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억지로 독서를 하는 편이었다. 내가 적극적으로 책을 읽는 경우보다 누군가가 읽으라고 해서 수동적으로 책을 읽게 된 경우가 훨씬 많았다. 보통 엄마가 책을 시리즈로 구매를 했기 때문에 내가 스스로 서점에 가서 책을 구매한 경우도 많이 없었다. 중고등 학생이 되고서도 학교 수행평가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썼다. 대학교에 와서도 과제로 인해 책을 읽었다. 가족 독서 릴레이 역시 과제로 인해 책을 읽게 된 경우였다. 늘 독서에 대해서는 수동적이었던 나는 책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고민이 많아졌다. 내가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가족들이 부담스럽지 않게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글이 어려운 책은 나도 읽기 어려울 것 같고 아직 중학생인 동생도 어려워할 것 같았다. 고민
가족독서릴레이 과제를 받고 어떤 책을 선정해야 할지 오래 고민했다. 각자의 일로 바쁠 뿐만 아니라 모두 흩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도청 근처, 아빠는 서귀포, 나는 제주 시청 근처, 동생은 기숙사. 함께 모이는 날이 거의 없으니 내가 읽은 책을 직접 전달하며 진행하기에는 어려우리라 생각했다. 며칠 고민하다가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에 있는 책 중에서 우리 가족이 함께 읽을만한 책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기대보다는 걱정이 컸다. 평소 책을 자주 읽는 편이라 괜히 어려운 책을 추천하실 것 같았다. 머릿속으로 어떤 책을 추천하실지 예측하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런데 전혀 생각하지 못한 제목이 들렸다. 아빠는 정문정 작가의 을 추천했다.
엄마와 둘이 산 지 서너 달이 되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 나는 엄마의 존재를 더 입체적이고 새롭게 느끼게 되었다. 내 인생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학창시절 엄마의 존재는, 강인하고 든든한 존재, 가장이자 내 삶의 든든한 대들보였다. 엄마의 희생과 노력으로 아름답게 피어났던 내 어린 시절은 곧 엄마 본인의 행복을 내 삶의 목표로 설정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 느끼는 엄마의 모습은 또 다른 점이 많다. 엄마와 뉴스를 보고, 엄마에게 요리를 해주고,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엄마에게 무언가를 직접 사줄 수 있게 되고, 여행을 직접 계획하고, 함께 여행을 하며 엄마의 고향을 만나고. 학교와 방구석에서 볼 수 없던 엄마의 모습들이, 참 낯설지만 좋았다.아는 만큼 보인다
책이라는 것은 우리 인간의 삶에 있어서 항상 근처에 존재한다.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홍보용 책자도, 도서관에 진열된 책, 서점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책들. 수많은 책들이 우리 주변에 산재해 있다. 어릴 적부터 막연히 책을 읽는다는 행위를 아무런 감흥 없이 그저 책이 읽고 싶어서 읽었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다른 관점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책이 사람과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은 과연 어떠한가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책을 읽는다. 인간은 책을 통해 교훈을 얻고 정신적 함양을 이루며 여러 가지를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그저 낄낄거리며 농담거리를 찾기도 한다. 전적으로 우리는 책과의 관계에서 주체인 동시에 수용자가 되는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책을 수용하는 사람들 중 책이 우리에게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신경
시작하기 전에, 먼저 ‘가족들과 무슨 책을 읽을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다. 가족들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은 초등학생 이후에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또한, 가족 중 책을 즐겨 읽는 사람이 없는 것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고민하지 않고 읽을 수 있는 책을 선정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다가 지친 가족들에게 힐링이 될 수 있는 책들을 공유하기로 마음먹고 이 책을 선정하게 되었다. 막상 가족 독서 릴레이를 시작하니, 가족들에게 책을 읽어보자는 이야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가족들에게 책을 권해본 적이 없었기에 가족들이 책을 재밌게 읽어줄지 겁이 나기도 했다. 마냥 시간을 지체하다. 조급해진 마음에 가족 중 누구에게 먼저 책을 권해야 순조롭게 진행될지 생각했고, 형에게 먼저 책을 권
