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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와 언론사주의 품격
최낙진 | 승인 2015.12.22 15:28

한때 '품격'이라는 말이 널리 회자된 적이 있다. 국가와 도시 그리고 여성, 심지어는 잔소리에도 품격을 붙인 책들이 적잖이 출간되었다. 품성과 인격을 합성한 이 단어를 언론에 적용해 보면 '언론의 품격' 정도라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기자의 품격'과 '사주의 품격'을 가리키는 말이 된다.

기자의 품격은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말할 것도 없이 저널리즘적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라 하겠다. 하지만 기자의 품격은 남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는 것에서부터 비롯된다. 이게 곧 취재이다. 여기서 '남'은 취재원을 말하는 것으로 독자들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시민과 국민이 되기도 한다. 성공한 기자일지라도 이들의 말을 직접 귀담아듣지 않는 순간 기자로서의 품격은 모호해진다.

보도자료가 직접 들은 이야기 즉, 취재를 대신하여 지면의 대부분을 차지한 지는 꽤 오래됐다. 요즘에는 인터넷 공간에 널려있는 정보들을 취합하여 변형한 기사들도 등장하고 있다. 취재한 이야기는 사라지고, 누군가가 만들어주고 어디선가 전해주는 이야기를 신봉하면서 기자들의 품격은 사라졌고, 언론의 비극은 시작됐다. 그리고 그 결과는 힘 빠진 기자들의 양산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래도 그간은 남의 이야기를 대신 전해 줄망정 기사는 사람인 기자가 썼다. 그런데 최근에는 로봇이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컴퓨터가 데이터를 수집하고 입력하여 원하는 기사를 출력해내는 알고리즘이다. 이 방식에 따르면 프로야구 경기가 끝나고 1분이 채 안돼 기사가 완성되며, 이러한 기사는 숙련된 기자가 직접 쓴 기사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정교해지고 있다. 기자의 직접 취재가 없는 알고리즘의 언론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기자의 품격을 논할 자리도 없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사주의 품격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언제부턴가 언론사주는 정부권력과 광고주를 넘어서는 존재가 돼왔다. 한마디로 사주가 기사내용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사주의 품격은 절제와 겸양에서 나온다. 국가든 개인이든 그 권력이 행사되는 곳에서는 두려움이 생겨날지 모르지만 품격은 우러나지 않는다. 언론에서 기자의 힘 대신 사주의 힘이 느껴지는 순간 사주의 고매한 품격은 사라지고 만다.

최근 우리 제주 신문들은 심각한 품격 훼손을 겪고 있다.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린다 하지만, 그 전말이 어떻든 기자가 취재원과의 폭행시비에 연루되었다는 것은 '취재원에 대한 예의'를 저버렸다는 점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 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조만간 '제주일보'라는 제호를 단 2개의 신문을 동시에 보게 될 지도 모른다. 숱한 위기 속에서도 꿋꿋하게 제주일보를 지켜온 기자들이 양 편으로 나뉘어졌다는 소식은 비애감마저 들게 한다. 이 두 사건 모두에서 독자들에 대한 예의와 배려는 찾아볼 수 없다. 언론의 품격 부재가 빚은 일종의 폭력이다.

독일 사상가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철학을 가리켜 '슬픈 학문'이라고 말했다. '쓸모없는 학문' 취급을 받는 철학에 대한 조사(弔辭)였던 셈이다. 물론 그 조사는 '질문의 능력을 상실'한 철학에 대한 자조였고 경고였다. 언론이라고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남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기자와 절제와 겸양을 갖춘 사주가 없다면 우리 제주 언론들도 '쓸모없는 언론' 취급을 받게 될 지도 모른다. 기자와 언론사주의 품격 회복을 조속히 바라는 이유이다. <최낙진 제주대학교 언론홍보학과 교수>

 

*본 칼럼은 한라일보 한라칼럼(2015.11.10)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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