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아래, 이름도 생소한 아봉로 넓은 감귤밭 옆 파란 천막 안은 언제나 시끌벅적하다. 바로 극단 ‘배우세상’이 있는 곳이다.

▲ 파란 천막 아래, 웃고 있는 이화 선생님

세월의 흔적을 숨기지 않는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연습에 한창인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들은 모두 한 분의 스승님 밑에서 연기를 배우는 학생들이다.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자 그들의 스승인 ‘이화’ 선생님이 평상에 앉아 웃고 있다.

극단 배우세상의 대표이자 연기자이며, 연출가이기도 한 그는 28년 간 배우 생활을 한 베테랑이다. 현재는 자신의 집을 연습실로 만들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28년 간 연극을 하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그가 처음 연극을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내성적인 성격이던 그에게 대학 연극 동아리 출신이었던 문예부 선생님이 전국 연극 대회에 나가볼 것을 권유하면서 연기에 발을 들였다. 그러나 이 일이 28년 동안 연극을 계속하게 된 이유는 아니었다고 한다. 등 떠밀리듯 오르게 된 첫 무대에서 도망치듯이 내려와 울고 있는데 한 여배우의 목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별 대사도 아니었어요. ‘얘~ 어멈아!’라는 한마디에 소름이 돋더라고요. 무대가 끝나고 그 여배우의 대기실을 찾아 ‘선생님, 저 연극하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화’ 선생님은 그 날의 일로 연극을 공부하기로 결심하고 서울에 가 희곡과 연출을 배우게 되었다.

배우 생활을 하다가 제주도에 와 극단을 만든 것에도 특별한 계기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배우세상’을 만든 데는 거창한 이유가 없다고 답했다. “시대에 뒤처지지 않고 그렇다고 앞서가지도 않으면서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연극을 하고 싶어서였어요. 다시 말해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연극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서였죠.” 그러면서 그 무대가 제주도여야 했던 이유에 대해 덧붙였다. “나름대로 연극배우로서 정점을 찍고 있었을 때 부모님께서 교통사고를 당하신 거예요. 자식이라곤 저 하나뿐이라 주저하지 않고 제주도행을 결심했죠. 제주도에서도 꿈을 이룰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에요.” 선생님이 제주에 돌아왔을 당시 제주도에는 생활 연극인이 많았다고 한다. 그렇기에 조금 부족했던 전문적인 부분을 보완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고 ‘배우세상’을 만들게 된 것이다.

이쯤 되니 극단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배우세상’을 소개해 달라는 말에 선생님은 “배우가 무대에서 범죄자 역할을 잘 소화해 내면 관객들로부터 찬사를 받죠. 하지만 무대 밖에서 살인범이나 강간범들은 비난의 대상일 뿐입니다. 이렇듯 무대에서 비난 받는 인물도 그 역할을 이해하고 소화함으로써 찬사를 받는 존재가 배우죠. 이렇듯 현실과 또 다른 세상, 즉 'Actor world'가 바로 배우세상입니다.”

다른 극단과의 차별화되는 특징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젊음’과 ‘창작 중심’을 꼽으면서 특히 ‘새로운 삶으로 가는 길도 응원해 주는 것’을 강조했다. “모든 학생이 프로가 되길 강요하지 않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는 길을 알려주는 것 역시 저희와 같은 사람들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흔히들 연극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어려운 예술, 현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삶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한 번 발을 담그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을 거라는 부담도 있을 것이다. 이에 그는 “극단의 문턱을 낮춰 누구든 도전할 수 있고 또 자연스럽게 떠나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저와 ‘배우세상’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연필로 써야만 하는 사랑' 공연 포스터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오는 6월 3일 ‘연필로 써야만 하는 사랑’이라는 작품을 하나 올릴 예정”이라며 “자신들을 가르쳤던 선생님의 기일을 맞아 화장한 바닷가에서 과거를 회상하고 추억을 소환하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이 작품에서는 주로 달에 관해 노래한다고 한다. “소멸됐으나 소멸되지 않은, 소멸되어야만 다시 소멸되지 않을 수 있고 영원한 그런 것이 바로 ‘연필로 써야만 하는 사랑’이에요. 너무 추상적인가요?(웃음)”

이번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는 주저 없이 ‘사랑’이라고 답했다.
“저의 모든 작품들은 하나의 카테고리로 연결돼 있어요.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에는 남녀 간의 사랑도 있고 부부 간의 사랑, 부모 자식 간의 사랑, 자연과의 사랑 등이 있죠. 이 모든 사랑이 제 삶의 핵심이기 때문에 사랑을 중점으로 작품을 만듭니다. 이번 공연에서도 관객들이 이 ‘사랑’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연극을 보고 ‘시간 아까워. 술이나 마실 걸’하는 반응 대신 ‘이거 꽤 재미있다’ 내지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네.’라고 느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네요.”라며 공연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

극단 ‘배우세상’은 번듯한 연습실에서 연기에 평생을 건 사람들로 이루어진 곳은 아니다. 그들의 스승 역시 누구나 알아보는 유명 배우는 아니다. 그러나 ‘배우세상’이야말로 ‘이화’ 선생님이 말하는 ‘다양한 모습의 사랑’의 실체이다. 살아있는 목소리로 가득한 연습실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도약을 꿈꾸며 ‘오늘만큼은’ 배우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세상.

그들의 ‘피, 땀, 눈물’이자 오늘을 살아가는 ‘터’인 ‘배우세상’의 파란 천막처럼 화려하게 빛나지는 않지만 강하고 단단한 극단으로 남아주길 바래본다.

<2017 신문제작실습 / 전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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