*이 책은 영화를 소설로 옮긴 책입니다. -일어선 채로 쓰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방을 옮겼는데 의자가 없어서. 의사였다가 지금은 은퇴한 백발의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한평생 주부로 살아온 할머니가 있습니다. 그들에겐 장래가 촉망받던 장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평범하게 자라 평범하게 시집가서 평범하게 사는 둘째딸,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여자와 결혼한 막내아들이 있습니다. 이 책은 장남의 기일에 모든 식구가 고향집으로 모이는 하루를 보여줍니다. 장남은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다가 죽었습니다. 할머니는 그때 살아난 아이를 매년 부르는데 막내아들은 그걸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는 참 별 볼일 없는 청년으로 자랐습니다. 할아버지는 매년 ‘저런 자식 살리다가 우리 아들이 죽었다’고
나에게 가족은 낯선 사람들이다. 서로 옆에 있으면서도 잘 모르는 사이다. 그래서 이 과제를 처음 들었을 때 막막함 그 자체였다. 어떻게 말을 건네고 어떻게 부탁하면 해주실까. 책을 선정하는 건 일 분도 걸리지 않았지만 말을 거는 것 자체는 한 달이 걸렸다. 아빠의 방문을 두드리는 게 왜 그렇게 어색하고 힘이 드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이미 가족이라는 단어보단 각자의 단어가 어울리는 사이가 돼 있었다. 용기를 내 아빠의 방문을 두드렸다. 과제를 부탁하면 해주시지 않을 것 같다는 내 예상은 두 달 동안 바닥에 붙어있는 시집으로 맞출 수 있었다. 어느덧 시간이 꽤 흘러 조급해진 난 아빠한테 시집이라서 어렵지 않고, 한 마디만 남겨주면 된다고 말했다. 일주일 뒤, 드디어 아빠한테 연락이 왔다. 눈이 잘 안
나는 운명론자다. 그래서 운명이 없다는 것을 안다. 내가 아는 운명론이란 수없이 정해진 많은 길 중에 온전한 ‘자신의선택’을 통해 삶을 찾아간다는 뜻이다. 나폴레옹의 명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현재의 불행은 언젠간 잘못 보내 시간에 대한 보복이다” 이 말은 항상 내 머릿속을 돌아다니는 송곳이었다. 지금이 힘들다면 지금까지 내가 한 수많은 선택 중에 무언가 잘못된 혹은 나에게 맞지 않은 선택을 했단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앞으로의 내 삶도 내 선택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렇듯 현재 내게 주어진 현실에 대해 순응하고 해결해 나가기 위해 긍정적으로 노력한다면 그건 미래의 나에게 반응할 것이다. 이것은 그저 후회할만한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나만의 다짐이다.시크릿’이란 이 책을 처음
한동안 방향을 잃었다. 인생은 속도가 아닌 방향이라는데 벌써부터 방향을 잃어서야 나는 앞으로 잘 살지 못할 것 같아 불안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만’ 못 살 것 같아서 더 불안했다. 이렇게 불안한 나를 아무나 잡아줬음 했고 이런저런 글을 읽다 이 책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 책은 곧 내 맘에 들게 되었다. 이 책에서 나온 태도들은 곧 내 삶의 이정표가 되었다. 삶이 좀 어렵게 돌아간다 싶을 때면 이 책 어느 페이지를 펴고 문장들을 꼭꼭 읽었다. 그렇게 어느 구절인가는 내 몸 안에 체화시켰고, 또 어느 구절은 깨끗이 잊어버렸다. 그 와중에 ‘가족독서릴레이’라는 과제를 받게 되었고 그 때 이 책을 처음 떠올렸다. 이번 연도에 내가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을 보여주고 싶었고, 또 이 책을 가까운 사람들
