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시절부터 나는 글짓기를 싫어했다. 글짓기는 쓴 약보다, 따끔한 주사바늘보다 더욱 싫었다. 그래서 교내백일장이면 나는 당연히 포스터그리기를 선택했다. 학창시절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나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지금은 교내백일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포스터그리기를 선택할 수 없다. 결국 나는 글을 적어야 한다. 내게 글을 적는 것만큼 견딜 수 없는 것이 하나있다. 바로 남에게 미움을 받는 것이다. 내가 나를 미워할지언정 결코 남이 나를 미워하는 것을 받아 들일수가 없었다. 미움 받지 않기 위해 나를 항상 숨기곤 했다. 어쩌면 내가 없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남을 보느라 정작 내 자신에게는 너무 소홀했다. 결국 나는 지쳤고 지금은 잃어버린 나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우리 가족은 서로 떨어져 지냈다. 내가 태어났을 무렵 아빠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셨다. 주말에 집에 온 아빠를 내가 무섭다고 울기 전까지 우리 부모님은 소위 말하는 주말부부였다. 내가 우는 것을 본 아빠는 회사를 그만 두시고 제주도로 내려 오셨다.부모님은 사업을 하셨다. 내가 기억하는 그 당시는 동생과 TV에서 나오는 형형색색의 빛을 이불 삼아 퇴근하는 부모님을 기다리는 것 이였다. TV속에 가족들은 화목했다. 같이 저녁도 먹고 같이 여행도 갔다. 우리와는 달랐다. 12시 무렵 부모님이 오신다. 아빠는 항상 취해있다. 난 술 냄새가 싫었다. 아빠 몸에서 나는 비릿한 생선 냄새도 싫었다. 집안이 어색함으로 가득 찼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멀어졌다.“부모님 모시고와!” 중학교 시절 나는 친구
‘가는 말이 고아야 오는 말이, 곱다.’ ‘글 속에 글 있고 말 속에 말 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말이 씨가 된다.’ 이처럼 말과 관련된 속담이나 격언들은 우리에게 당부를 한다. 말조심하라고.말은 전달하는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말은 현실로 이룰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 방송인 조혜련씨는 꿈을 이루기 위해 가장 좋은 습관으로 ‘미래일기’를 적성한다고 한다. 또 그 일기에 적은대로 매일 아침이면 거울을 보며, 마법의 주문처럼 말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그렇게 예견했던, 꿈꿔왔던 2016년에 ‘오프라 윈프리쇼’ 프로그램에까지 출연한다. 요즘 같이 개인미디어가 발달할 때에는 ‘말조심’이 더 필요하다고 느낀다. SNS, 게임, 댓글 등을 보고 있자
감정 표현이 어려워지는 요즘, 나름대로 스스로 솔직하고 꾸밈없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자부했는데 점점 감정을 숨기고 부정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내 안에 감정들은 끊임없이 부딪쳤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달래야 하는지 누가 알려준 적도 배운 적도 없었다. 어쩌면 이런 나의 상황은 감정을 돌아보고 다독여주라는 신호를 보내는 듯했고 이런 생각이 들 때쯤 정곡을 찌른 책 한 권을 발견했다. ‘감정은 언제나 옳다’ 제목을 보자마자 알 수 없는 죄책감과 미안함이 들었다. 내 스스로에게 드는 미안함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제까지 내가 부정하고 억지로 떨쳐내려 했던 내 모든 감정들에게 미안했다.‘ 불안이나 우울과 같은 부정적 감정을 무조건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마찬가지로 ‘긍정적으로 살
꿈에 그리던 독립을 하게 된 것은 올 봄이였다. 부모님과의 신경전으로 매일 방문을 부서지도록 닫지않아도 되고, 몇시에 일어나건, 몇시에 집에 들어가건 이십대 후반을 달리는 딸들에게 과한 관심과 애정을 보이는 부모님으로부터 적당한 거리를 두게 된 것이다.역마살이라도 끼인 마냥 일년에 두어달은 여행을 다녀야 직성이 풀리는 언니는 워킹 홀리데이를 비롯해 세계각국을 쏘다니며 집을 비웠고, 하고 싶은게 너무 많아 이것저것 들쑤시고 다니는 나는 학창시절부터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서울로 일을 하러 가겠다며 집을 비우는 시간이 잦았다. 유일하게 집에 붙어있던 막내아들은 작년 여름, 나라의 부름을 받고 강원도로 가게 된 탓에 내가 성인이 되고 난 뒤로는 온 가족이 집에 모여 저녁을 먹어 본 기억이 까마득
