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대화에 항상 불편함을 느꼈다. 아빠는 대화가 자기 뜻대로 흘러가지 않거나 의견 차이가 생기면 항상 화를 내셨다. 그래서 아빠의 눈치를 보고 피하기 시작했다. 어릴 땐 아빠와 마주치는 게 무서워서 방문에 귀를 대고 있다가 아빠가 방으로 들어가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후다닥 화장실로 뛰어간 적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그런 아빠에 대한 반감은 심해졌다. 서로 으르렁거리고 하루도 조용히 지나가는 법이 없었다. 결국 반복되는 싸움에 우리는 지쳐버렸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진작부터 깨달은 오빠와 나는 각자의 방문 뒤에 꽁꽁 숨었고, 마음을 닫았다. 하지만 작년 10월쯤 삭막했던 우리 가족에게 또 다른 가족이 생기면서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작년 10월 창밖으로 비가
한가로운 쌀쌀한 오후. 날씨만큼이나 차가워진 마음을 달래보려 헌 책방을 찾았다. 무슨 바람이었을까. 사실 나는 책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급한 성격 탓에 한자리에 앉아서 책을 붙잡고 있다는 건, 나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사람들의 손때가 묻은 쾌쾌한 오래된 책들 속에서 나는 서성거렸다. 한동안 둘러보다가 ‘하얀 기억 속의 너’를 찾았다. 누군가를 그리워 하는 듯한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가슴이 콩닥 거리는 설렘이 그리웠을까.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지친 나의 마음에 작은 여유와 안식을 줄 것만 같았다. 한 남자가 일생을 바치며, 떠나버린 그녀를 찾는다는 이야기였다. 뻔한 사랑이야기인줄 알고 덤덤히 읽어 내려갔다. 읽으면 읽을수록 나의 마음은 다른 곳을 향했다. 젋은 남녀의 사랑보다,
모든 어휘들은 어울리는 무늬를 갖고있다. 예를 들어 ‘가족’을 떠올릴 때 자연스레 따라붙는 ‘소중’이라는 단어는 가족과 알맞은 무늬 중 하나다. 그렇다. 가족은 소중하다. 그런데 누군가 “가족이 왜 소중해?”라고 묻는다면 나에게 되묻곤 한다. “왜 소중하지?” 참 아이러니하다. 나는 가족이 없는 우리 집을 상상해본 적이 없다. 해본 적이 없는게 아니라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가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죽기 위해 태어난다 라는 말이 있듯이 누구나 죽음을 피해갈 수 없다. 나는 죽음 끝에 반도 가지 못했지만 우리 부모님은 벌써 반을 넘어 3년을 더 사셨다. 언젠간 내 옆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현실이 될 것 같은 슬픔에 소중함의 의미를 정의 내리지 못했다. 이 두려움이 가족의 소중함에
값진 경험이었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우리 가족들에게, 유익한 장난감을 받은 기분이다. 자연스럽게 많은 대화가 이뤄졌으며 함께 웃는 가족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사실 걱정이 많았다. 제주도가 아닌 타지에 가족들이 거주하고 있기에, 독서릴레이의 진행을 보장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음성 및 영상통화와 SNS활용을 통해, 릴레이는 성공했다. 토마스 모어의 를 선정한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중3이었다. 방과 후 영어학원을 가기 전, 저녁을 먹기 위해 집에 잠시 들렸다. 아버지가 유토피아를 들고 있었다. 당시 경기 불황에 따라 아버지의 회사 사정이 매우 어려웠다. 나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셨지만, 책을 보는 눈은 여전히 슬펐다. 반드시 유토피아를 읽겠다는 다짐을 하고 학원으로 발걸음
우리 가족은 모두 불자입니다. 부모님 시대부터 혹은 그 이전 시대에도 모두 불자였을지도 모릅니다. 자연스러운 집안 분위기 때문에 어릴 때 부터 절에 자주 다녔습니다. 그래서인지 교회에가도 성당에 가도 절에 갔을 때 같이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이전에도 어머니와는 책을 공유하여 읽기도 하였습니다. 법정스님의 무소유는 어머니가 먼저 읽고 저에게 주었고 저는 법륜스님의 인생수업을 읽고 어머니에게 드렸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가족 독서 릴레이 도서를 선정할때 혜민스님의 책 중에서 고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르게 된 책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입니다. 책은 크게 휴식, 관계, 미래, 인생, 사랑, 수행, 열정, 종교 등의 9개의 주제로 나누어 져 있는데 9가지 주제 모두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고