"나는 왜 그런 애를 낳았을까요. 그 애를 낳았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보고 있으면 놀랍고 신기하고 잠든 그 애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사랑이라는 말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차올랐어요.“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이다. 우리 엄마에게 나는 어떤 딸일까. ‘딸’을 보고 있으면 사랑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차올랐다는 책 속의 엄마. 나도 우리 엄마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기게 하는 딸일까? 가족 독서릴레이에 어떤 책을 읽고 서평을 쓸까 고민하던 중에 시간 때울 겸 서점에 들렀다. 서점에 있는 수많은 책들 가운데 『딸에 대하여』 라는 제목의 책은 내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왜냐하면 나 역시 나의 부모님의 ‘딸’이기 때문이었다. 두 명의 여
우리 집 다락방에는 얇게 먼지 쌓인 책들이 있다. 단연 우리 가족 중 독서 왕이라고 할 수 있는 아빠의 책들이다. 오래전부터 아빠는 책을 읽으신 후에 한 번씩 읽어보라며 집으로 가져오시곤 했다. 자기계발서,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 등 장르를 불문한 책들이 많았다. 하지만 아빠 외에 엄마, 오빠, 동생과 나는 독서를 즐겨하는 편이 아니다. 그 때문에 아빠의 추천 도서들은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외면 받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더 일찍 가족 독서릴레이를 만났을 지도 모른다. “한 번씩 읽어봐!”라고 했던 아빠의 말을 들었더라면 그게 릴레이가 되고 있었을 텐데 아무도 책을 읽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빠께 미안한 마음을 간직한 채 가족 단체 채팅방에 메시지를 남겼다. “이번에 한번 가족 독서릴레이를 해볼까
우리 가족은 서로 떨어져 지냈다. 내가 태어났을 무렵 아빠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셨다. 주말에 집에 온 아빠를 내가 무섭다고 울기 전까지 우리 부모님은 소위 말하는 주말부부였다. 내가 우는 것을 본 아빠는 회사를 그만 두시고 제주도로 내려 오셨다.부모님은 사업을 하셨다. 내가 기억하는 그 당시는 동생과 TV에서 나오는 형형색색의 빛을 이불 삼아 퇴근하는 부모님을 기다리는 것 이였다. TV속에 가족들은 화목했다. 같이 저녁도 먹고 같이 여행도 갔다. 우리와는 달랐다. 12시 무렵 부모님이 오신다. 아빠는 항상 취해있다. 난 술 냄새가 싫었다. 아빠 몸에서 나는 비릿한 생선 냄새도 싫었다. 집안이 어색함으로 가득 찼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멀어졌다.“부모님 모시고와!” 중학교 시절 나는 친구
꿈에 그리던 독립을 하게 된 것은 올 봄이였다. 부모님과의 신경전으로 매일 방문을 부서지도록 닫지않아도 되고, 몇시에 일어나건, 몇시에 집에 들어가건 이십대 후반을 달리는 딸들에게 과한 관심과 애정을 보이는 부모님으로부터 적당한 거리를 두게 된 것이다.역마살이라도 끼인 마냥 일년에 두어달은 여행을 다녀야 직성이 풀리는 언니는 워킹 홀리데이를 비롯해 세계각국을 쏘다니며 집을 비웠고, 하고 싶은게 너무 많아 이것저것 들쑤시고 다니는 나는 학창시절부터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서울로 일을 하러 가겠다며 집을 비우는 시간이 잦았다. 유일하게 집에 붙어있던 막내아들은 작년 여름, 나라의 부름을 받고 강원도로 가게 된 탓에 내가 성인이 되고 난 뒤로는 온 가족이 집에 모여 저녁을 먹어 본 기억이 까마득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살면서 한 번쯤 들어보는 질문이다. 특히나 어릴 적 친척들이 모이는 자리에 가면 꼭 이런 짓궂은 질문이 나에게 던져졌다. 엄마, 아빠 둘 다 내가 어떤 대답을 할지 듣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질문을 듣자마자 내 마음속에 답은 이미 정해져있었다. 엄마. 나는 아빠와 대화가 별로 없는 편이다. 무뚝뚝한 남자의 표본인 아빠는 엄마는 물론 딸들에게도 살갑지 못했다. 아빠는 술을 좋아하시는데 술에 잔뜩 취하실 때면 다른 사람이 되곤 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어릴 적에 아빠의 술주정 때문에 우리 가족은 고통받았고 나는 많이 울었다. 나는 아빠를 원망했고 그런 아빠와 딸의 관계는 결코 평범할 수 없었다. 아빠는 늦둥이 동생이 태어나고 주름살도 늘면서 조금씩
우리는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람의 말과 행동에서 얻는 상처는 자신과 친밀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손상의 정도가 크다. 그건 오랜 시간이 지나 회복될 수도 있지만 영구적 흉터로 남아 자국이 지워지지 않기도 한다. 내 경우는? 글쎄. 시간을 타고 오며 자연스레 아물게 된 줄 알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새빨간 생채기가 선명해지고는 한다. 책에서는 이런 상태를 "감정의 찌꺼기"라고 표현한다. 쌓여있는 감정은 소화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나와 가장 가깝고 내게 아주 소중한 가족과 주고받은 감정은 더더욱. 우리 집은 언제인지도 모를 아주 예전부터 흔들렸다 세워졌다 하기를 반복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여러 가지 방면으로 봤을 때 영원한 안정과 행복