"고백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사람들을 뜨겁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 혐오증이 있다고까지도 할 수 있다." 책을 빌리러 들어 간 제주 기적의 도서관에서 우연히 뽑아든 책의 서두는 내 뒤통수를 가격하기에 충분한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저자의 적나라한 고백은 짧은 시간 내에 날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정신적 도플갱어가 있다면 이 책의 저자일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것이 회식이고 행사다. 어렸을 때는 친척들 모이는 명절이 제일 싫었다. 114 상담사가 '사랑합니다 고객님'하길래 반사적으로 질색을 하며 '왜요?' 한 적이 있다. 란 노래를 들을 때마다 머릿속에 '무슨 근거로?'가 떠오른다." 매사 이런 태도지만 혼자 살 수가 없기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살면서 한 번쯤 들어보는 질문이다. 특히나 어릴 적 친척들이 모이는 자리에 가면 꼭 이런 짓궂은 질문이 나에게 던져졌다. 엄마, 아빠 둘 다 내가 어떤 대답을 할지 듣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질문을 듣자마자 내 마음속에 답은 이미 정해져있었다. 엄마. 나는 아빠와 대화가 별로 없는 편이다. 무뚝뚝한 남자의 표본인 아빠는 엄마는 물론 딸들에게도 살갑지 못했다. 아빠는 술을 좋아하시는데 술에 잔뜩 취하실 때면 다른 사람이 되곤 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어릴 적에 아빠의 술주정 때문에 우리 가족은 고통받았고 나는 많이 울었다. 나는 아빠를 원망했고 그런 아빠와 딸의 관계는 결코 평범할 수 없었다. 아빠는 늦둥이 동생이 태어나고 주름살도 늘면서 조금씩
“요새 베스트셀러래. 머리도 식힐 겸 한번 읽어봐.” 친구는 내게 이 책을 선물하며 말했다. 고맙게 받아들긴 했으나 당시 나는 취업을 준비하던 예민한 취준생이라 이 책을 읽을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이 책은 그 후 3년이 넘게 내 책장 한구석에 처박혀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런 내가 이 책을 다시금 꺼내든 것은 이번 가을이었다. 요 몇 년간을 정신없이 살다가 최근 나는 일을 쉬게 되었는데 그 덕에 시간적 '여유'가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한가롭게 의자에 앉아 맛있는 과자와 차를 들며 책을 펼쳤는데 매력 없었던 제목과는 달리 내용은 흥미로웠다. 알란이라는 유쾌하고 용기 있는 노인의 한평생을 근현대사와 더불어 써내려간 이 책은 술술 잘 읽혀지면서도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책이었다. 작가의 익살스
이 책을 발견한 건 헌책방 책 무더기 속이었다. 책 표지엔 제목이 적혀 있지 않았고, 한 아이의 얼굴로 꽉 차 있었다. 나는 평소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 또 사진전을 보거나, 사진집을 구매하는 게 취미여서 이 책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책을 펼쳤다. 책 속엔 세계 각국을 여행 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여행을 하면서 느낀 토막글들로 구성되어있었다. 사진 분위기와 편집디자인, 길지 않은 글들, 이 삼박자가 딱 맞아서 별다른 고민 없이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 은 저자 다카하시 아유무가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수십 개의 나라를 걸어 다니며 느낀 것들을 기록하고 찍은 포토에세이다. 저자는 아내와 둘이서 발길이 닫는 대로, 마음이 이끄는 대로
우리는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람의 말과 행동에서 얻는 상처는 자신과 친밀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손상의 정도가 크다. 그건 오랜 시간이 지나 회복될 수도 있지만 영구적 흉터로 남아 자국이 지워지지 않기도 한다. 내 경우는? 글쎄. 시간을 타고 오며 자연스레 아물게 된 줄 알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새빨간 생채기가 선명해지고는 한다. 책에서는 이런 상태를 "감정의 찌꺼기"라고 표현한다. 쌓여있는 감정은 소화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나와 가장 가깝고 내게 아주 소중한 가족과 주고받은 감정은 더더욱. 우리 집은 언제인지도 모를 아주 예전부터 흔들렸다 세워졌다 하기를 반복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여러 가지 방면으로 봤을 때 영원한 안정과 행복