안녕, 모토지로. 나는 어느덧 12월, 한 해의 막바지의 길에 서있어. 내가 지나온 시간들을 되짚어보면 도대체 내가 무얼했나 속상한 마음만 가득해져. 너의 12월은 어떠니? 답장 부탁해 모토지로. 내가 아마 모토지로에게 편지를 보낸다면 이렇게 보냈을 것 같다. 이처럼 모토지로는 대단하진 않지만, 속마음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 털어버리게 만드는 힘이 있다. 책의 대부분은 리리카와 모토지로의 편지로 이뤄져있다. 아버지에게서 버림을 받고 홀로 사는게 버거워 삶을 내려놓고 싶어하는 주인공, ‘리리카’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리리카는 하루하루 죽고 싶다는 충동을 억누르며 힘들게 살아온다. 그러던 중 소개를 받고 ‘이름 모를 누군가’와 편지를 주고 받으며 자신의 상처가 아물어 감을 느낀다
이번에 가족도서 릴레이가 하게 되어 책을 선정했을 때 고민을 많이 했다. 부모님과 함께 읽어야 되는 책이라서 부모님이 위주로 생각해 봤다. 수많은 좋은 책들이 있지만, 아무래도 제가 한국에 공부하러 와 있기 때문에 한국과 관련되는 도서를 선택해서 부모님한테 소개해 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들었다. 이런 목표를 가지고 찾아더니, 배우 배용준의라고 하는 책을 눈에 띄게 되었다. 이 책은 중국어판도 발행되어 있어서, 부모님이 중국에 계서도 편하게 사고 읽으실 수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쌀짝 걱정하긴 했다. 왜냐하면 원래도 이런 유명한 사람이 만드는 책을 읽어본 적이 있는데, 대부분 겉은 화려하나 내실이 없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읽
가족독서릴레이.. 사실 단지 과제, 일로만 느껴졌던 마음이 창피해지는 순간이다. 귀하고 값진 시간이라는 기회를 이번 독서릴레이에서 발견했다. 느꼈던 부분을 천천히 써내려가고자 한다. 매일매일 사색의 화두가 되어줄 365편의 이야기라는 부제를 가지고 무심하게 툭툭 한 문장씩 써내려간 단편집을 엮어놓은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M. 스캇 펙은 사상가, 정신과 의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강연가이다. '심리학과 영성을 매우 성공적으로 결합시킨 중요한 책'으로 평가되며 이후 의 최장기 베스트셀러 목록을 차지할 정도로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사실 이 책은 어머니가 직접 가족독서릴레이 책으로 선정하셨다. 한 달에 적어도 5-6권정도 구입하시는 어머니이시다. 이 책 또한 독서 릴레이가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 누구든 한 번쯤은 들어봤을 명언이다. 그만큼 우리의 생활 속에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글귀이지 않나 싶다.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친구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이 글귀는 마음에 새겨 잊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가족독서릴레이라는 과제를 받고 나는 많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책이라고는 전공도서 밖에 모르기 나이기 때문에 책 선정부터가 큰 난관이었다. 책의 종류부터 내용, 분량까지 고민해야할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었기에 더 힘들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어렸을 적 즐겨 읽던 동화책이 생각났다. 바로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책이었다. 우리 가족의 경우 다른 가족에 비해 같이 있는 시간이 굉장히 많은 편이다. 그렇다보니 익
“이혼허라, 이혼해! 느영은 더 이상 못살켜!” 어렸을 적, 자주 듣던 엄마와 아빠의 대화이다. 엄마, 아빠는 둘다 알콜의존증이 심했다. 맨 처음 시집올 때만해도 술을 한잔도 입에 대지 못하던 엄마는 아빠가 술을 조금이라도 덜 먹게 하기위해 아빠가 방심하던 틈을 타 몰래 술을 입에 털어넣었다. 그렇게 엄마는 아빠를 따라 자기도 모르게 술에 중독이 되어갔다. 1년 중, 맨 정신으로 깨어있던 날이 일주일도 되지 않는 해가 반복되었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어도 엄마,아빠는 변하지 않았다. 아빠의 폭력적인 행동과 말로 엄마는 자주 집을 나가곤 했다. 마지막으로 나갔던 엄마의 가출(?)은 5년이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끝날 수 있었다. 11살 차이나는 큰 언니와 9살 터울의 작은언니. 일찍이 집이라는