작년 봄. 지금의 신랑과 나는 비밀연애 중이었다. 우연히 업무 상 경기도에서 교육 받을 기회가 생겼는데 우리는 다른 사람들 몰래 그 교육을 같이 신청했다. 비밀연애 중이라 그런지 항상 서로가 그리웠던 우리는 업무 시간에도 서로와 같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얼마나 들떴는지 모른다. 그리고 더 신이 났던 건 교육을 마치고 주말에 같이 여행을 갈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다른 직원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긴장의 연속이었던 교육이 무사히 끝나고, 우리는 서로 다른 일정이 있는 척 다른 사람들을 따돌리는 데 성공했다. 주위 눈치 보느라 맘껏 데이트도 못해봤던 우리는 여행 내내 야구, 연극 등을 즐기며 너무 즐거워했다(물론 다투기도 많이 했다). 그리고 그 중 지금까지도 마음 속 깊이 남은 추억이 하나
“흰머리가 벌써 자랐네, 보기 싫으니깐 뽑아야겠어! 미현아, 족집게 가져오렴” 엄마는 자기 전 나를 불러 “앞쪽에 보이는 흰머리 뽑아야 되겠지?”라고 나에게 묻는다. 언제부터 생겼던 것인지, 어느 순간 엄마의 모습에서 흰머리를 찾아볼 수 있었다. 나는 흰머리가 보여도 괜찮다고 뽑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엄마는 흰머리가 보이면 나이 들어 보인다고 말하며 족집게를 건넸다. 나는 족집게를 들어 듬성듬성 있는 흰머리를 뽑았다. 흰 머리를 뽑으며 문득 엄마의 나이가 얼마나 되었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여동생의 수능이었다. 동생은 수능 보기 전 나에게 “언니 나 이제 얼마 안 있으면 20살이다? 앞에 있는 숫자가 달라진다고!”라며 “이제 어른이라니, 너무 신기하고 뭔가 이상
어느 날 우리는 대화가 줄어들었다. 대화가 줄어드니 가끔 대화를 시작하면 서로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가벼운 대화에서 말다툼으로 이어진다. 문뜩 내가 성인이 되고나서 집에 있는 시간보다 집 밖에 나와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족들과의 얼굴을 맞대며 대화하는 시간이 줄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뿐만아니라 부모님 두 분 다 맞벌이시고, 동생들도 대학생부터 초등학생까지 학교와 학원 등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어 다들 피곤해 얼굴을 보며 대화를 하는 시간이 없어졌다라고 해명하지만 그것은 변명이라. 우리 가족의 대화가 줄어든 것은 다양한 원인들이 있을 것이다. 집에 오면 스마트폰과 텔레비전 등을 보면서 일체 대화를 하지 않은 가족. 등·하교시간과 출·퇴근시간이 달라 얼굴보기 힘든 가족. 각 자 집
이제까지 살아온 내 인생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은 순간은 바로 군대에 있을 때이다. 사회에 있을 때는 스마트폰, 인터넷을 통해 수많은 정보와 재미를 얻을 수 있었기에 책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하지만 군대에 있었을 무렵에는 유일한 재미가 바로 독서였다. 처음부터 독서가 재밌지는 않았다. 독후감 대회가 열려 포상휴가를 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뒤부터 나는 진중문고에서 책을 빌려보기 시작했다. 같은 생활관에서 최고참이었던 내가 TV를 보지 않고 책을 읽기 시작하자 후임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나는 우리 생활관에 독서열풍을 불러일으켰다. 그로부터 2년이 흘렀다. 출판문화론 수업 때 주어진 과제로 독서릴레이를 해야만 했다. 원래는 가족과 해야 하지만 하나뿐인
책장을 정리하다 우연히 낡은 다이어리를 발견한 적이 있다. 하얀 페이지 한 가운데 ‘홀로서기’라고 시작되는 시의 어느 한 구절이 적혀있었다. ‘그 끝없는 고독과의 투쟁을 혼자의 힘으로 견디어야 한다.’ 엄마가 17살이 되던 해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돈을 벌기위해 무작정 부산으로 올라와 독립을 시작했다. 그 시절 엄마는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수많은 날들을 눈물로 보냈다고 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낯선 곳에서 혼자 살아가기가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외로운 시간들을 ‘홀로서기’라는 글을 통해 마음을 다잡아가며 버텨냈을 젊은 날의 엄마를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학창시절 유난히 엄마와 자주 부딪혔다. 첫째인 나에 대한 엄마의 기대는 매우 컸을 것이