작년 봄. 지금의 신랑과 나는 비밀연애 중이었다. 우연히 업무 상 경기도에서 교육 받을 기회가 생겼는데 우리는 다른 사람들 몰래 그 교육을 같이 신청했다. 비밀연애 중이라 그런지 항상 서로가 그리웠던 우리는 업무 시간에도 서로와 같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얼마나 들떴는지 모른다. 그리고 더 신이 났던 건 교육을 마치고 주말에 같이 여행을 갈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다른 직원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긴장의 연속이었던 교육이 무사히 끝나고, 우리는 서로 다른 일정이 있는 척 다른 사람들을 따돌리는 데 성공했다. 주위 눈치 보느라 맘껏 데이트도 못해봤던 우리는 여행 내내 야구, 연극 등을 즐기며 너무 즐거워했다(물론 다투기도 많이 했다). 그리고 그 중 지금까지도 마음 속 깊이 남은 추억이 하나
누구나 한번쯤은 세느강이 흐르는 파리에서 돗자리를 펴놓고 여유롭게 책과 와인을 곁들이는 상상을 했을 것이고, 영화속의 장면도 봤을 것이다. 나또한 그랫고 이번에 느끼게 된 책 또한 마찬가지의 책이다. 여름방학에 나는 한달간 유럽에 7개국을 돌아다녀 보자 라는 생각을 갖게 되고 3월부터 준비를 해왔다. 그러면서 일정을 짜게 됫고 각종 인터넷 블로그들을 검색하면서 수첩과 공책에 메모와 서류들을 출력하고, 처음 가는 해외여행이니 조심하자 라는 생각으로 걱정반 기대반 으로 출국을 했다. 첫 여행이다 보니 순탄한 생활을 지낼 수 없었다. 언어, 문화 등의 차이로 적응을 못하고 있는 한 대학생 배낭여행객은 적응을 하며 마지막 나라인 프랑스로 들어왔다. 프랑스에서 5일간 지내는 나는 책을 하나 들고
‘위저드 베이커리’. 중학생 때인가 고등학생 때인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 책을 집어 들었다가 한 눈에 반했던 기억이 난다. 무슨 일이든 순위를 매기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읽은 책 중에서 베스트 3위를 꼽아보라는 말에 이 책을 바로 말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좋은 기억으로 남았던 책인데, 이번 지역 도서관 방문 과제를 통해 무슨 책을 고를까? 고민하다가 다시 집게 되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과제에 치여 시간도 없어 책에 관련해서는 전혀 잊고 있었다. 어느 날인가 기숙사에서 언니들과 이야기하다가 좋아하는 책을 주제로 말이 나왔다, 좋아하는 책을 각자 이야기하다가, 이 책의 이야기가 나왔다. 어릴 때의 기억이라 막연히 느낌으로만 이야기 했는데. 언니는 그 책의 제목을 듣고는
“흰머리가 벌써 자랐네, 보기 싫으니깐 뽑아야겠어! 미현아, 족집게 가져오렴” 엄마는 자기 전 나를 불러 “앞쪽에 보이는 흰머리 뽑아야 되겠지?”라고 나에게 묻는다. 언제부터 생겼던 것인지, 어느 순간 엄마의 모습에서 흰머리를 찾아볼 수 있었다. 나는 흰머리가 보여도 괜찮다고 뽑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엄마는 흰머리가 보이면 나이 들어 보인다고 말하며 족집게를 건넸다. 나는 족집게를 들어 듬성듬성 있는 흰머리를 뽑았다. 흰 머리를 뽑으며 문득 엄마의 나이가 얼마나 되었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여동생의 수능이었다. 동생은 수능 보기 전 나에게 “언니 나 이제 얼마 안 있으면 20살이다? 앞에 있는 숫자가 달라진다고!”라며 “이제 어른이라니, 너무 신기하고 뭔가 이상
꽃다운 나이 20살, 아니 아직 꽃을 피우기에도 이른 나이에 나는 생사에 기로에 섰었다. 대학교 1학년 9월, 추석을 앞두고 얼마 전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다. 당시 난 대학에 입학한지 막 반년이 지나 이제 새내기가 아닌 헌내기가 되어버렸다고 친구들과 우스갯소리도 하며 새 학기를 막 다니고 있던 학생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초등학교 시절 넘어져 손목에 금이 갔던 것과 감기 말고는 병원 한 번 갔던 적이 없던 터라 이번에도 단순히 감기에 걸렸나보다 하고 지나갔었다. 그 해, 세월호 사건 때문에 2학기로 연기된 축제와 체육대회 준비도 대학에 들어와 처음 경험하는 거라 아픈 줄 모르고 참여했었다. 동네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아 이것만 먹으면 낫겠지 하면서 그렇게 한 달 정도를 지냈던 것 같다. 보다 못한
