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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시된 제주4.3, 대학가에 설치된 첫 번째 분향소[제주대신문으로 본 대학가 4.3진상규명운동] (1) 암흑기 : 4.3을 잊지 않은 학생들
김정헌 | 승인 2017.06.14 12:32

# 70년 여문 한

제주 현대사의 가장 큰 아픔을 가진 사건은 단연 4.3 사건이라 할 수 있다. 1947년 3·1절 기념 시위 사건을 도화선으로 1954년 9월 21일 한라산의 금족 지역의 개방 때까지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참사로 제주도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준 사건이다.

지난 2000년 1월 12일 제주 4.3 특별법이 공포된 이후 진상 보고서가 작성되고, 고 노무현 대통령이 공식 사과를 하는 등 많은 성과가 있었지만 아직까지 유가족 배·보상 문제같이 남은 과제도 많다.

제주 4.3 사건 70주년을 즈음해 그동안 4.3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해 노력한 이들을 재조명하고자 한다. 특히 제주대학교 학생들은 그동안 억눌려 있던 4.3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세상 밖으로 꺼낸 선도적 역할을 했다. 87년 4.3 대자보 사건, 89년 4.3 위령제 등 99년 4.3 특별법이 제정되기까지 제주대학교 학생들은 4.3사건 진상 규명을 위해 투쟁했다. 이번 기획을 통해 제주대학교 신문의 과거 기사로 80년대 제주대학교 학생들의 4.3 해결을 위한 투쟁과 1999년 4.3 특별법의 제정 때까지의 사건들을 돌아보고자 한다.

 

# 차갑게 지새온 세월

80년대를 관통하는 이데올로기는 ‘반공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시기에는 사회 전반적으로 반공주의가 팽배해 있어 정부에 반하는 사건의 대한 논의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사회적으로 반공주의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길 원했고 그에 따라 반공영화, 반공 만화 등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문화들이 성행했다. 이처럼 80년대에는 정부가 하는 것에 대해 이견이 있어서는 안됐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언론통폐합 사건을 거치며 전두환 정부는 정치적 위기가 있을 때마다 소위 ‘반공’ 또는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간첩 사건을 터뜨렸다. 80년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86년 건국대 애학투련(전국반외세반독재애국학생투쟁연합)사건 등 민주화를 외치던 수많은 사람들이 정부와 언론에 의해 소위 ‘빨갱이’로 몰리며 탄압됐다. 정부는 간첩사건을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다.

제주 4.3 사건 역시 80년대까지 ‘4.3은 남로당과 공산주의자들이 벌인 폭동’이라는 식의 논리가 강요됐다. 이것에 이견이 있을 때는 ‘빨갱이’ 또는 ‘간첩’이 될 수 있었기에 4.3 사건에 대한 논의는 수면 아래에 잠들어 있었다.

 

# 어둠 위에 드린 한 줄기 햇살

이 시기에는 4.3 사건을 논하는 자체가 이미 정부에 반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4.3 사건을 입에 올리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았다. 그만큼 정부의 탄압이 심했으며 학생들은 4,3의 거론 자체를 꺼렸다. 제주대학교 신문 역시 86년도까지 4.3 사건에 대한 기사를 찾아 볼 수 없었다.

4.3의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없었던 86년 4월 10일 제주대학교 신문 7면에 조그만 기사가 실렸다. 사실 기사라고 부르기 힘들 정도의 짧은 글이었지만 이것은 이후 이뤄질 투쟁에 시작과도 같았다

<제주대학교신문, 1986년 4월 10일자 기사>

제주대신문 4월 10일 자 7면에는 ‘이 땅 역사에 대한 무관심은 어디서…….’라는 제목으로 "지난 4월 3일 4.3희생위령제라는 젯상이 학생회관 1층에 차려져 있었는데, 4.3희생위령제라는 푯말을 보고서도 누구의 영혼을 달래기 위하여 제를 지내는지 몰라서 무슨 제? 하며 지나 채 버리는 학형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고, 이 땅 사람들의 한과 눈물이 얼룩져 있는 4.3사건이 무관심의 벽 속으로 세월 따라 사라져 버려야 하는 것일까"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 짧은 기사는 4.3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 가십거리처럼 가볍게 다뤘다. 하지만 이 글은 세상에 처음 나온 4.3 위령제에 대한 이야기로 현재의 관점으로 봤을 때 많은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기사는 지나가는 사람들도 누구의 영혼을 달래는지 모를 정도로 무관심했던 4.3 사건을 처음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는데 그 가치를 찾을 수 있다.

그동안 정부의 압력 속에 빨갱이 폭동이라는 이름으로 4.3의 당사자들조차 입에 올리는 일을 꺼렸던 제주 4.3사건이 처음으로 세상의 빛을 받을 일로, 이 위령제를 시작으로 이듬해 4.3 투쟁의 시발점이 된 '대자보 사건'이 발생하면서 4.3사건은 긴 어둠을 지나 세상의 빛을 보기 시작했다. <2017 신문제작실습 / 김정헌>

김정헌  0_0934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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