우리 가족은 6년 전 차디찬 겨울 반으로 나뉘었다. 부모님 각자의 행복을 위해 나와 동생은 말릴 수 없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래도 너희가 부모님이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당시에도 1년이 흘러도 지금도 마음은 4명이 한 집에서 북적이며 지내던 때가 그립다. 이런 마음을 두 분께 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때문에 힘들어도 참아가며 지내던 시간을 우리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둘이 살기 시작한 지 6년의 세월이 흘렀다. 남자 둘이 청소며 빨래며 밥이며 모두 챙기며 살기란 여간 쉬운 게 아니었다. 빨래는 아빠가, 청소는 내가, 밥은 서로 포기하고 지냈다. 6년이란 시간 동안 밥솥과 가스레인지 위엔 먼지가 쌓이다 못해 때가 꼈다. 냉장고 안엔 음료수, 맥주, 귤과 같은
마음에 드는 시 한 편 외우고 다니던 소녀가 있다. 학창시절, 문학 시간이 가장 즐거웠다는 나의 어머니. 시를 읽고 그 시절을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힌다. 마라톤 완주를 위해 달리던 남자가 있다. 학창시절, 마라톤으로 이름깨나 날렸다는 나의 아버지. 지금은 다른 길에서 인생의 땀방울을 흘린다. 처음 가족독서릴레이 책을 선정할 때 고민이 많았다. 가족이 쉽게 읽을 수 있고, 그것에 대해 한마디라도 주고받을 수 있는 책을 찾기가 힘들었다. 다양한 주제의 책을 놓고 생각하다 결국 정한 것은 시집이었다. 나는 시를 읽고 마음을 위로받은 일이 많다. 짧은 그 문장들 속에 시인이 숨겨놓은 감정을 들여다보면 내 슬픔은 저절로 괜찮아질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시가 가진 힘을 믿는다. 어머니,
처음에 가족독서릴레이를 과제로 받았을 때,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이게 가능할까?” 의문이 들었다. 우리 가족은 각자 출퇴근 시간도 정해져있지 않고, 함께 식탁에 마주앉아 밥을 먹은 지도 오래됐다. 예전엔 그래도 버스 막차를 놓치면 부모님의 차를 함께 타고 집에 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라도 나누곤 했었는데 집이 먼 탓에 또래에 비해 일찍 차를 가지고 다니게 되니, 그런 기회마저 사라졌다. 그런 우리 가족에게 독서 릴레이라니, 상상하기 힘든 게 무리도 아니었다. 나는 처음에 부모님과의 상의 없이 내 마음대로 라는 책을 골랐다. 어머니는 책을 읽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나름의 독서 습관을 길들여주려고 대학교 1학년 즈음에 서점에 데려갔다. “그냥 읽고 싶은 책 아무거나 다
올 해 우리 집에는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부모님에게는 손녀고, 나에게는 귀여운 조카가 생겼다. 이름은 정예나. 예나는 작은 오빠와 새언니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올 해 3월 세상에 나온 예나는 벌써 우리와 가족이 된 지 8개월이나 되었다(2016년 12월 기준). 평소 새언니와 친해지고 싶었던 나는 가족독서릴레이가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양육이 처음인 초보아빠, 초보엄마에게 도움이 되는 책을 고르고 싶었다. 그래서 예나가 자라는 과정을 더 함께하고픈 고모의 입장으로 책을 골랐다. 언니와 오빠도 당연히 좋아할 것 같았다. 하지만 사실 언니와 오빠에게 독서릴레이를 제안했을 때 첫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다. 뜬금없이 가족독서릴레이라니, 작년에 가족이 된 언니
‘가족은 어렵다’ 가족을 생각하면 항상 떠올랐던 나의 생각이다. 한 지붕 아래 긴 세월을 함께 산 가족에 대해서는 과연 뭘 알고 있는지 모호하다. ‘가족’이라는 한 단어로 뭉뚱그려 말하려면, 나는 할 말이 거의 없다. 내가 이상한 건가 싶어, 주변 사람들에게 ‘가족에 대해 알아요?’라고 물어보면 대부분 어려워하거나 뜸을 들인다. 이와 같은 반응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 개개인의 마음속에 ‘가족’이란 범위가 너무 크다 보니, 정의를 해 언어 표현을 하기 힘든 거다. 그래서 가족은 정말 어렵다. 처음 가족 독서 릴레이를 한다고 들었을 때, 곧바로 떠오른 책이 하나 있었다. 이란 책인데, 이 책을 알게 된 계기는 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본 기억이 났다. 많은