어느 날 우리는 대화가 줄어들었다. 대화가 줄어드니 가끔 대화를 시작하면 서로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가벼운 대화에서 말다툼으로 이어진다. 문뜩 내가 성인이 되고나서 집에 있는 시간보다 집 밖에 나와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족들과의 얼굴을 맞대며 대화하는 시간이 줄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뿐만아니라 부모님 두 분 다 맞벌이시고, 동생들도 대학생부터 초등학생까지 학교와 학원 등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어 다들 피곤해 얼굴을 보며 대화를 하는 시간이 없어졌다라고 해명하지만 그것은 변명이라. 우리 가족의 대화가 줄어든 것은 다양한 원인들이 있을 것이다. 집에 오면 스마트폰과 텔레비전 등을 보면서 일체 대화를 하지 않은 가족. 등·하교시간과 출·퇴근시간이 달라 얼굴보기 힘든 가족. 각 자 집
이제까지 살아온 내 인생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은 순간은 바로 군대에 있을 때이다. 사회에 있을 때는 스마트폰, 인터넷을 통해 수많은 정보와 재미를 얻을 수 있었기에 책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하지만 군대에 있었을 무렵에는 유일한 재미가 바로 독서였다. 처음부터 독서가 재밌지는 않았다. 독후감 대회가 열려 포상휴가를 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뒤부터 나는 진중문고에서 책을 빌려보기 시작했다. 같은 생활관에서 최고참이었던 내가 TV를 보지 않고 책을 읽기 시작하자 후임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나는 우리 생활관에 독서열풍을 불러일으켰다. 그로부터 2년이 흘렀다. 출판문화론 수업 때 주어진 과제로 독서릴레이를 해야만 했다. 원래는 가족과 해야 하지만 하나뿐인
책장을 정리하다 우연히 낡은 다이어리를 발견한 적이 있다. 하얀 페이지 한 가운데 ‘홀로서기’라고 시작되는 시의 어느 한 구절이 적혀있었다. ‘그 끝없는 고독과의 투쟁을 혼자의 힘으로 견디어야 한다.’ 엄마가 17살이 되던 해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돈을 벌기위해 무작정 부산으로 올라와 독립을 시작했다. 그 시절 엄마는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수많은 날들을 눈물로 보냈다고 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낯선 곳에서 혼자 살아가기가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외로운 시간들을 ‘홀로서기’라는 글을 통해 마음을 다잡아가며 버텨냈을 젊은 날의 엄마를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학창시절 유난히 엄마와 자주 부딪혔다. 첫째인 나에 대한 엄마의 기대는 매우 컸을 것이
나는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그래서 웬만한 일이 아니면 화를 내지 않는다. 물론 이런 장점을 쉽게 얻은 건 아니다. 누구나 겪는 고민을 나도 해보았으며, 여러 시행착오 끝에 얻은 이런 성격은 군대에서 얻은 것들 중에서 가장 큰 수확이다. 나는 ‘알아서 다 돼’라는 말을 달고 산다. 항상 자신감 하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고, 이번 과제 역시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시작했다. '가족독서릴레이'라는 과제를 받고나서 든 생각 또한 ‘알아서 되겠지’였다. '아버지와 누나에게 책을 건네주고 읽고 하면 되겠지'하고 쉽게 생각했다. 근데 막상 시작하려 하니 책 선정부터가 고민이었다. 요즘 집이 힘들어지다보니 웃음기가 많이 줄었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나에게도 가장의 무게가 느껴지게 되면서부터 나도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은 외침이 아니라, 공직자의 부정부패에 의한 민심의 이반이다." 아르바이트로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역사를 가르칠 때였다. 한 학생이 “목민심서가 무슨 뜻이에요?”, “무슨 내용이에요?”, “그 책 재미있어요?”라는 질문에 순간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답변은 정조시대 때 대표적인 실학자인 정약용의 저서 중 하나로 공직자가 지켜야하는 지침에 대한 내용이라는 것 밖에 없었다. 수업이 끝나고 그 학생의 물음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아 ‘목민심서’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때 마침 “김종대 의원, 이국종 교수는 인격 테러범”이라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귀순한 북한병사의 치료를 맡은 이국종 교수가 병사의 기생충 감염 사실을 공개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