기자회견을 통해 태극기 게양, 종교단체들의 타종식, 각 학교 학생 대표들의 위령제 참여 유도등의 내용을 호소하는 ‘4.3의 날’제정운동에 전 도민이 참여해 줄 것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4.3해결의 첫 단추는 무엇보다도 우리 도민들의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로 채워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제주대신문 99년 4월 5일 자)
 
98년도와 99년도는 이전 연도와는 다르게 적극적으로 ‘4.3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앞선 시기부터 펼쳐온 4.3진상규명운동의 목표인 특별법의 제정을 이루기 위해 공식기자회견을 갖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보였다. 4시기는 앞선 시기와 다른 점이 확연히 드러난다. 앞선 투쟁적인 3시기와 달리 4시기에 개최된 4.3대학가 진상 규명 운동은 평화적인 결의대회였다. 또한 이 시기에 제주대학 학생들이 진상규명운동의 주가 되어 전국적인 운동으로 번졌다. 각고의 노력 끝에 2000년 1월 4.3특별법이 공포됐다.

1986년 4월 처음으로 4.3 위령제가 시작된 이후 학생들은 무려 18여 년을 4.3의 진상규명을 위해 싸워왔다. 정부의 탄압으로 유족마저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4.3 사건은 학생들의 투쟁을 통해 현재에 와서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는 우리의 이야기가 됐다. 4.3사건은 올해로 70주년을 맞이하지만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많이 남아있다. 이런 문제를 남기고 현재의 대학생들은 4.3사건이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슬픈 사건으로만 인식하고 있다. 80년대 제주대학생들이 4.3사건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고 싸웠던거 같이 우리 역시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하여 자신의 일처럼 느껴야 할 때일 것이다.<2017 신문제작실습 / 강영준>

강영준  rt75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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