‘가족독서릴레이’라는 테마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수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도서관 사서로 근무 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우리 집은 나름 책과 친숙한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책을 고르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당시 누나가 읽던 책 ‘소년이 온다’를 너무 강력하게 밀어붙여서 모두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는 우리 근현대사의 비극인 5.18을 소재로 하였다. 각기 다른 시각으로 참혹했던 당시를 묘사했다. 소설 같은 다큐 혹은 다큐 같은 소설이었다. 이야기는 점점 중학생이었던 소년의 죽음으로 귀결된다. 소년의 죽음이 왜 비극이었는지, 우리가 왜 알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이는 결국 5.18이 왜 비극이었는지, 우리가 왜 5.18을 알아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우
어릴 때부터 바다는 항상 나의 모든 것이 되어왔다. 입고 있는 옷, 알록달록한 세발자전거, 엄마가 꼬박 차려주는 밥상. 내가 태어나던 날도 아빠는 바다에 있었다고 한다. 이 얘기를 할 때마다 엄마는 묘하게 언성이 높아진다. 산달이 임박한 자기를 홀로 내버려 둔 남편이 엄마는 꽤나 섭섭했나보다. 더군다나 첫째였으니 그 마음이 오죽했을까. 내가 5살쯤까지 살았던 통영은 나름 애틋한 곳이다. 아빠가 늦게까지 들어오지 않으면 엄마는 내 손을 잡고 항구까지 나갔다. 보이는 거라고는 등대의 빨간 빛과 주변에 사는 가정집의 희미한 불빛, 거리에 얼마 없는 가로등의 주황빛이었다. 아무 것도 보일 것 같지 않다가도 곧 어둠에 눈이 익숙해졌다. 발을 내딛으면 우수수 떼 지어 도망가는 바다의 바퀴벌레 강구들, 이따
가족 독서 릴레이를 시작하게 되면서 책 선정에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첫 번째로 고른 책을 바로 선정하게 되었다. 선정도서는 바로 축구선수 박지성의 자서전인 ‘박지성 마이 스토리’이다. 물론 내가 이 책에 대해 스스로를 합리화 시키면서 의미부여를 한 점이 선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말은 스스로를 합리화 시키면서 의미부여를 했다고 했지만 내 설명을 듣고 부모님과 누나가 별말 없이 릴레이에 응해준 것을 보면 나름 객관적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의 1장에서는 은퇴를 결심하는 박지성의 모습, 2장에서는 유년시절의 박지성, 3장에서는 유럽리그로의 도전, 마지막 4장에서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400 페이지
어린왕자를 처음 읽었던 것은 초등학생 때였다. ‘피자북’라는 도서대여 서비스를 엄마가 신청해놓은 상태여서 3~4권 가량의 책들이 매주 집 앞에 놓여있곤 했다. 안 읽고 돌려보내는 책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제목이나 표지가 마음에 드는 책들은 골라서 읽었었다. ‘어린왕자’도 그 중 하나였다. 표지에는 바람에 흩날리는 스카프를 목에 두른 금발소년이 혼자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왕자라고 하면 호화스러운 궁전에 살면서 수 십명의 시중을 받거나 위험에 처한 공주를 구하는 늠름한 모습을 떠올렸었다. 그러나 ‘어린왕자’인 듯한 표지 속 소년은 좀 달랐다. 공주를 구하기엔 너무 연약해보였고 왠지 쓸쓸해 보이기도 했다. ‘왕자가 왜 혼자 저러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에서 처음 책을 펼쳤다. 사실 이때 책 내용을
내 나이 여덟 살이 되었을 때,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늘 혼자였다. 나이차이가 꽤 나는 나의 언니, 오빠는 학교가 끝나도 곧장 학원 이곳저곳을 전전하기 바빴다. 부모님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우리 형제를 위해 맞벌이를 해야만 했다. 그래서 난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집안 구석구석에 어둠이 가라앉을 때까지 홀로 빈집을 지켰다. 거실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는 환한 아날로그 텔레비전 속 만화영화 한 장면과 어둠이 짓게 깔린 현관을 번갈아보며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오기만을 고대했다. 그것을 한참 반복하다 예상했던 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오지 않으면 엄마의 012로 시작하는 무선호출기로 전화를 걸어 언제 오느냐며 엉엉 울기도 했다. 그러면 나의 엄마는 요란하게 울리는 진동에 작은 액정 속 집 전화번호를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